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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의 '홍경래전' - 5. 신도회의

New-Mountain(새뫼) 2022. 10. 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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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薪島會議 (신도회의)

 

경래가 고향에 가서 가족을 다리고 다복동에 돌아온 며칠 후에, 경래는 몰래 각처로 사람을 보내어, 그때까지 연락하여 두었든 각처의 거두(巨頭)들을 신도(薪島)로 소집하여 긴급히 비밀회의를 개최하였다. 신도(薪島)는 다복동 바로 앞을 흐르는 대영강(大寧江)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경래는 여러 사람의 이목을 피하여 대개 이 섬 속에 거처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모여든 거두는 가산(嘉山), 박천(博川), 태천(泰川), 곽산(郭山), 정주(定州), 선천(宣川), 철산(鐵山), 영변(寧邊), 안주(安州)와 같은 가까운 데는 물론이고, 구성(龜城), 용천(龍川), 삭주(朔州), 강계(江界) 같은 먼 데까지 - 거의 평안도 전세를 통하여, 현재의 왕조에 불평을 품은 유력자는 거의 전부가 포함되어 있어, 예상 이상으로 수가 많았다. 그곳에서 가장 유력한 수교(首校)니, 수리(首吏)니, 좌수(座首)니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여러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큰 장사꾼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이때까지, 혹은 직접 경래를 통하여 혹은 군칙이나, 희저나, 창시를 통하여 긴밀히 연락은 하여 왔었으나, 여전히 이야기가 좀 막연한 것 같고, 허황한 것도 같아서, 은근히 불안을 느끼었는데, 이처럼 여러 수십 명이 - 더구나 이러한 유력한 사람들이 일당에 모이고 보니, 이때까지의 불안이 일소되고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먼저 하늘 앞에 제사 지내 꼭 성사하게 하여달라고 빌고, 다음에 경래 이하 차례차례로 피를 마시어 서로 배반하지 않기를 굳게 맹세하였다.

그리고 회의로 들어가, 여러 가지 의논이 나왔는데, 결국 우선 긴급한 세 가지 일을 결정하였다.

첫째로, 오는 임신(壬申)년 정월에 기병(起兵)할 것.

둘째로, 그때까지 군량(軍糧)과 군기(軍器)를 충분히 준비해놓고, 군병(軍兵)을 더 많이 모집하여 훈련시키며, 각처의 내응 동지(內應同志)들 간의 연락을 굳게 해놓을 것.

셋째로, 비밀을 엄수하여 누설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동지들 사이의 단결을 더욱 굳게 할 것. 그런데 이 결정에 대하여, 홍총각과 이제초로부터 반대 의견이 나왔다. 이들의 의견으로는 내년 정월에 기병한다면, 앞으로 두 달 이상이 남았는데, 그때까지 아무리 비밀을 지키려고 애써도 도저히 지킬 수 없을 것이니, 되도록 빨리 그 이전에 기병하자는 것이다. 다복동에는 약 일천 명의 장정을 훈련시키고 있는데, 자기 가족들과의 왕래를 금하고는 있지만, 관혼상제(冠婚喪祭)의 대사가 있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을 그대로 거절할 수도 없어, 더러 면회를 시키고 있으며, 개중에는 밤에 몰래 도망하는 자도 있고 해서, 앞으로 너무 질질 끌고 나가면 세상에 널리 소문이 퍼져서, 일도 해보지 못하고, 도리어 탄압을 당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야 일찍 서둘러서 하는 것이 좋은 줄은 누가 모를까만, 준비가 다 돼야지. 덮어놓 고 서둘기만 해서야 - . 그렇지 않소?”

홍총각과 제초의 말을 듣고서, 군칙은 이렇게 반문하며 좌우를 돌아보았다.

“그렇지요. 이것이 무슨 시골 농군들이 몇십 명 모여서 편싸움하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나라를 뒤집어서 새로 세우자는 일인데, 그렇게 경거 맹동(輕擧盲動)해서야 되나? 준비를 다 해가지고 일어나야지.”

“암, 그렇고말고. 앞으로 한 두어 달은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내응할 준비도 하고 연락할 동지들도 더 연락을 하지. 그동안만 어떻게든지 여기서 참아야지요.”

이렇게 응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아니, 시골 농군들의 편싸움은 그렇게 쉬운 줄 아오? 이쪽에서 준비하면 저쪽에서도 준비하고, 이쪽에서 사람을 모으면 저쪽에서도 사람을 모는데, 이기기가 그렇게 쉽겠오? 저쪽에서 어리둥절할 때에, 이쪽에서 먼저 서둘러서 들이쳐야 이기는 게지,

 

다 같이 준비하고, 다 같이 사람을 모아서 한다면야, 승부가 그리 빨리 나겠오? 그러니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다복동의 소문이 퍼지기 전에 기병하도록 하자는 말이오.”

홍총각은 좀 흥분해서 언성을 높이며 주장하였다.

“쇠뿔도 단결에 빼랬다고, 이렇게 여럿이 모인 김에 더 자세한 것을 확정하여 가지고, 적어도 올 안으로 안주(安州) 평양(平壤)을 앗아서 평안도만이라도 손아귀 속에 넣도록 합시다.”

제초도 강경히 주장하였다.

“그거 안될 말이요. 준비가 다 되고, 계획이 다 서야만 일이 되는 법이지, 그렇게 서두르기만 하면 되겠오?”

“그런 용기를 폭호빙하(暴虎憑河)의 용기라고 해서 공자(孔子)님께서도 극히 경계 하시었소. 한날 혈기(血氣)만으로 이러한 큰일이 이루어지겠오?”

이러한 반대하는 소리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공자 왈 맹자 왈 만 찾는 책상물림들과는 도무지 이야기를 하여도 갑갑하여 못 견디겠네. 그래 그렇게들 준비하지만, 우리 준비가 다 되도록 저쪽에서는 가만히 있겠다고 누가 약속이라도 했단 말이오? 이번 우리의 하는 일이 위험한 것은 처음부터 빤한 일 이지, 위험한 것이 무서워서야 어떻게 이런 큰일을 같이 도모하겠소? 죽을 작정하고 덤벼야 살길이 나오지, 온전하게 안전한 길만 찾다가는 그야말로 큰코다칠 테니까 - .”

홍총각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반발하였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뜨고 좌우를 노리고 보며

“위태로운 일이 무섭고 겁이 나는 이는 사양할 것 없이 다들 썩썩 물러가오. 어서 물러가오.”

하고, 호령하였다.

“자 - ,의논은 그만합시다.”

이때까지 양편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든 경래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모두들 고개를 들어 상좌에 앉은 경래를 우러러봤다. 오늘 이 회의를 소집한 원주인이 경래였음을, 모두들 새삼스레 느꼈다.

“내년 정월에 기병하자는 것은 이미 결정된 것이고, 각자 돌아가서 그때까지 충분히 준비하여 일에 상치가 없도록 할 것은 물론인데, 만약 그 이전에 우리들의 일이 탄로 나는 경우에는 그대로 앉아서 기다릴 수 없는 일이니까, 그때는 여기서 적당히 새로 시 일을 정하여 통지할 것이니까, 그런 때에도 바로 내응할 수 있도록 만단의 준비를 갖추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양편에서 길게 언쟁할 것이 없지 않소? 의논은 이만하고 술이 준비된 모양이니, 이제부터는 목을 좀 축이기로 합시다.”

경래는 이처럼 최후의 결론을 나리고, 술상을 가져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양편에서는 모두 말이 없었으나, 대개 찬성하는 표정이었다. 홍총각과 제초편에서는, 결국은 머지않아 일이 탄로 나서 바로 기병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 생각하고, 군칙 을 위시한 대부분은, 결국은 처음 결정한 대로 내년 정월에 기병할 것이니까, 우리의 주장이 그대로 통과된 셈이라고 – 생각하였다.

술상이 들어와서 술잔이 몇 차롄가 돌아가니, 이때까지 긴장하였든 분위기가 겨우 완화되고, 술이 빨리 오르는 패들은 벌서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수심가를 얼버무려 넘겼다. 경래와 군칙과 사용은 셋이서 각처의 동지들과의 연락을 조용조용히 의논하고 있고, 희저와 시창은 좌중에서 친한 사람들도 제일 많고 술도 제일 좋아하는 편이라, 여러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그저 닿는 대로 쭉쭉 들이키고 있었다.

“평안도에서 누구누구하고 칠만한 사람은 오늘 죄 - 다 이 자리에 모인 셈인데 어째 술맛이 안 나겠오? 자, 김진사도 한잔 하오.”

희저가 시창에서 한 잔 따르며, 이렇게 권하니

“아무렴, 원래부터 서북에서 큰 인물이 많이 났지요. 을지문덕(乙支文德)이니, 양만춘 (楊萬春)이니, 서산대사(西山大師)니, 김경서(金景瑞)니, 정봉수(鄭鳳壽)니 - 이것이 모두 서북에서 나지 않았오? 임진왜난(壬辰倭亂)만 하더래도 그렇지, 우리 평안도 빼놓고는 조선 팔도가 거의 다 왜놈들한테 점령당하였던 것을, 우리 서북 사람들이 중국에서 나온 명(明)나라 구원병과 협력하여 겨우 왜병을 물리치고, 나라를 회복해놓지 않았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북 사람이 그 후 어떠한 대우를 받고 있소? 제법 똑똑한 벼슬 하나 얻어 하지 못하고, 큰 벼슬은 서울서 세도 하는 양반놈들이 서로 꼭 짜고서 독차지 하고 있지 않소? 생각하면 복통을 할 노릇이지요.”

창시는 받은 술잔을 한꺼번에 쭉 들이키며, 말을 이었다.

“이때까지 서북 사람이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지요. 이번에 서울로 처 올라가서 어디 세도 하던 놈들이 얼마나 잘난 놈들인가 단단히 좀 따져보자지.”

“가서 따져보나 마나 하지. 김진사야 그까지 세도 하는 서울 양반들에게 대겠오. 이번에 우리 일이 성사만 하면 김진사야 영의정(領議政) 하나야 따놓은 거나 진배없지, 문장으로나 재능으로나, 김진사 덮을 사람이 누가 있더란 말이오? 영의정 되거든 우리 장사하는 사람들 돈 좀 잘 벌도록 해주. 지금처럼 중국에 가는 사신(使臣) 뒤에 따라다니는 역관(譯官)들을 통해서 물건을 넘겨 맡아서야, 어디 이가 박하고자 따라서 되오? 아주 중국과 좀 더 터놓고 거래를 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요. 김진사야 술도 잘 먹고, 언변도 좋으니까 이런 교섭쯤은 문제없겠지. 머, 허허허!”

희저는 앞으로 쑥 나온 배때기를 뒤흔들며 웃어댄다.

“하기야 장삿속도 그렇지, 서북 사람이 힘들여 벌어놓으면 평안감사니, 무어니 하고 서울 양반이 내려와서는 별별 조건을 다 붙여 가지고 닥닥 긁어가고 마니까 - .”

“그러니까, 우리 장사꾼들이 이번 일에 이처럼 이를 악물고 덤벼드는 계 아니요.”

희저와 창시를 둘러싸인 판이, 이야기가 제일 활발하다.

홍총각과 제초는 좀 떨어져 앉아서 묵묵히 이들의 떠드는 소리만 들으면서 술을 마시 고 있다가, 술맛도 별로 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밖으로 빠져나와서 다복동으로 향하였다.

홍총각은 돌을 하나 주어서 냅다 팔매질을 하면서

“벼슬하고 싶어 하는 놈들은 왜 그리 벼슬 욕심이 많고, 장사꾼 놈들은 또 왜 그리 돈 벌 욕심만 그렇게 많을까? 기막힐 노릇이로구먼 - .”

하고, 제초를 돌아보았다.

“우리 일이 성공한대도, 잘못하면 남의 좋은 일을 해주게 될까 보. 우리 둘이야 또 차마 괄시 못하여 훈련대장(訓練大將)이니 무어니 차지가 올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거느리고 갈 저 농군들이야 무엇이 되겠오? 큰 벼슬을 바라겠오? 큰 부자가 되기를 바라겠오? 결국은 도로 땅 파는 농군이 될 터인데, 그들에게 무슨 이익이 돌아가겠오?”제초는 오늘 저녁에 이때까지 생각하였던 것을 한탄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그들은 삼 년이나 가물이 내리 드는 바람에, 먹고 살 수가 없어서 다복동으로 모여 왔는데, 어떻게든지 그들이 먹고살 도리를 생각해 주어야지. 실컷 부려만 먹고, 이익은 딴 놈이 앗는대서야 될 말이오. 그렇게 된다면, 나라를 뒤집어엎으나 마나 하지, 결국은 그놈이 그놈일 것이 아니요? 왜 글깨나 배웠다는 놈들하고, 돈푼이나 가졌다는 놈들은 모두 생각하는 것이 그 지경일까?”

“겁은 지독하게 많으면서 입으로 둘러맞추기는 용하게들 둘러맞추거든 - . 실제로 싸움이 벌어져야, 그자들도 좀 정신을 차리겠지.”

“그자들 없이는 아무 일도 되지 않고, 같이 일을 하자니 일이 잘 되어 나갈 것 같지 않고 - 하여간 고질이여.”

“그자들 없이야 당장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어떻게 먹여 나가겠오. 그자들이 모두 장삿속으로 덤벼든 줄을 번연히 알지만, 그것을 안 받아 가지고는 애당초에 일을 해 나갈 수가 없는 것을 어쩌겠오?”

“우리 일이 성공하는 날에는 어떻게든지 그자들을 꾹 눌러 가지고, 농민들이 좀 잘 살아나갈 연구를 따로 해야지, 그대로 내버려 두던 못할게요.”

“그러니 우리의 책임이 여간하오?”

둘은 서로 믿고 일할 사람은 자기들 둘뿐이라는 것을 새삼스러이 느끼어,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서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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