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텍스트/시와 노래

백석의 '수라'와 김창완의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레'

New-Mountain(새뫼) 2022. 3. 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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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修羅)

백석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내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느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이다

어디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아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비닐장판의 딱정벌레

김창완

 

비닐장판의 딱정벌레 어디로가는지 알까 아마 모를꺼야
먹이찾아 제짝찾아 제 발걸음도 잊은채 평생 헤멜거야
그리곤 죽어 흔적도 없이 슬퍼하지 않으면서
야 딱정벌레 한마리 기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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