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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의 '홍경래전' - 8. 기로

New-Mountain(새뫼) 2022. 10. 2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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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岐路 (기로)

 

경래가 가산읍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밤도 너무나 깊었고, 또 선봉대가 벌써 점령할 것은 다 점령하여 버렸음으로, 그대로 쉬고, 이튿날 일찍이 수뇌부만 모이어 긴급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제일 먼저, 가산군수를 죽인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가지고 홍총각과 희저와 정면충돌을 하고 말았다. 희저는 어젯밤에 연홍의 집에서 자면서, 홍총각의 행동은 정의를 위하여 이것은 혁명군으로서는 절대로 용납되지 못한다는 것을 누누이 듣고 왔었으므로, 이것을 제 주장인 것처럼 내세웠다.

“항복하려고 대장을 불러달라는 것을 죽이는 것은 항복한 것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오? 항복하는 자도 죽인대서야, 누가 항복을 하겠오? 우리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오.”

“그 말은 부당하오. 우리가 나라를 뒤집어엎자고 나선 이 마당에 긴 -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요. 항복하겠느냐, 못하겠느냐 물어서, 바로 항복하면 살려주고, 그래도 군소리를 하면 죽이고 - . 이밖에 무슨 도리가 있겠오? 지금은 전쟁이오, 전쟁 - .”

하며, 홍총각은 두 눈을 부릅떠서 희저를 보았다.

“전쟁일수록 야만적 행동을 삼가고, 덕으로서 인민을 교화하여야지,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야 되겠오? 인의예지를 지켜서 성현의 도에 어그러지지 말아야지. 홍장군의 처사는 너무나 과격한 것 같소.”

희저 대신 이번에는 창시가 나섰다.

“그렇소. 과격하여서야 되겠오. 우리가 대사를 도모하느니 만치 행동을 삼가서 중용의 덕을 지켜야지 - .”

군칙도 서슴지 않고 여기에 찬성하였다. 그러고 항상 홍총각의 편을 들든 제초는 이러한 문제가 논의될 줄은 전혀 예기하지 못하였었음으로, 전적으로 홍총각 편을 들지 못하고, 겨우

“진심으로 항복만 한다면 죽일 것이 없겠지만, 그놈들이 진심인지 아닌지가 문제지 요.”

하고, 그저 어리벙벙하게 반문하였을 뿐이다. 홍총각은 자기가 완전히 고립하여 있음을 새삼스러이 깨달았다.

“지금 원 노릇을 하고 있는 놈 중에 진심으로 항복하는 놈이 어디 있겠단 말이오. 그렇게 쉽게 맘을 고칠 놈들이, 그처럼 백성을 못 살게 들볶아서 멀쩡한 강도질을 한단 말이오? 그런 놈들을 어떻게 믿겠오? 다른 이는 몰라도 나는 절대로 믿을 수 없소.”

홍총각이 끝까지 굽히지 않고 버티니

“아니 그러면 원이란 원은 죄다 잡아 죽여야 된단 말이오? 그런 무지막지한 놈의 일이 어디 있단 말이오?”

모두 제 편을 드는 바람에 희저는 신이 나서 비웃는 어조로 반문하였다.

“그야 물론 죄다 죽일 작정으로 덤벼야지. 더 말할 것 있소? 우리의 적이 누구요? 우 리의 원수가 누구요? 원수를 살려라, 원수를 용서하라 하여 가지고 무슨 전쟁이 된단 말이오. 그처럼 원 놈들의 편을 들 테면, 애당초 이런 일에 왜 참가하였소? 나는 그런 이들과 도저히 같이 일할 수 없으니, 맘대로들 해 보.”

홍총각은 좌중을 잔뜩 노리고 보다가, 그대로 휑하고 나가버렸다.

이 동안 경래는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홍총각의 불과 같은 혁명 정신에 근본적으로는 공명하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그를 붙들 수는 없었다. 그처럼 대담하게, 그처럼 철저하게 덤벼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바로 그의 편을 들 수는 없었다.

“원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윽고 군칙이 여럿을 대표하여 물었을 때, 경래는 여전히 전체의 의견에 따라

“항복하는 자는 죽여서는 안 될 것이오. 다만 항복하기를 꺼려하는 자나, 혹은 다시 우리를 배반할 염려가 있는 자는 용서 못 할 것이오.”

하고, 한번 좌우를 돌아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홍장군은 이번에 선봉장으로서 공이 제일 컸었고, 정시라는 자가 바로 항복하지 않고 우물쭈물한 모양이니, 이번 일은 일절 불문에 부치겠소. 앞으로도 물론 선봉 장으로 내세울 것으로, 이것은 내게 일임하여 주.”

이리하여 이 문제는 낙착하고, 다음에는, 앞으로의 작전을 의논하였다. 홍총각과 제초 로 북행하여 북군과 협력하여 정주(定州)를 치게 하고, 경래 자신은 대군을 거느리고 동행(東行)하여 박천(博川)읍을 치기로 하였다.

“그렇게 되면 남쪽 안주(安州), 평양(平壤)을 치는 것이 너무나 늦어지지 않겠습니까?”

제초가 이처럼 반문하자 이때까지 말석에 묵묵히 앉아있든 김대린(金大麟)이가 썩 나서서

“정주는 북군에게 일임하고, 박천에는 일 부대만 보내어 항복 받고, 대원수께서는 전력을 기울이어 여기서 바로 안주로 향하는 것이 상책일 것 같습니다”

하고, 주장하였다. 김대린은 안주에서 온 유력한 내응 동지로, 신도회의 때부터 참가하였던 것이다.

“안주병사도 이미 대개 연락이 되었고, 이인배(李仁配)니, 이무경(李茂京) 형제니, 모두 안주에서 머물러서 공작 중이니까, 여기서 바로 들이치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안주만 함락하면 평양도 저절로 함락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평안도는 순식간에 모두 우리의 손아귀 속에 들어올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대원수께서는 이 자리에서 바로 이렇게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린은 계속해서 자신만만하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먼저 박천을 점령하고 북군이 의주까지 점령하는 것을 기다리어, 뒷근심이 없이 하여 가지고 당당하게 남쪽으로 내려 밀자는 것이 원래부터의 작전 계획이었다. 그리고 모두들 이 계획을 변경시킬 생각은 조금도 없었음으로, 대린의 자신만만한 주장도 하등의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대로 묵살당하였다.

다음의 군복제도(軍服制度)를 정하였다.

복색은 푸른 빛으로 하고, 붉은 천을 베어서 등과 가슴에다가 붙이어, 호의(號衣)를 구별할 것.

관은 장교는 전립(戰笠)과 호피관(虎皮冠)을 쓰고, 일반 병졸은 붉은 수건을 쓸 것. 이 군복제도는 주로 창시의 의견에 의한 것이다.

다음에 가산의 주관장(主管將)을 윤원섭(尹元燮)으로 정하기로 하였다. 윤원섭은 가산서 희저의 다음가는 부자로, 한문도 유식하고, 신도회의 때부터 참가한 내응 동지였다. 윤섭은 우선 급한 일로 병졸들이 규율(規律)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전령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리고 그의 보고에 의하면, 어제 밤중에 약탈당한 데가 세 군데나 있었고, 그중에 한 군데서는 들켜서 도망가려 하는 것을 잡아 바치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처결하면 좋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놈들은 단번에 목을 베어서 극형에 처하여야지. 멀쩡한 살인강도가 아니오? 그런 놈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야 돈푼이나 가진 사람이 마음을 놓을 수가 있겠소.”

희저는 서슴지 않고 이렇게 주장하였다. 가산이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니만큼, 이해관계가 제일 직접적이었다.

“우리 혁명군은 추호도 범하지 않고 안민청경(安民淸境)하자고 나서니만큼, 그런 놈들은 목을 베어서 네거리에다가 내걸어서, 이후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오. 백성을 범하게 되면, 차차로 질서가 문란하여 상하의 구별도 없어지고, 우리의 목도 언제 어떻게 달아날는지 알겠오? 참으로 중대한 문제니, 극형에 처해야 할 것이오. 그리고 이것은 북군에도 전령하여 규율을 엄수하도록 합시다.”

창시가 더한층 열렬하게 주장하였다. 창시로서는 질서가 문란하고 상하의 구별이 없어져서는 큰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자리에 앉은 다른 이들도 모두 그것이 좋다고 찬성하였다.

그리고 또 창고문을 열어서 단 몇 되박씩이라도 곡식을 백성들에게 분배해 주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회는 끝나고, 각자 제 부서로 돌아갔다. 다만 홍총각만은 다시 불러들이도록, 경래가 명령하였다.

“원수께서는 도대체 어떻게 하시렵니까? - ”

홍총각은 경래와 맞대 앉자마자, 먼저 족쳐 물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대체 대원수께서는, 돈푼이나 갖고, 벼슬 날이나 하고, 더 큰 것을 못해 먹어서 게걸거리는 놈들의 편을 들 터입니까, 참으로 살래야 살길이 없고, 올 데 갈 데가 없어서 목숨 내걸고 덤벼드는 백성의 편을 들 터입니까? 앞으로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가진 놈들 편을 들 터입니까, 안 가진 놈들 편을 들 터입니까? 이대로 질질 끌려가다가는 큰 벼슬 못하여 안달하는 그놈들한테 이용만 당하고, 일반 백성들은 애무하게 죽기만 할 것이니, 원수께서 오늘은 좀 뚜렷이 규정을 내주시오. 이도 저도 못 믿는다면, 나는 차라리 다 집어치우고 고향에 돌아가서 또 머슴살이나 하겠습니다.”

홍총각은 굳은 결의를 표명하였다.

“잘 알겠오. 잘 알겠는데, 조금만 더 참고 있으란 말이오. 지금 만약 양편이 서로 충돌하면,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안될 모양이니, 좀 더 참으란 말이오.”

경래는 가장 침착한 어조로 대답하고, 이어서 곧 북행하여 정주를 함락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나는 정주는 안 가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누구 고르십시오. 좀 더 백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볼까 하고 하는 일이, 조금도 그렇게 되지 않고 그놈이 또 그놈으로, 그 장단이 또 그 장단일 모양이니, 무슨 신이 나서 정주까지 까불거리고 가겠습니까? 백성의 껍데기까지 벗겨 먹겠다고 나대는 원 놈들을 하나둘 죽였다고, 그처럼 의논이 분분한 위인들이, 어찌하여 우리 군졸 중에서 약탈하다가 붙들린 것은, 단번에 목을 베어 네거리에다가 내걸겠다고 서둡니까? 만일 약탈한 군졸을 목을 베어 거리에다가 내걸려면, 원 놈들은 항복하건 말건 모조리 목 베는 것은 고사하고, 죽은 송장이라도 끌어내다가 매질하여야 할 것입니다. 군졸들의 억울한 처지를 원수께서도 못 알아주신다면, 그들은 총칼 다 집어던지고 헤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야 나도 모를 리 없지만, 요 얼마 동안만 더 참아야지, 그 이외에는 별도리가 없는 것 같소.”

“좀 더 참으라고 자꾸만 하시지만, 참으면 앞으로 어떠한 뾰족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참으면 얼마나 참으란 말씀입니까?”

“적어도 안주, 평양이나 함락시켜 놓아야지, 그 이전에는 서로 충돌하여 서는 아무 일도 안될 터이니까 - .”

“그러면 그것은 그렇다고 합시다. 그러나 내 생각 같아서는 정주니 박천이니, 이런 데 서 주저주저할 것이 아니라, 바로 안주를 들이쳐야지 성공하지, 그렇지 못하면 그네들 과 아무리 협력하여도 때를 놓쳐서 틀려 돌아갈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러니저러니 할 것이 없어, 나를 정주로 보내지 말고, 바로 안주를 들이치게만 해주십시오. 군사가 많이도 필요치 않습니다. 이번 가산 쳐들어올 때에 거느리고 온 백 명만 거느리면, 안주를 단숨에 앗아 버리겠습니다. 만약 이것에 실패하면 제 목을 베어 바치겠습니다.”

“안주를 먼저 치자는 것은 김대린이도 주장하였지만, 모두들 반대해서, 처음 계획대로 북쪽을 다 평정한 뒤에 남군 북군이 협력하여 안주를 치기로 되었으니 - 하여간 모든 문제를 뒤로 미루고 우선은 여기서 결정된 대로 바로 정주로 가달란 말이오.”

“글쎄, 그것이 나로서는 대단히 난처합니다.”

“글쎄, 그거야. - ”

홍총각은 팔짱을 끼고 바로는 대답을 잇지 못하였다. 경래도 더 어떻게 달랠 말이 없어, 그대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둘 사이에는 서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무서운 침묵의 순간이었다.

얼마 후에 홍총각은 그래도 매우 희망에 넘치는 얼굴빛으로 물러왔다. 그리고 하루를 묵어서 이십일 날 제초와 함께 군졸 백여 명을 거느리고 정주를 향하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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