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텍스트 98

기형도의 가을무덤-제망매가

가을 무덤- 祭亡妹歌 기형도 누이야 네 파리한 얼굴에 철철 술을 부어주랴 시리도록 허연 이 零下의 가을에 망초꽃 이불 곱게 덮고 웬 잠이 그리도 길더냐. 풀씨마저 피해 나는 푸석이는 이 자리에 빛 바랜 단발머리로 누워 있느냐. 헝클어진 가슴 몇 조각을 꺼내어 껄끄러운 네 뼈다귀와 악수를 하면 딱딱 부딪는 이빨 새로 어머님이 물려주신 푸른 피가 배어나온다. 물구덩이 요란한 빗줄기 속 구정물 개울을 뛰어 건널 때 왜라서 그리도 숟가락 움켜쥐고 눈물보다 찝찔한 설움을 빨았더냐. 아침은 항상 우리 뒷켠에서 솟아났고 맨발로도 아프지 않던 산길에는 버려진 개암, 도토리, 반쯤 씹힌 칡. 질척이는 뜨물 속의 밥덩이처럼 부딪히며 河口로 떠내려갔음에랴. 우리는 神經을 앓는 中風病者로 태어나 全身에 땀방울을 비늘로 달고 ..

법정의 수필 '초가을 산정에서'

초가을 산정에서 - 법정 해발 890미터, 산 위에 올라와 오늘로 사흘째가 된다. 물론 혈혈단신 내 그림자만을 데리고 올라왔다. 휴대품은 비와 이슬을 가릴 만한 간소한 우장과 체온을 감싸줄 침낭, 그리고 며칠분의 식량과 그걸 익혀서 먹을 취사도구. 산에서 사는 사람이 다시 산을 오른다면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로 산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적이 미치지 않은 보다 그윽한 산을 오르고 싶은 것이다. 새삼스레 등산을 하기 위해서거나 산상의 기도를 위해서가 아니다. 무슨 수훈(垂訓)을 내리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 한 꺼풀한 꺼풀 훨훨 벗어버리고 싶은 간절한 소망에서 떨치고 나서게 된 것.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보다 더 투명해지고 싶어서, 더욱더 단순해지고 싶어서 산정(山頂)에 오른 것..

외솔 최현배의 시조 '한힌샘 스승님을 생각함'

한힌샘 스승님을 생각함 -가신 지 열다섯 해 에 최현배 백두산(白頭山) 앞뒤 벌에 단군 한배 씨가 퍼져 오천년(五千年) 옛적부터 고운 소리 울리나니 조선말 조선 마음이 여기에서 일더라. 골잘의 배달겨레 대대(代代)로 닦아내매 아름다운 말소리를 골고루 다 갖췄네. 훌륭ㅎ다 동방(東方)의 빛이니 더욱 밝아지이다. 세월이 반만년(半萬年)에 인물(人物)인들 적을쏘냐. 고운(孤雲)의 한문(漢文)이요 설총(薛聰)의 이두(吏讀)러라. 그러나 내 것 아니매 내 글만을 원(願)터라. 거룩하신 세종대왕(世宗大王) 온 백성 원(願)을 이뤄 이십팔자(二十八字) 지어내니 천하(天下)에도 제일(第一)이라. 좋은 말 좋은 글이니 민복(民福)인가 하노라. 보검(寶劍)도 갈아야만 날이 서 번득이고 양마(良馬)도 달려야만 기가 나서 천..

유종호의 수필 '고향'

고향 유종호 옛적의 유대민족 사이에서는 성년이 된 자식을 짝을 지워 집에서 쫓아내는 풍습이 있었다. 협착한 고향과 아버지의 터전을 벗어나 독립하여 타관에 가서 삶의 새 가능성을 열어보라는 관습의 명령이었다. 이렇게 자식을 떠나보냄으로써 좁은 터전에서 대가족이 아웅다웅하는 볼품없는 정경을 예방할 수 있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낙원 상실 얘기의 원천을 바로 이러한 유대민족의 옛 풍습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다. 에덴동산은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의 이름이었다. 이러한 인류학적 해석이 얼마만한 학문적 동의를 얻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들이 구상하는 이상적인 낙원이나 유토피아가 어린 시절의 세계 상봉이나 행복 체험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