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텍스트/소설과 산문

이명선의 '홍경래전' - 2.다복동

New-Mountain(새뫼) 2022. 10. 2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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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전(洪景來傳)

 

 

이명선(李明善)

 

 

2. 多福洞 (다복동)

 

경래가 식구를 거느리고 이사한 곳은 다복동(多福洞)이라는 곳이다. 다복동은 가산(嘉山)과 박천(博川) 양군 사이에 있는 동리의 이름인데, 그리 크고 널지는 못하나, 상당한 요지(要地)다. 동리 좌우에는 그리 험하지는 않으나 나무가 잔뜩 들어선 산이 삑 둘러있고, 산 넘어 한옆으로는 서울서 의주(義州)로 통하는 큰 길이 있고, 앞으로는 대 령강(大寧江)이라는 강이 흘러 있어, 수륙(水陸)의 편리가 매우 좋다. 뿐만이 아니라, 여차 즉 하면 강과 좌우의 산에 의지하여 진을 치고 딱 버틸 수도 있고, 산 숲속에는 몰래 묻어 박히어 무슨 비밀의 일을 꿈이기에도 똑 들어맞았다.

아니, 경래가 여기로 옮겨 왔을 때에는 이미 심상치 않은 무시무시한 기분이 전동리를 휩쓸고 있었다. 대장간이 여기저기 있는데, 불을 벌겋게 피워서 쇠를 달궈 칼 만드느라 고 야단이고, 곡식과 필목을 실은 소바리가 길에 연하다 싶어 연락부절이다. 그리고 산 숲속에서는 여기저기서 몸이 큼직큼직한 장정들이 서로 편을 짜 가지고 칼싸움을 하며, 떼를 지어서 와르르 몰려갔다 몰려왔다 하고, 가끔 산이 찌르는 울리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무슨 난리라도 일어났다니?”

늙은 어머니가 근심스러운 빛으로 이렇게 물었을 때, 경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난리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일으키려고 저렇게 야단들입니다.”

“난리를 일으키다니? 되놈들이라도 쳐들어와야지 난리가 일어나지, 무슨 놈의 난리가 - .”

“용강 이시미가 용이 되려고, 비와 구름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웬 또 비와 구름은?”

“난리가 제게는 비나 구름과 마찬가지랍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렇게 한꺼번에 모르셔도 좋습니다. 여기 계시면서 차차 두고 보십시오. 머지않아서 난리는 일어나고야 말 테니까요. 이번의 이사도 난리가 날 테니까 한 것이 아닙니까?”

“여기서 난리가 난다면 용강이 좋지, 일부러 난리가 나는 데로 올 것이 무엇이니? 나는 무슨 속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아직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일은 저 혼자 할 테니까, 어머니는 그저 꾹 앉아만 계셔요.”

그날부터 어머니는 며느리와 손자를 거느리고, 아들 말대로 꾹 앉아만 있었다. 경래는 아침에 나가서 온종일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밤에도 돌아오지 않는 때가 많았다.

사실, 사태는 이미 급박하여져서. 경래는 몹시 바빴다. 십 년 동안을 두고 궁리하여, 일시도 잊지 않고 계획하여 내려오든 일이, 이제 그 최후의 단계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천자의 대가리를 때릴 것을 이상으로 하였던 경래라, 녹녹한 시골 선비로 꼬부라질 리가 없다. 그러나 그가 사회에 대하여, 나라에 대하여 뚜렷이 불평을 품게 된 것은, 이십 전후에 과거를 치러 실패한 때부터다. 과거란 원래 경향을 통하여 숨은 인재를 찾아내어 등용하자는 것이 목적인데, 이조 말엽에 이르러 아주 물러져서, 문벌 높고, 권세 있는 몇몇 대신들의 자제들이, 뒤꽁무니로 얼렁얼렁하여 장원급제를 독점해버려서, 그 이외의 사람들은 어떻게 붙여볼 도리가 없었다. 문벌이 높고, 권세가 있는 집 자식들은, 젖내가 몰칵몰칵 나는 못나고 변변치 못한 것들도, 제집에 앉아서 사람을 시켜 씨만 바치면 진사니, 대과니, 한림이니 - 말대로 골러 잡고, 시골서 올려온 뒤에 아무 연줄도 없는 자는, 아무리 글이 놀랍고, 글씨를 잘 쓰고, 정론이 당당하여도, 급제할 도리가 전혀 없었다. 공연히 헛 보따리만 걸어 메고 헛 노자만 써서 왔다 갔다 해 본대야, 출세할 기회를 잡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평안도 사람은 천대가 막심하여 도무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태조(李太祖)가 서북 사람은 외이불용(畏而不用)이라고 해서, 되도록 주요한 자리에는 쓰지 않도록 했는데, 이것이 이조 역대의 임금들에게 충실하게 전해 내려와서, 나중에는 아주 으레 그런 것으로 정해졌다 싶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북 사람이면 제가 아무리 출중한 인물이라도, 문관이면 지평(持平) 이상에 오르지 못하고, 무관이면 첨사(僉使) 이상에 오르지 못하였다. 평안도 놈! 서한(西漢)! - 서북 사람들은 이렇게 불리어 내려왔다.

그러므로 경래가 과거에 실패한 것은, 아주 처음부터 확정된, 거의 숙명적인 일이었다. 만약 경래가 제의 운명에 순종한다면, 과거는 몇 번 시험해보다가 걷어치우고, 시골서 콧물 흘리는 아이들에게 천자권이나 가르쳐 주는 - 글방 선생님이 되어 늙어 꼬부라져야 하겠는데, 그렇게 되기에는 경래는 너무나 대담하고 야심만만하였다. 아니, 야심이라기에는 너무나 순진한 정의감이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면, 도저히 그대로 용서할 수 없다. 경래의 의협에 불타는 젊은 피가 그것을 용서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래 십여 년을 두고, 경래는 오로지 이 일에 종사하여 왔다. 어떻게 하면 궁중에 우물우물한 썩은 선비들을 내몰고, 서북 사람도 똑같이 등용하여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을 까? - 이것이 그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그러면 그 수단 방법은? - 그는 타협의 길은 처음부터 생각해 보지 않았다.

문벌이 높고 권세가 당당한 대신들한테 몰래 뇌물을 바치어, 서북 사람도 똑같이 등용하여 주십시오 - 하고 진정하는 일 같은 것은 생각만 하여도 게욱질이 날 지경이다. 그러기에는 그의 정의감은 너무나 날카롭고 철저하였다. 평안도를 중심으로 하여, 일대 반란을 일으키어, 당당히 서울까지 쳐들어가서, 나라를 새로 세워보자는 것이, 이것이 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얻은, 최후의 결론이었다. 천자의 대가리를 주먹으로 때리자던, 그의 어릴 때부터의 이상이 구체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나라를 뒤집어엎는 큰일을 계획하려면, 먼저 각처로 돌아다니며 많은 둥지를 획득하여야 한다. 꾀가 많은 모사(謀士)도 필요하고, 기운이 센 역사(力士)도 필요하다. 재물을 많이 가진 부호(富豪)도 필요하고, 명망이 높은 명사(名士)도 필요하다. 그리고 각 골의 좌수(座首)니, 이방(吏房)이니 하는 관속들과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이라는 것은 겉으로는 제가 젠체하지만, 결국은 이러한 관속들 손에 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십 년 간의 경래의 노력은, 실로 이러한 동지의 획득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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