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시; 88년 이전 2

연안부두에서

연안부두에서 멀리서 뱃고동소리는 울리고 있겠지만 물결 부딪는 소리만 요란한 이 순간은 애써 귀를 막아야 했다. 녹이 슨 철제난간에 비스듬히 온 마음을 의지하면 구름에 가려진 일몰이 안타깝다. 집요하게 옷섭을 파고들던 바닷바람도 지금은 가난한 창부처럼 조용히 잠이 들어 검은 물살 위에 하나 둘 잠긴 작은 섬그늘이 한 걸음 내달아오고 하나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험한 물건너 배를 타고 다가오는 사람들의 무리 그 속에서 우연히 어머니 오늘 물 건너 올 사람은 없다고 한다. 세상이 끝나는 곳으로 지리한 발돋움을 하고 모두들 일몰을 보려고만 한다.

감자밭에서

감자밭에서 버려진 감자밭은 언제나 쓸쓸하다. 흙이 씻기어나간 알감자 위로 퍼렇게 묻은 이 땅의 근심. 대지는 거짓을 모른다던데 잡풀만이 우거진 밭 가운데 홀로 서면 처음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은 몇 평의 작은 땅은 말없이 보낸다. 마구 자란 골마다 이랑마다 어느새 나를 속이며도 떳떳해하는 거짓의 육신을 파묻어 한 올 한 올 흩어지는 머리칼에 그릇된 시각을 잠재우고 있다. 그러면 아련하게 인광의 환각 편히 가지 못한 누구의 주검이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는 듯 애타게 떠돌고 있는 모양이다. 잡풀만이 무성한 감자밭에서 알지 못하는 인연의 뿌리 그렇게 한 세월이 얽혀져 있다.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