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또는 함께/학교에서 생각하는 77

담임의 졸업사(2024)

담임의 졸업사 이제 한 장에 한 명씩 부르겠습니다. 이제 우리끼리 조촐하게 졸업식을 할 양입니다. 영광스러워야 할 졸업식을 조촐하다고 한 것은, 여기가 3학년 7반 우리들의 교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실 안에는 떠나보내는 담임과 떠나가는 졸업생만이 있을 뿐입니다. 국민의례로부터 시작하여 각종 상장 수여에 근엄한 교장선생님 축사까지 이루어진 그런 졸업식이 아니라, 우리끼리의 마지막 만남이 소중한 졸업식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남은 것이란 담임의 졸업장뿐입니다. 하기야 이것이 진정한 졸업식의 의미일 터입니다. 지지고 볶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3월의 어색한 대면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수험생이 된 그대들과 그대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담임의 악연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만남에서 우리는 아직도 겨울 방학의 게으름..

교원연구년으로 한 해를 잠시 쉬어가며

연구년을 신청하면서 교직에 들어온 시간과 지나온 학교 수를 다시 따져 보았다. 33년에 8학교. 함께했던 수많은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은 모두 기억하기에는 저 숫자의 무게가 너무 크다. 교육청에서 하는 교원연구년을 신청하였다. 다행히도 선발되었고, 덕분에 올 한 해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올 한 해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제자의 편지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교무실 앞에 한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작년, 작년 이태 동안 가르쳤던 아이 마음이 아파서 다른 또래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하는 아이. 대학에도 그런 전형으로 입학하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제서야 기숙사에 들어간단다. 이제 매일 돌보아주던 부모님도 곁에 없고 챙겨주던 선생님들도 없을 텐데 그럼에도 막막한 세상으로 날아가려는 모양이다. 잘 지내고, 잘 이겨내고, 잘 살아내기를 빌며....

어느 졸업식

오전 9시 출근. 오전 9시 30분 빈 교실 둘러 보다. 오전 10시 졸업식. 교실도 강당도 운동장도 아닌 유튜브에서. 13시부터 졸업장과 앨범 학급별로 배부. 맨 끝반이라 16시에 아이들이 모였다. 신체 접촉은 하지 말라는데 , 그래도 손 한번씩 잡아주고 보냈다. 학부모들도, 다른 선생님도 없는 졸업식. 올해가 아마도 마지막 3학년 담임이 될 터인데. 그 마지막 졸업식을 그렇에 마치다. 그리고 아이들은 떠나갔다. 반장 녀석의 편지 한장을 남기고.

코로나 때문에

3월 13일 안녕하세요. 올해 귀 자녀들의 담임을 맡게 된 신영산입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인 3학년 3월에 피치못할 사정으로 등교하지 못하고 가정에 발이 묶인 학생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루빨리 이 사태가 정상화되어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부모님들께 남은 일주일간 학생들을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혹 학생들의 신상에 이상이 있거나, 상담하실 내용이 있다면, 아래 번호나 이메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영종도에 거주하기 때문에 급한 일에는 대처가 가능합니다. 모쪼록 댁내 평안하시기를 기원하며 개학이 된 후에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인천영종고등학교 3학년11반 담임 신영산 3월 18일 언론에 보도된 대로 부득이 개학일이 다시 미루어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