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텍스트 98

법정스님의 시 '1974년 1월 - 어느 몰지각자의 노래'

1974년 1월 - 어떤 몰지각자(沒知覺者)의 노래 법정(法頂) 1974.1. 1. 나는 지금 다스림을 받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자 대한민국 주민 3천5백만 다들 지각이 있는데 나는 지각을 잃은 한 사람. 그래서, 뻐스 안에서도 길거리에서 또한 주거지에서도 내 곁에는 노상 그림자 아닌 그림자가 따른다. 기관에서 고정배치된 네개의 사복 그 그림자들은 내가 어떤 동작을 하는지 스물네시간을 줄곧 엿본다. 이 절망의 도시에서 누구와 만나 어떤 빛깔의 말을 나누는지 뭘 먹고 뭘 배설하는지 그들은 곧잘 냄새를 맡는다. 나를 찾아온 선량한 내 이웃들을 불러 세워 검문하고 전화를 버젓이 가로채 듣는다. 그들은 둔갑술이라도 지녔는가 거죽은 비슷한 사람인데 새도 되고 쥐도 되어 낮과 밤의 동정을 살피니 2. 시정은 평온하..

성기조의 '근황'

영면하신 스승님을 기리며.. 근황(近況) ​ 성기조( 1934. 6. 1. ~2023.10.16) ​ 잘 그려진 신선도(神仙圖)를 본다. ​ 그림 속의 노인과 말벗이 되어 천년도 넘는 옛날로 돌아가 우물 속에서 물을 퍼 올리듯 인정(人情)을 퍼 올리면 산굽이, 굽이를 돌아오는 학(鶴)의 울음 바람은 유현(幽玄)한 곳에서 꽃내음을 찾아낸다. ​ 노인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따라오라고, 자꾸만 따라오라고 뒤범벅이 된 세태(世態) 시끄러운 거리 그리고 온갖 불신(不信)을 싸워 이겨 세상을 빨래하고 이슬 같은 인정을 찾으며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정자(亭子) 속으로 들어간다. ​ 잘 그려진 남화풍(南畵風)의 신선도(神仙圖) 그 속의 노인이ㅡ.

정학유의 흑산도 여행기 '부해기(浮海記)'

己巳(1808) 정학유 정민 역 2월 3일 지금 임금 원년 신유년(1801) 겨울에 -곧 가경 6년이다.- 중부(仲父)이신 손암 선생께서 흑산도로 귀양 가셨다. 섬은 나주 바다 가운데 있으니 큰 바다를 천 리나 건너야 한다. 바람과 파도가 몹시 거세서 집안사람이나 부자간이라도 감히 직접 가서 뵙지는 못하였다. 정묘년(1807) 봄에 학초(學樵)가 조운선을 타려고 행장을 이미 갖추었으나 병에 걸려 요절하고 말았다. 중부께서는 아득히 기다리시다가 달을 넘기고서야 궂은 소식을 들었다. 궁하고 외로운 처지를 슬퍼하다가 도리어 병이 되어 해를 넘기도록 앓아 누워 아침저녁을 기약할 수 없었다. 무진년(1808) 봄에 내가 강진에 가서 거칠게 아버님을 봉양하였다. 아버님께서 내 손을 붙드시더니 울면서 말씀하셨다. “..

한하운의 '작약도'

작약도(芍藥島) ㅡ인천여고 문예반과 ㅡ 한하운 작약꽃 한 송이 없는 작약도(芍藥島)에 소녀들이 작약꽃처럼 피어 갈매기 소리 없는 서해에 소녀들은 바다의 갈매기 소녀들의 바다는 진종일 해조음만 가득 찬 소라의 귀 소녀들은 흰 에이프런 귀여운 신부 밥짓기가 서투른 채 바다의 부엌은 온통 노래소리 해미(海味)가에 흥겨우며 귀여운 신부와 한 백년 이렁저렁 소꼽놀이 어느새 섬과 바다와 소녀들은 노을 활활 타는 화산 불 인천은 밤에 잠들고 소녀들의 눈은 어둠에 반짝이는 별, 별빛 배는 해각(海角)에 다가서는데 소녀들의 노래는 선희랑 민자랑 해무(海霧) 속에 사라져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안녕 또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 작약도 : 영종도와 월미도 사이에 있는 작은 섬으로 현재명 물치도임.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졸업식 연설문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연설문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저는 오늘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 중 하나를 졸업하는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선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나온 적이 없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저로서는 이 자리가 대학 졸업에 가장 가깝습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

정태춘의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정태춘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마 막차는 생각보다 일찍 오니 눈물같은 빗줄기가 어깨 위에 모든 걸 잃은 나의 발길 위에 사이렌 소리로 구급차 달려가고 비에 젖은 전단들이 차도에 한 번 더 나부낀다 막차는 질주하듯 멀리서 달려오고 너는 아직 내 젖은 시야에 안 보이고 무너져, 나 오늘 여기 무너지더라도 비참한 내 운명에 무릎 꿇더라도 너 어느 어둔 길모퉁이 돌아 나오려나 졸린 승객들도 모두 막차로 떠나가고 ​ 그 해 이후 내게 봄은 오래 오지 않고 긴 긴 어둠 속에서 나 깊이 잠들었고 가끔씩 꿈으로 그 정류장을 배회하고 너의 체온 그 냄새까지 모두 기억하고 다시 올 봄의 화사한 첫차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내 영혼 비에 젖어 뒤척였고 뒤척여, 내가 오늘 다시 눈을 뜨면 너는 햇살 가득한 그..

박경리의 '핵폭탄'

영화 오펜하미어를 보고 와서 핵폭탄 박경리 핵폭탄 한 개 천신만고의 산물인 그 한 개 좌판에 달랑 올려놓고 행인을 물색하는 노점상의 날카로운 눈초리 고독한 매와 같다 하기야 그것이 한 개이면 어떻고 천 개이면 어떠한가 터질 듯 기름진 거상이건 초췌한 몰골의 영세상이건 신념은 같은 것 죽음의 조타수임에 다를 바 없지 문명의 걸작이며 승리의 금과옥조 세계를 쥐고 흔든다는 것은 죽음을 지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죽음의 행진 은밀한 그 발자욱 소리 죽음의 향연, 옥쇄를 앞둔 술잔 죽음의 난무, 멈출 수 없는 분홍신의 춤 미쳐서 세상이 보이지 않는 무리에게는 처참하고 웅대한 멸망의 서사시야말로 황홀한 꿈의 세계일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파리 운동장이 된 굶주린 아이들 얼굴 주마등같이 지나가는 저 광활..

충정공 민영환 관련 대한매일신보 기사 - 인천영화학교

대한매일신보 풀어 쓴 이 신영산 민충정 혈죽가 인천영화학교 학생들 민충정공께서 절개를 지켜 돌아가실 적에 입던 피 묻는 옷과 피 묻은 칼을 두었던 방에서 대나무가 나왔단 말을 듣고, 본 학교 교사 박용래 씨가 데리고 있던 학생 이서준 최영창 두 사람을 서울로 올려보내 충정공댁에 가서 자세히 보고 오라 하였더니, 두 학생이 즉시 서울로 올라가 충정공댁에 가 본즉 과연 방안에 마루 놓고 마루 위에 네 벽하고 네 벽 위에 각 장으로 장판을 하였는데, 당당한 충절죽이 늠름히 나왔는지라. 두 학생이 돌아와서 여러 학생과 더불어 본 대로 한 바탕 설명하였더니, 모든 학생이 눈물을 흘리며 충절가를 지었는데 왼쪽과 같았더라. 어화, 우리 학도들아, 이내 말씀 들어보소. 대한 동포 합심 기초 민충정의 공로로다. 이학준 ..

박남철의 자본에 살어리랏다

자본에 살어리랏다 박남철 1. 자본에 살어리랏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資本에 살어리랏다 머리랑 다리랑 먹고 資本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개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개 본다 믈 아래 가던 개 본다 '중과' 오일레밍oil-lemming 가지고 믈 아래 가던 개 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이링공 뎌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중개'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어듸다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돌도 黃金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利子에 살어리랏다 남의 자기 굴조개랑 먹고 利子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