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산정에서 - 법정 해발 890미터, 산 위에 올라와 오늘로 사흘째가 된다. 물론 혈혈단신 내 그림자만을 데리고 올라왔다. 휴대품은 비와 이슬을 가릴 만한 간소한 우장과 체온을 감싸줄 침낭, 그리고 며칠분의 식량과 그걸 익혀서 먹을 취사도구. 산에서 사는 사람이 다시 산을 오른다면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로 산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적이 미치지 않은 보다 그윽한 산을 오르고 싶은 것이다. 새삼스레 등산을 하기 위해서거나 산상의 기도를 위해서가 아니다. 무슨 수훈(垂訓)을 내리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 한 꺼풀한 꺼풀 훨훨 벗어버리고 싶은 간절한 소망에서 떨치고 나서게 된 것.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보다 더 투명해지고 싶어서, 더욱더 단순해지고 싶어서 산정(山頂)에 오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