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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의 '홍경래전' - 3. 동지들

New-Mountain(새뫼) 2022. 10. 2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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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同志(동지)들

 

경래의 동지로서 먼저 우군칙(禹君則)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우군칙은 경래가 제일 먼저 사귄 동지다. 그는, 태천(泰川)에서 내가 내다 하고 뽑내는 우가네 집의 첩의 소생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사서삼경은 물론이고 천문지리에 이르기까지 무불통지하였는데, 서류(庶流)인 고로 처음부터 과거를 볼 자격이 없고, 집 안에 드나 집 밖에 나나 경멸과 확대가 자심하여, 억울한 자기의 심정을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집을 버리고 각처로 떠돌아다니며, 지사(地師)로 자처하였다. 간혹 부잣집 모이자리나 정해주고 돈푼이나 받으면, 바로 주막으로 달려가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들이키어 평소의 불평불만을 술로 마비시켜 버렸다.

경래는 경신(庚申)년 간에 가산군 청용사(嘉山郡 淸龍寺)에서 군칙을 만났다. 그때 경래는 스물한 살이고 군칙은 스물일곱 살이었다. 둘은 초면 인사를 하고서 두세 마디 말 을 건네는 동안에 바로 의기가 상통하여, 평소에 품었던 불평불만이 저절로 쏟아져 나왔다. 그 해 경신년에는 유월에 정조(正祖)가 죽고 순조(純祖)가 새로 들어선 때라, 둘의 이야기는 자연 이것이 중심이 되었다.

“이번에 돌아가신 임금께서는 정사도 잘 보시고 문필에도 대단히 능하시어서 참말로 성군(聖君) 이시었다고들 하지 않소?”

“읍에서는 선비들이 모이어, 차일을 치고 서울을 향하여 제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곡을 하고 야단들이었다고 합니다.”

“내가 연전에 과거 보러 서울 갔을 때에도 병환이 위중하시었었는데, 그때 서울 양반 들 평판으로도, 이러한 성군은 개국 이래에 아마 다시는 없었으리라고들 합니다.”

“그렇게들 떠받치고 야단들을 치는 것을 보면 분명 성군은 성군이겠는데, 그러나 우리 평안도 놈들한테야 성군이고 성군 아니고가 어디 있겠소?”

“우리 평안도 놈들에는 그저 그놈이 그놈이지요. 성군보다 더한 것이 나선대도, 우리 평안도 놈들에게는 공중에 떠 있는 구름이지, 무슨 소용이 있겠오? 우리가 어디 가서 벼슬 하나 얻어 해보겠소?”

“그야 그렇지요.”

“어디 벼슬을 못할 뿐이요. 서울 양반이 평안감사니 무엇이니 하고 뽐내고 내려와서는, 죄가 있건 없건 공연히 생트집을 잡아 가지고, 평안도 놈의 재산은 하나 남기지 않고 닥닥 고무래질을 해가니, 이거 어디 견디어 내는 수가 있소?”

“그러니까 서울 양반이면 누구나 한 번은 평안감사를 해보고 싶어 하는 게지요.”

“그러니, 내 생각 같아서는 성군이 나지 말고 차라리 지지리 못난 임금이 나서 나라

가 한 번 후딱 뒤집어져 버리는 것만 같지 못할 것 같소.”

“쉬, 말씀이 너무 지나치오. 관청 놈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하오 그려.”

“아니, 그러니까 우리끼리 이야기요. 우리 평안도 사람들 위해서는, 나라가 한 번 뒤집어져야만 할 것이요.”

“그야 그렇겠지만. 우리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해둡시다.”

하고, 군칙은 말을 딴 데로 돌리었다. 그리고 이때는 이 이상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그 이듬해 신유(辛酉)년에 청용사에서 둘이 다시 만났는데, 이때에 둘의 이야기는 훨씬 구체화하였다. 그리고 경래는 지난 일 년 동안 강계(江界), 연여(延閭) 등의 압록강 상류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정시수(鄭始守)라는 만주 마적단의 두목을 만나 은근히 연락해 놓은 것까지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군칙에게 모사(謀士)로서 출마해주기를 간청하였다.

“사내대장부가 세상에 났다가, 어찌 남의 압제만 받고서 살겠오? 내가 비록 유현덕(劉玄德)은 못될망정, 노형께서는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되어 대사를 도모해 주시오.”

군칙은 그 자리에서 이것을 허락하고, 앞으로 더욱 많은 동지를 획득하여 연락할 것을 굳게 약속하였다.

다음에 중요한 동지로 이희저(李禧著)가 있다.

이희저는 가산 역속(嘉山驛屬)으로, 도내에서 유명한 부호다. 일찍이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향안(鄕案)에도 들었는데 이것은 물론 뒤꽁무니로 돈을 먹여서 성공한 것이다. 몸집이 크고, 더구나 배가 쑥 나와서 거름을 거르면 뒤룩뒤룩 흔들리었다. 뱃심이 세고

우악스러워서 한번 무슨 말을 내놓으면 아무가 뭐래도 그대로 내밀고 나갔다. 그가 이처럼 부자로 사는 것은 물론 대대로 물려 내려온 유산도 적지 않았으나, 그것보다도 사 신(使臣)의 뒤를 따라 거의 해마다 중국에 출입하는 역관(譯官)들과 잘 연락해서 중국의 비단을 싸게 사 가지고 비싸게 팔아서 큰 이를 남기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인아 연척간에는 각 골에서 누구누구라고 치는 큰 부자와 큰 장사꾼이 많아서 그의 세력은 곽산골에서는 따를 사람이 없었다.

경래와 군칙은 희저를 자기들 편으로 끌어넣는 데 매우 고심하였다. 원래 위인이 우악스러운지라, 처음에 잘못 건드리다가는 영영 퉁겨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주 신중히 일을 시작하였다.

군칙의 부인 정씨(鄭氏)를 점쟁이 모양으로 차려서, 희저의 집에 가서 희저의 부인을 위하여 점을 치게 하였는데, 그 점괘에 이르기를 ‘십 년 이내로 대운이 터질 터인데, 수성(水姓) 가진 사람을 만나면 길(吉)하다.’ 하였다.

그리고 군칙 자신은 아주 이력이 난 지사(地師)로서 나타나, 희저의 아버지를 위하여 모이자리를 정하여주고 이르기를, 역시 마찬가지로 ‘당대 발복의 대진데 수성 가진 사람을 만나면 길하다.’ 하였다.

이처럼 안팎으로 잔뜩 예비공작을 해놓고, 군칙은 자기가 늘 찾아가서 배우고 있는 묘향산(妙香山)의 이인(異人)을 소개하겠다고 하고, 경래를 안내하여 희저와 면회시켰다. 희저가 보니 키가 작달막한 게, 나이는 아직 새파랗게 젊었고 눈에 열기가 뚝뚝 떨었다. 서로 맞대 앉아서 초면 인사를 하는데, 희저는 속으로

“이인이니, 무엇이니 하더니, 한주먹거리밖에는 되지 않는구나.”

- 은근히 업수이 여겼다. 경래는 재발이 이 눈치를 채고

“초면에 미안하지만, 어디 팔씨름을 한번 해봅시다.”

하고, 조그마한 팔을 거침없이 쑥 내밀었다. 희저는 하도 같잖아서, 허허허 - 너털웃음을 내놓으며

“해볼 것은 무엇 있소.”

하며, 바로 응해주지를 않았다. 그러자 경래는 다짜고짜로 희저의 바른 팔목을 꽉 움켜쥐고

“자, 뺄 제조 있거든 빼 보시오.”

하는데, 단번에 손목이 끊어지는 것 같고, 심줄이 팽팽해져서 찌르르하고 저려 올라왔다. 처음부터 요동해볼 여유가 없고, 또 요동해본댔자 될 것 같지를 않았다.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슨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소. 해볼 것은 무어 있소.”

경래는 희저의 말을 도로 갚으며, 손목을 놓았다. 그리고

“나는 갈 길이 바빠서, 이만 일어나겠오.”

하고,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고 신을 신고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가는데, 희저와 군칙이 전송하러 나왔을 때에는, 이미 어디로 사라졌는지 온데간데없었다.

이것이 거의 일순간의 일이다. 더구나 희저로서는 대낮에 무슨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사람은 아니로구먼. 사람은 아니야 - .”

“그러기에 이인이라지, 달래 이인이라오? 어떻소, 팔목은 아프지 않소?”

희저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팔목은 들여다보니, 벌겋게 손가락 자욱이 들어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들한테 손목을 잡힌 셈이다.

“그 이인의 성명이 무엇인지 아시오? 상면한 사람 이외에는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하 기 때문에 노형한테도 알리지 않았는데, 홍경래라고 하오,”

“홍경래? - 별로 듣지 못하든 이름인데 - .”

“이인의 성명을 그렇게 아무나 알아서 쓰겠소. 넓은 홍 자 홍씨요, 수성 가진 사람을 만나면 길하다고 하지 않았었오? 아마 이 어른을 두고 이른 것 같소.”

“그러나 그분은 오늘 같아서는 길하기는커녕 도리어 불쾌하신 것 같지 않았소?”

“그것은 염려하실 것 없소. 이인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은 속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서 겉에 나타나는 것 가지고는 알 수 없는 것이오.”

이 일이 있은 후에 또 일 년이 지나서, 돌연 군칙의 안내로 경래는 희저의 집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이때에 비로소 자기들의 천하를 도모하는 큰 계획을 말하고, 희저의 가입을 간청하였다. 희저는 그 자리에서 쾌락하고, 또 자기 인아 연척 간에 비밀리에 연락하여 이들을 위하여 돈을 대게 되었다.

다음에 또 중요한 종지로 김창시(金昌始)가 있다.

김창시는 여기서는 좀 떨어져 있는 곽산(郭山) 사람이다. 일찍이 진사(進士)에 급제하 여 곽산 김진사로 통하여, 문장재예(文章才藝)로 그때 평안도에서는 선비를 사이에 제 일 명망이 높았다. 말 잘하고,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하는 짓이 모두 풍성풍성하 여서, 꽤 많든 재산을 다 없애고 지금은 도리어 빚이 적지 않았으나, 그런 것은 근심하 는 빛조차 없었다. 평안도의 이태백(李太白)이로 자임하고, 술만 얼근히 취하면 소동파 (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를 읊는 것이 제일 상쾌한 일이었다.

어느 해 여름 일이다. 김창시가 서울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황해도 봉산군 동성영(黃海道 鳳山郡 洞仙嶺) 고개를 접어들어 얼마를 올라가니까, 별안간 웬 청의동자(靑衣童子)가 눈앞에 나타나서 길을 딱 막으며 창시한테 공손히 절하고

“평안도 곽산 계시는 김진사가 아니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래, 내가 곽산 있는 김진산데 - .”

하고, 창시는 웬 영문을 몰라서 물끄러미 그 동자를 쳐다봤다.

“다름이 아니오라 오늘 우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시(午時)에 진사님이 여기를 지나실 테니 가서 모시고 오라시어, 여기서 기다리고 있던 것입니다.”

창시는 이야기가 너무나 허황하여

“너의 선생이 누구시냐? 그리고 어디 계시냐?” 하고 물으니까, 동자는

“그것은 가서 만나시면 자연 아십니다. 그리고 계시는 곳도 제가 인도해 드릴 터이니, 저만 따라와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창시는 원래 호탕하고, 이태백이 모양으로 신선의 도를 좋아하였으므로, 한번 따라가 볼 것이라 - 하고 선선히 동자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타고 오던 말은 마부를 시켜서 고개 넘어 주막에 가서 기다리라 하였다.

차차로 길이 험해지며,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 인적이 전혀 끊어지고, 곳곳이 머루와 다래의 덤불이 척척 엉켜있어서 자칫하면 길을 잃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한 삼십 리는 들어가서, 앞이 턱 트이며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낭떠러지 우에 남향으로 조그마한 삼칸 초당(三間草堂)이 날씬하게 지어있고, 그 뒤로는 몇 길씩 되는 큰 바위가 삥 둘러 있었다.

창시는 무슨 귀신에나 흘린 것 같아서, 저 자신을 의심하며, 동자의 뒤를 따라 그 초당 앞에 이르니, 동자는 그 앞에 가서 공손히 절하고

“진사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하고 고하였다. 그러니까 문이 열리며, 삐죽하게 생긴 관을 쓰고 넓은 띠를 띄고 누 - 런 도포를 입은 아직 새파랗게 젊어 보이는 청년 하나가 나타나, 당황하게 계하로 내려와,

“이러한 벽지에 오시느라고 얼마나 고생하시었습니까?”

하고, 공손히 인사를 하며, 손을 이끌어 실내로 안내하였다. 좌정한 후에 동자가 가져온 차를 마시며, 신선과 같이 생긴 이 청년은 서서히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산간에 묻혀서 약이나 캐고, 심심하면 책권이나 읽고 하는 - 일개 우물(迂物)에 지나지 못하는데, 그래도 아직도 세상과 인연이 아주 끊어지지는 않았나 봅니다. 일 전에 장난삼아서 점을 쳐보니까, 장차 세상이 또 난이 일어나서, 생민이 또다시 도탄에 빠질 것이 분명하여, 은근히 근심하여 내려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리다가 어젯밤에, 그전에 묘향산(妙香山) 산속에서 얻어 둔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비결(秘訣)을 꺼내 읽어보니, 거기도 분명히 난이 일어날 것이 적혀 있고, 그것을 구제할 인물은 우리 서토(西土)에서 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서토면 어디 사는 누굴까 하고 - 이리 궁리 저리 궁리해 보았으나 도무지 알 길이 없고, 그리다가 홀연 잠이 들어 잠깐 서안에 의자 하여 졸았는데, 비몽사몽간에 서산대사께서 나타나 시어 ‘그 사람은 아주 가깝게 있다. 내일 오시에 동선령을 지나는, 곽산 김진사가 바로 그 사람이니, 때를 놓치지 말아라’ - 이렇게 현몽하시고, 바로 사라져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처럼 이런 벽지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창시는 이야기가 너무나 허황하나, 임진왜난(壬辰倭亂) 때에 일본이 또 쳐들어올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자기 제자인 사명당(泗溟堂)을 시켜서 왜놈들을 단단히 욕을 보이고 항복을 받아 가지고 오게 한 서산대사가 자기를 인정하여, 장차 일어나는 난을 평정하고 생민을 구할 인물이라고 한 데 대해서는 참으로 충심으로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저와 같은 시골의 일개 서생이 그러한 대임(大任)을 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사양하면서도, 창시는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더욱 고금동서의 학문과 인물을 논의해보니 무불통지라, 이 젊은 청년이 신선이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해가 서산에 기울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후일을 기약하고 헤어져 왔는데, 이미 창 시의 혼은 빼앗긴 바 되었음으로, 다시 만났을 때에는. 아주 완전히 이 청년에게 맘을 허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청년이 경래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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