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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의 '홍경래전' - 4. 장수들

New-Mountain(새뫼) 2022. 10. 2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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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수들

 

반란을 일으키어 나라를 뒤집어엎으려면, 모사(謀士)니, 부호(富豪)니, 명사(名士)니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직접 병대를 이끌고 싸움터로 나가서 지휘하는 장수가 필요하다. 경래도 이러한 장수를 얻느라고 도 각처로 돌아다니며 별별 수단을 다 썼다.

경래가 제 편으로 끌어넣은 장수 중에 먼저 홍총각(洪總角)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홍총각은 곽산(郭山) 사람으로,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다. 원이름은 이팔(二八)이나 삼십이 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여, 홍총각으로 통하였다. 기운이 장사라, 먹기도 남의 세 몫 먹고, 일도 남의 세 몫하고, 자기도 남의 세 몫 잤다. 산에 발매를 가면 우연만한 나무는 손으로 쑥쑥 뽑아 버리고, 좀 큰 나무는 도끼질을 하는데, 그 도끼가 보통 도끼는 휘휘 날린다고 해서, 대장간에 가서 특별히 큼직하게 벼려서 보통 장정은 잘 들지도 못할 만한 것을 가지고, 한 번이나 두 번만 찍으면 턱턱 쓰러지고, 아무리 큰 나몰지라도 세 번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저 나르는 데도 보통 지게는 약해서 쓰지 못하고, 특별히 굵은 나무로 커다랗게 만들어서 산더미처럼 추켜 싣고 단숨에 저 날렸다.

이러한 힘든 일은 남의 열 배도 하고 스무 배도 하는데, 논에 모를 심는다든가 밭은 맨다든가 하는 - 손끝으로 깐질 깐질 하는 곰상 맞은 일은 도무지 성미에 맞지 않아서, 이런 때가 되면 드러누워서 낮잠만 식식 잤다. 그렇다고 주인이 무어라고 꾸중을 하면 영영 틀어져서 가래를 가지고 가서 논둑을 푹푹 파 젖혀 버리든지, 밭 한 가운데 다가 커다란 바위를 굴려다 놓음으로 이런 때는 그저 내버려 두는 수밖에는 없었다.

홍총각은 저 자신이 본시 힘이 세지만, 또 그와 의형제를 맺고 지내는 패가 사십여 명이나 있어, 이 중에 누구고 한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사십여 명의 와르르하고 몰려들므로, 곽산 골에서는 관속들도 달리 취급하였다. 그런데 이 사십여 명의 패는, 모 다 남의 집 머슴을 사는,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자들로만 조직되어서 이렇게 싸움할 때뿐만이 아니고, 그중에서 누가 앓는다든가 죽는다든가 할 때에도, 모두 추렴을 내어 형편 닫는 데까지 서로 도와주었다. 그리고 홍총각은 특별히 기운이 세니까, 아직 총각이지만 맏형으로 모시고, 그 이외는 나이로 따져서 형제를 정해서 형제간의 우애가 극진하였다.

경래는 곽산 어느 술집에서 홍총각을 만났다. 경래가 들어갔을 때에는 홍총각은 방안에서 벌써 상을 차려다 놓고 주인댁을 옆에 앉히고서 한참 먹는 판이었다.

“주인댁! 여기도 술 한상 차려주오.”

하고, 술을 청하였다.

“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주인댁은 이렇게 대답은 하면서도, 바로 일어서지 않았다.

“여기도 빨리 좀 갖다주. 왜 사람이 사람 같지 않은가?”

“네. 곧 갑니다.”

그러나 주인댁은 여전히 바로 일어서지 않았다.

“이거, 술을 안 팔고 말을 파는 거요? 어서 가져오지 못하오?”

경래의 언성이 제법 높아졌다. 주인댁이 마지못하여 일어서려 하니까, 홍총각이 꽉 부 잡고, 흘끔 경래를 쳐다보며

“여기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요. 못 기다리겠거든 다른 주막에 가보.”

하고서는, 여전히 술을 먹고 있다.

“여기 바로 썩 술 좀 못 가져오오?”

경래는 홍총각의 소리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외쳤다.

“아니,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홍총각이 화가 버럭 나서 경래를 노리고 본다. 불과 한주먹거리도 되지 못해 보인다.

“주인댁! 술 좀 못 가져오겠오?”

경래는 여전히 홍총각의 소리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외쳤다. 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방에서 비호같이 뛰어나온 홍총각의 주먹이, 번개같이 경래의 머리를 후려쳤다. 일순간의 일이다.

그러나 경래는 감쪽같이 싹 피해 서고, 주먹은 경래가 기대고 있던 뒷벽에 맞아서, 벽이 와르르 허물어졌다.

“누가 술 달랬지 주먹 달랬나? 주먹맛은 술맛만 못한걸 - .”

경래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홍총각의 주먹은 또 번개같이 경래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경래는 감쪽같이 피하고, 뒷벽만 와르르 허물어졌다.

“그 집에는 술은 없고 주먹만 있는가 보군 - .”

경래는 입맛을 찍찍 다시며 마당으로 내려서서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홍총각은 아주 화가 날 대로 나 가지고 그 뒤를 따라나섰는데, 곧 붙잡을 것 같으면서 붙잡히지 않았다. 두 주먹을 발라 쥐고 쫓아갔으나 영영 붙잡히지 않았다. 뒷산 등성이에 이르자,

“우리 농담은 그만하고 인사합시다.”

하고, 경래는 뒤로 홱 돌아서서 홍총각의 손을 꽉 쥐는데, 손가락이 아스러지는 것처럼 아팠다.

“예, 예.”

홍총각은 저도 모르게 예 소리가 연거푸 나왔다.

“댁이 유명한 홍총각이지. 나는 홍경래라는 사람이오. 우리 다시 내려가서 술이라도 나누며 이야기합시다.”

그리곤 오든 길을 도로 걸어서 술집으로 들어갔다. 홍총각도 그 뒤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키는 적으나 성취하였고, 또 나이도 한두 살 더 먹은 것 같으니 호형하오. 더구나 같은 홍가끼리니까, 아주 잘 되었오. 그리고 기왕 형제가 될 바에야, 동생이 그저 총각이래서야 되겠오. 우리 돌림 자가 내(來) 자니, 새로 봉내(奉來)라고 이름을 짓겠는데, 의향이 어떻소?”

“형님 의향이 그렇다면야 - .”

이리하여 둘은 의형제가 되었다. 이때부터 홍총각은 경래의 가장 신임하는 장수가 되고, 또 따라서 의형제 맺은 다른 사십여 명의 동생들도 모두 한꺼번에 여기에 참례하게 되었다.

다음에 중요한 장수로서 이제초(李濟初)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제초는 개천(价川) 사람으로, 어려서 산에 들어가서 상자 노릇을 하였는데, 그때 장수물을 먹고서부터 힘이 세졌다는 것이다. 장수물이라는 것은, 그 절에서 십 리는 더 산속으로 들어가서 큰 바위틈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떨어지는 물인데 처음에는 아무도 모르던 것을, 그 절 중 하나가 이것을 발견하고, 여러 해 두고서 밤중에 남몰래 받아먹어서 기운이 아주 장수가 되었다. 그리던 중에, 그 중이 밤마다 어디로 나가는 것이 하도 수상해서, 제초가 몰래 그 뒤를 밟아갔더니,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물을 한 바가지 받아먹고서 돌아오는 것이었다. 도대체 저 물이 무슨 물인가 하고, 그 후부터 제초도 몰래 그 물을 훔쳐먹었다. 그리하여 그중에 다음가게 힘이 세어졌다. 그러나 이 소문이 퍼져 그 근처 사람들이 다 알게 되어, 모두 몰려가서 장수물을 받아먹었더니, 여러 사람이 알고부터는 물 효과가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하여간 제초는 이렇게 하여 힘이 세어졌다는 것이다. 그의 힘이 어찌나 세던지 정월에 여러 동리가 편을 갈라서 줄을 당기는데, 제초가 이편에 가서 당기면 이편이 이기고, 저편에 가서 당기면 저편이 이기고 하였다. 그래서 정월이 되면 서로 제초를 자기편에 끌어넣으려고 술대접을 하느라고 야단들이다.

이러한 줄다리는 이야기가 한참 벌어진 정월 어느 날, 경래는 술집에서 제초를 만났다.

“이장군이 아니십니까?”

경래는 술좌석에서 넌지시 말을 걸었다. 제초는 힘이 세다고, 이 근동에서는 이장군이라고도들 불렀다.

“예, 이장군인데, 댁은 누구시오?”

“성함은 익히 들었습니다. 저는 조처사(趙處士)라고 합니다. 장군을 뵈려고 먼 데서 일부러 왔습니다.”

“저를 보려고 말이지요?”

“예, 꼭 좀 뵈옵고 여쭐 말씀이 있어서요 - .”

“무슨 말씀이십니까? 해 보시오.”

“다름이 아니라. 제가 거주하는 다복동(多福洞)이라는 데서 굉장히 큰 줄을 당기게 되는데, 장군의 각별한 후원을 입고자 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다복동이라는 데가 있든가요?”

“예, 가산(嘉山)과 박천(博川)과 두 골 사이에 있는데, 근자에 새로 금점을 하게 되어, 그 피로를 겸하여 큰 줄을 당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상당히 많이 꼬이겠구려.”

“벌써부터 야단들입니다. 힘 꼴이나 쓴다는 이는 죄다 모였습니다. 장군을 제가 모셔 오기로 되어서 아주 노자까지 준비해 가지고 왔습니다. 떠나실 수만 있다면 오늘이라도 곧 떠나주셨으면 합니다.”

“그렇소? 그러면 어디 구경 삼아 한번 가볼까요.”

이리하여 제초를 다복동으로 인도하였다. 경래는 자기의 커다란 계획이 탄로 날 가 봐서 가끔 성명을 바꾸었으며, 변장을 자주 하였으므로, 자기가 절대로 신임하는 몇몇 사람 이외에는 그 정체가 퍽이나 신비하고 모호하였다.

다복동에서 당기려고 계획하는 줄이야, 하기야 굉장히 큰 줄이다. 나라를 하나 뒤집어 서 새로 세우느냐, 못 세우느냐 하는 줄이니, 이보다 더 큰 줄이 어디 있으랴? 개천(价川) 골짜기에서 힘이 뻗쳐서 못 견디는 제초로서도 한번 나서 봄 직한 줄이다.

중요한 장수로서 다음에 김사용(金士用)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태천(泰川) 사람으로 우군칙과 동향이라, 군칙의 추천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 용맹에 있어서 홍총각이나 이제초에 지지 않고, 또 그 위에 지략(智略)이 출중하여 문무가 겸비한 대장감이다. 경래가 처음 그를 만나 시험해보고, 홍총각과 우군칙을 한데 합해놓은 셈이라고, 감탄하여 마지않았다.

이 이외에도 당당한 장수를 적지 아니 모았다. 그 방법으로는 먼저 이제초를 끌어 넣을 때에도 쓴 방법이지만, 다복동에서 금점을 한다는 소문을 널리 퍼져서 대량으로 장정을 모집하였다.

그때 농촌에서는 삼 년을 내려서 가물이 들고, 더구나 그 해 신미년(辛未年)에는 팔십 먹은 노인도 처음 본다는 큰 가물이라, 처음부터 모라고는 꽂아보지도 못한 논들이 많아서, 가을부터 일반 농가에서는 벌써 먹을 것이 없어서, 도조니, 빚에 쪼들리다 못하여, 야반도주하는 집이 적지 않았다. 이런 때에 다복동에서 금점을 한다는 소문이 들리니, 그들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힘 꼴이나 쓴다는 사람은 우 - 하고 다복동으로 몰려들었다. 다복동에서는 홍총각과 이제초가 중심이 되어, 각처에서 모여든 장정들을 힘과 제조를 시험하여 장교(將校)와 병졸로 나누고, 미리 예비하여 두었던 집에 각각 배치하여, 삼시를 배불리 먹이고, 매일 맹렬하게 싸움 연습을 시켰다. 돌 들기, 줄 타 넘기, 칼 쓰기 - 이러한 것이 그 중요한 것이다. 말 잘 타는 사람은 특별히 취급하여 말 달리기에 주력을 두었다.

이리하여 이때에 다복동에 모여든 장정의 수효는 천 명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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