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텍스트/소설과 산문 32

백기완의 '장산곶매 이야기'

장산곶매 이야기 백기완   옛날에 황해도 구월산 줄기가 황해바다를 만나 문뜩 멈춘 장산곶 마을의 솔숲에는 낙락장송을 둥지로 삼아 살고 있는 매가 있었다. 그중 장수매를 동네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생각해왔다. ​ 장산곶매는 1년에 딱 두 번 대륙으로 사냥을 나가는데 사냥 떠나기 전날 밤에는 자기 집에 대한 집착을 버리려고 ’딱 딱 딱‘ 부리질로 자기 둥지를 부수고 날아갔다. 그래서 이 고장 사람들은 장산곶매가 부리질을 시작하면 같이 마음을 졸이다가 드디어 사냥에서 돌아오면 춤을 추며 기뻐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대륙에서 집채보다 더 큰 독수리가 쳐들어와서 온 동네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그놈은 송아지도 잡아가고, 아기도 채어 갔다. 사람들이 어쩌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는데 이때 장산곶매가 날아올라 맞대하..

취미로서의 번역 - 무라카미 하루키

취미로서의 번역 - 무라카미 하루키 내가 처음 번역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소설가가 번역하는 거니까 보통 번역자와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의식 내지 자부심 같은 것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지만, 한동안 경험을 쌓고 여기저기머리를 쿵쿵 부딪히고 나니 그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되도록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지극히 수수하고 중립적으로 텍스트에 몸을 맡기고, 그 결과 종착점에서 절로 '뭔가 다른' 부분이 나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독특한 맛을 내려고 노린다면 번역자로서는 아무래도 이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훌륭한 오디오 장치가 최대한 자연음에 가까워지기를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번역의 진짜 묘미는 세세한 단어 하나하나까지 얼마나 원문에 충실하게 옮기는가. 그것 하나다. 스..

법정의 수필 '초가을 산정에서'

초가을 산정에서 - 법정 해발 890미터, 산 위에 올라와 오늘로 사흘째가 된다. 물론 혈혈단신 내 그림자만을 데리고 올라왔다. 휴대품은 비와 이슬을 가릴 만한 간소한 우장과 체온을 감싸줄 침낭, 그리고 며칠분의 식량과 그걸 익혀서 먹을 취사도구. 산에서 사는 사람이 다시 산을 오른다면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로 산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적이 미치지 않은 보다 그윽한 산을 오르고 싶은 것이다. 새삼스레 등산을 하기 위해서거나 산상의 기도를 위해서가 아니다. 무슨 수훈(垂訓)을 내리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 한 꺼풀한 꺼풀 훨훨 벗어버리고 싶은 간절한 소망에서 떨치고 나서게 된 것.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보다 더 투명해지고 싶어서, 더욱더 단순해지고 싶어서 산정(山頂)에 오른 것..

유종호의 수필 '고향'

고향 유종호 옛적의 유대민족 사이에서는 성년이 된 자식을 짝을 지워 집에서 쫓아내는 풍습이 있었다. 협착한 고향과 아버지의 터전을 벗어나 독립하여 타관에 가서 삶의 새 가능성을 열어보라는 관습의 명령이었다. 이렇게 자식을 떠나보냄으로써 좁은 터전에서 대가족이 아웅다웅하는 볼품없는 정경을 예방할 수 있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낙원 상실 얘기의 원천을 바로 이러한 유대민족의 옛 풍습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다. 에덴동산은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의 이름이었다. 이러한 인류학적 해석이 얼마만한 학문적 동의를 얻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들이 구상하는 이상적인 낙원이나 유토피아가 어린 시절의 세계 상봉이나 행복 체험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

이명선의 '홍경래전' - 주요 인물

主要人物 [주요 인물] 洪景來[홍경래] = 平西大元搜[평서대원수], 龍岡出身[용강출신], 三十二歲 [세] (或[혹] 은 二十九歲)[세], 最高[최고]의 指導者[지도자], 定州陷落時[정주함락시]에 戰死[전 사] 禹君則[우군칙] = 總參謀[총참모], 泰川出身[태천출신], 賤孼子[천얼자], 三十八歲? [세?] 定州陷落時[정주함락시]에 生擒[생금] 金昌始[김창시] = 副參謀[부참모], 郭山[곽산]의 金進士[김진사]로 士林[사림]에 名望 [명망]이 있었다. 昌城[창성] 가는 途中[도중]에서 횡사[橫死] 李禧著[이희저] = 兵站長[병참장], 嘉山驛屬[가산역속]으로, 大富豪, 定州陷落時[정주함락시]에 生擒[생금] 洪總角[홍총각] = 先鋒將[선봉장], 郭山出身[곽산출신], 定州陷落時[정주함락시]에 生擒[생금] 李濟初[..

이명선의 '홍경래전' - 14. 정주 농성

14. 定州(정주) 籠城(농성) 송림의 패전으로 남군은 정주로 몰리고, 사송야의 패전으로 북군은 그 중심을 잃게 되어, 이미 대세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파국에 이르렀다. 허황, 김견신을 대장으로 하는 의주의 의병은, 정월 십일 일에 사용이 지키는 양책참을 쳐 회복하고 더욱 기세를 높이며 남하하고, 사송야 싸움에 이긴 관군은, 이와 전후하여 선천을 쳐 회복하고, 의기충천하여, 북쪽으로 처 올라왔다. 남하하는 의병과 북행하는 관군 틈에 끼이어, 잔병을 거두어 사이 길로 숨어서 정주성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이렇게 되고 보니, 한때는 청천강 이북의 팔읍을 점령하여 평안도 전부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를 보이든 경래의 혁명군도, 기병한 지 이십여 일에 작전의 실패와 반역자의 속출로 도처에서 패퇴하여, 정월 이십 ..

이명선의 '홍경래전' - 13. 반역자

13. 反逆者 (반역자) 경래는 송림 싸움에 패하기는 하였으나, 그렇게 아주 절망한 것은 아니었다. 성곽이 견고하여 지키는데 유리한 정주에 우선 임시로 입성하여, 여기를 지키면서, 북군의 남하하는 것을 기다리고 창성(昌城) 강계(江界) 등지의 구원병을 재촉하여, 다시 남진을 꾀하자는 것이, 경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제 상처도 완전히 나아서, 직접 진두에 나서서 지휘하게 되면, 사기(士氣)도 왕성해지겠고 전국을 다시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이때에 창시와 송지염(宋之濂)이, 둘이 경래 앞에 나타나 난국의 타개책을 말하였다. 송지염은 원래 강계(江界)의 향임(鄕任)으로, 만주에 있는 중국 상인들과 어울리어 크게 장사를 시작하였다가, 수천 냥의 공금만 허비하고 이것을 갚을..

이명선의 '홍경래전' - 12. 송림싸움

12. 松林(송림) 싸움 이십 일 밤중에 불의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어 혼수상태에 빠졌던 경래는, 그 이튿 날 저녁에야 겨우 의식을 회복하였고, 이십이 일 점심때부터 겨우 정신을 차리어 들어 누운 채로 군칙 등과 만나서 급한 일부터 처리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제일 먼저 명령한 것이, 송림에 있는 홍총각에게 밀서를 보내어, 안주 공격을 중지시키는 일이었다. 자기들도 모르게 이러한 커다란 계획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자, 군칙은 펄펄 뛰며, 홍총각을 곧 불러다가 규율을 위반한 책임을 추궁하자고 서둘렀다. 경래는 책임을 추궁할 의사는 없었으나, 대린 이하 네 명의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안주 병사 이해우가 무슨 커다란 모략을 하고 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음으로, 어쨌든 우선 홍총각을 박천으로 부르는 것이 ..

이명선의 '홍경래전' - 11. 안주

11. 安州 (안주) 안주(安州)는 평안도에서 제일가는 요지다. 바로 북에 청천강(淸川江)을 끼고 있고, 의주로 통하는 대로의 길목이라, 사십이 주의 병마(兵馬)에 대하여 명령권을 가진 평안 병사(平安兵使)의 본영(本營)이 있다. 따라서 성곽이 견고하고, 출반군졸이 늘 주둔하 고 있어, 시골 보통 소읍과는 그 형편이 매우 다르다. 안주가 이러한 요지니만큼, 경래도 여기를 함락시키기가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하였었다. 그리하여 관군(官軍)의 병력이 이리 집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먼저 평양에서 대동관을 폭발시켜 폭동을 일으키게 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실패로 돌아가고 도리어 이쪽의 비밀만 탄로시킨 결과로 되었으나, 경래의 안주 공격의 용의가 상당히 신중하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안주에 있는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