다시 읽는 텍스트 98

이명선의 '홍경래전' - 8. 기로

8. 岐路 (기로) 경래가 가산읍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밤도 너무나 깊었고, 또 선봉대가 벌써 점령할 것은 다 점령하여 버렸음으로, 그대로 쉬고, 이튿날 일찍이 수뇌부만 모이어 긴급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제일 먼저, 가산군수를 죽인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가지고 홍총각과 희저와 정면충돌을 하고 말았다. 희저는 어젯밤에 연홍의 집에서 자면서, 홍총각의 행동은 정의를 위하여 이것은 혁명군으로서는 절대로 용납되지 못한다는 것을 누누이 듣고 왔었으므로, 이것을 제 주장인 것처럼 내세웠다. “항복하려고 대장을 불러달라는 것을 죽이는 것은 항복한 것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오? 항복하는 자도 죽인대서야, 누가 항복을 하겠오? 우리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오.” “그 ..

이명선의 '홍경래전' - 7. 가산의 연홍

7. 嘉山(가산)의 蓮紅(연홍) 신미년(辛未年) 십이월 십팔 일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할 무렵에, 경래는 장병들에게 일제히 무장을 시키어 다복동 넓은 마당에 집결시키고, 스스로 대원수의 복장을 하고 단 우에 올라 공순히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참모 김창시를 시켜서 격서(檄書)를 낭독케 하였다. 격서의 문구는 물론 한문으로 된 것이나, 그 내용은 대개 서북 사람의 억울한 사정을 누누이 말하여 도저히 그대로 참고 있지 못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즉 서북 은 기자(箕子) 때부터, 고구려(高句麗) 때부터 천하에 그 이름을 휘날리든 구역(舊域)으로, 을지문덕(乙支文德), 양만춘(楊萬春), 서산대사(西山大師), 김경서(金景瑞), 정봉 수(鄭鳳壽) 같은 영특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고, 임진왜란 때에는 평안도 사람 힘으로..

이명선의 '홍경래전' - 6. 십이월 십팔일

6. 十二月(십이월) 十八日(십팔일) 신도회의가 끝나자, 각처의 거두들은 모두 바로 제 근거로 돌아가고, 다복동의 군졸의 훈련도 더 한층 격렬해졌다. 창시는 원래 정감록(鄭鑑錄)을 절대로 신입하고 있었음으로, 내년에 기병할 것을 미리 일반에게 암시하기 위하여, 임신 기병(壬申起兵)의 넉 자를 열여덜 자로 파작(破作) 하여 일사횡관하니, 귀신탈의하고, 십필가일척하니, 소구유양족이라 (一士橫冠, 鬼神脫依, 十疋加一尺, 小丘有兩足) — 이러한 괴상한 문구를 만들어 민간에 유포시키었다. 그리고 또 칠월 달부터 건방(乾方)에 헤성(彗星)이 나타나, 민간에서는 무슨 큰 변고가 있을 것이라고 수군거리는 판이라, 창시는 이것을 이용하여, 건방은 서북방(西北方)을 가르치는 것이니까, 서북방에서 큰 난이 일어나겠다는데 그..

이명선의 '홍경래전' - 5. 신도회의

5. 薪島會議 (신도회의) 경래가 고향에 가서 가족을 다리고 다복동에 돌아온 며칠 후에, 경래는 몰래 각처로 사람을 보내어, 그때까지 연락하여 두었든 각처의 거두(巨頭)들을 신도(薪島)로 소집하여 긴급히 비밀회의를 개최하였다. 신도(薪島)는 다복동 바로 앞을 흐르는 대영강(大寧江)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경래는 여러 사람의 이목을 피하여 대개 이 섬 속에 거처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모여든 거두는 가산(嘉山), 박천(博川), 태천(泰川), 곽산(郭山), 정주(定州), 선천(宣川), 철산(鐵山), 영변(寧邊), 안주(安州)와 같은 가까운 데는 물론이고, 구성(龜城), 용천(龍川), 삭주(朔州), 강계(江界) 같은 먼 데까지 - 거의 평안도 전세를 통하여, 현재의 왕조에 불평을 품은 유력자는 거의 전부가 포함..

이명선의 '홍경래전' - 4. 장수들

4. 장수들 반란을 일으키어 나라를 뒤집어엎으려면, 모사(謀士)니, 부호(富豪)니, 명사(名士)니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직접 병대를 이끌고 싸움터로 나가서 지휘하는 장수가 필요하다. 경래도 이러한 장수를 얻느라고 도 각처로 돌아다니며 별별 수단을 다 썼다. 경래가 제 편으로 끌어넣은 장수 중에 먼저 홍총각(洪總角)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홍총각은 곽산(郭山) 사람으로,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다. 원이름은 이팔(二八)이나 삼십이 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여, 홍총각으로 통하였다. 기운이 장사라, 먹기도 남의 세 몫 먹고, 일도 남의 세 몫하고, 자기도 남의 세 몫 잤다. 산에 발매를 가면 우연만한 나무는 손으로 쑥쑥 뽑아 버리고, 좀 큰 나무는 도끼질을 하는데, 그 도끼가 보통 도끼는 휘휘 날린다..

이명선의 '홍경래전' - 3. 동지들

3. 同志(동지)들 경래의 동지로서 먼저 우군칙(禹君則)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우군칙은 경래가 제일 먼저 사귄 동지다. 그는, 태천(泰川)에서 내가 내다 하고 뽑내는 우가네 집의 첩의 소생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사서삼경은 물론이고 천문지리에 이르기까지 무불통지하였는데, 서류(庶流)인 고로 처음부터 과거를 볼 자격이 없고, 집 안에 드나 집 밖에 나나 경멸과 확대가 자심하여, 억울한 자기의 심정을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집을 버리고 각처로 떠돌아다니며, 지사(地師)로 자처하였다. 간혹 부잣집 모이자리나 정해주고 돈푼이나 받으면, 바로 주막으로 달려가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들이키어 평소의 불평불만을 술로 마비시켜 버렸다. 경래는 경신(庚申)년 간에 가산군 청용사(嘉山郡 淸龍寺)에서 ..

이명선의 '홍경래전' - 2.다복동

홍경래전(洪景來傳) 이명선(李明善) 2. 多福洞 (다복동) 경래가 식구를 거느리고 이사한 곳은 다복동(多福洞)이라는 곳이다. 다복동은 가산(嘉山)과 박천(博川) 양군 사이에 있는 동리의 이름인데, 그리 크고 널지는 못하나, 상당한 요지(要地)다. 동리 좌우에는 그리 험하지는 않으나 나무가 잔뜩 들어선 산이 삑 둘러있고, 산 넘어 한옆으로는 서울서 의주(義州)로 통하는 큰 길이 있고, 앞으로는 대 령강(大寧江)이라는 강이 흘러 있어, 수륙(水陸)의 편리가 매우 좋다. 뿐만이 아니라, 여차 즉 하면 강과 좌우의 산에 의지하여 진을 치고 딱 버틸 수도 있고, 산 숲속에는 몰래 묻어 박히어 무슨 비밀의 일을 꿈이기에도 똑 들어맞았다. 아니, 경래가 여기로 옮겨 왔을 때에는 이미 심상치 않은 무시무시한 기분이 전..

이명선의 '홍경래전' - 1.귀향

홍경래전(洪景來傳) 이명선(李明善) 1. 歸鄕 (귀향) 순조 십일 년 구월(純祖 十一年 九月)의 일이다. 홍경래(洪景來)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연 자기 고향인 평안도 용강군 다미면 세동 화장곡(平安道 龍岡郡 多美面 細洞 花庄谷)에 나타났다. 늙은 어머니를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산속의 절에 가서 공부하겠고 뚝 떠나가고 서는, 십 년 이상이나 종무소식이든 그가, 제법 서늘해진 가을바람을 안고 표연히 나타났다. “그래, 그렇게 오랫동안 자네는 도대체 어디를 가 있었나?” “산속에 들어가서, 몇 해가 걸리든지 성공할 때까지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하더니 이때까지 산속에 있었나?” “아마 공부가 어지간히 다 된 게지. 십 년이나 했으면 문장 다 됐지, 못 되겠나?” — 이렇게 옛 친구들은 물어보았으나, 경래는 ..

백석의 '수라'와 김창완의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레'

수라(修羅) 백석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내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느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이다 어디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아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