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 372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5/5)

마. 내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나를 업어야지 춘향이 반만 웃고 “그런 잡담은 마시오.” “그게 잡담 아니로다. 춘향아 우리 둘이 업음질이나 하여보자.” “애고 참 잡스럽고 상스러워라. 업음질을 어떻게 하여요.” 업음질 여러 번 해 본 것처럼 말하던 것이었다. “업음질 천하 쉬우니라. 너와 나와 훨씬 벗고 업고 놀고 안고도 놀면 그게 업음질이지야.” “애고 나는 부끄러워 못 벗겠소.” “에라 요 계집아이야 안 될 말이로다. 내 먼저 벗으마.” 버선, 대님, 허리띠, 바지, 저고리 훨씬 벗어 한 편 구석에 밀쳐 놓고 우뚝 서니 춘향이 그 거동을 보고 삥긋 웃고 돌아서며 하는 말이 “영락없는 낮도깨비 같소.” “오냐 네 말 좋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짝 없는 게 없느니라. 두 도깨비 놀아보자.” “그러면 불..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4/5)

라. 사랑사랑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춘향과 도련님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 지는 햇볕을 받으면서 삼각산 제일봉의 봉황과 학이 앉아 춤추는 듯, 두 팔을 휘어질 듯 굽게 들고 춘향의 가냘프고 고운 손이 겨우 겹쳐 잡고 의복을 공교하게 벗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 가는 허리를 담쏙 안고, “적삼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 제, 이리 곰실 저리 곰실 푸른 물의 붉은 연꽃에 잔잔한 바람 만나 꼼지작거리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제쳐놓고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실랑이질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 청룡이 굽이를 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 될 말이로다.” 실랑이 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끼어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3/5)

다. 우리 둘이 이 술을 혼인 술로 알고 먹자 춘향 어미 이 말 듣고 이윽히 앉았더니 꿈꾼 일이 있는지라 연분인 줄 짐작하고 기쁘게 허락하며, “봉이 나매 황이 나고, 장군 나매 용마 나고, 남원에 춘향 나매 봄바람에 오얏꽃이 꽃다웁다. 향단아, 술상 준비하였느냐?” “예.” 대답하고 술과 안주를 차릴 적에 안주 등등을 볼 것 같으면 괴임새도 정결하고, 대양푼 가리찜, 소양푼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나는 매추리탕에 동래 울산대전복을 거북 등껍질 장식한 잘 드는 칼로 맹상군의 눈썹처럼 비슷비슷하게 오려 놓고, 염통 산적, 양볶이와 봄에 절로 우는 꿩의 생다리, 적벽 대접 분원기에 냉면조차 비벼놓고, 생밤, 찐밤 잣송이며 호도, 대추, 석류, 유자, 말린 감, 앵두, 탕그릇 같은 청술레를 칫수에..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2/5)

나. 대장부 먹은 마음 박대할 일 있을쏘냐 이때 이도령은 퇴령 놓기를 기다릴 제, “방자야.” “예.” “퇴령 놓았나 보아라.” “아직 아니 놓았소.” 조금 있더니 하인 물리라 퇴령 소리 길게 나니, “좋다 좋다. 옳다 옳다. 방자야. 등롱에 불 밝혀라.”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춘향의 집 건너갈 제 자취 없이 가만가만 걸으면서 “방자야 사또 계시는 방에 불 비친다. 등롱을 옆에 껴라.” 삼문 밖 썩 나서 좁은 길 사이에 달빛이 찬란하고, 꽃 핀 사이에 푸른 버들 몇 번이나 꺾었으며, 닭싸움하는 아이들도 밤에 기생집에 들었으니 지체 말고 어서 가자. 그렁저렁 당도하니 애닯도다, 오늘 밤이 적막한데 여인을 만나는 좋은 때가 이 아니냐. 가소롭다 고기 잡는 사람들은 별천지를 모르던가. 춘향의 집 문 앞에 당도..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1/5)

II. 사랑 가. 방자야, 아직 해가 어느 때나 되었느냐 이때 도련님이 춘향을 급히 보낸 후에 도저히 잊을 수 없어 책방으로 돌아와, 모든 일에 뜻이 없고 다만 생각이 춘향이라. 말소리 귀에 쟁쟁 고운 태도 눈에 삼삼. 해지기를 기다릴 새, 방자 불러, “해가 어느 때나 되었느냐?.” “동에서 아귀 트나이다.” 도련님 크게 화를 내어 “이놈 괘씸한 놈. 서쪽으로 지는 해가 동쪽으로 도로 가랴. 다시금 살펴보라.” 이윽고 방자 여쭈오되 “해가 서쪽 바다로 떨어지고, 황혼 되고 달이 동쪽 고개에서 나옵내다.” 저녁밥이 맛이 없어 잠이 오지 않아 엎치락뒤치락 어이 하리. 퇴령을 기다리려 하고 서책을 보려 할 제, 책상을 앞에 놓고 서책을 자세히 읽는데, ≪중용≫, ≪대학≫, ≪논어≫, ≪맹자≫, ≪시전≫,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 만남 (4/4)

라. 잘 가거라 오늘 밤에 우리 서로 만나보자 춘향이가 그제야 못 이기는 체로 겨우 일어나 광한루 건너갈 제 대명전 대들보의 칼새 걸음으로, 양지 마당의 씨암탉걸음으로 백모래 바다 금자라 걸음으로 달 같은 모습 꽃 같은 얼굴로 고운 태도로 느릿느릿 건너갈 새 흐늘흐늘 월나라 서시가 토성애서 배우던 걸음으로 흐늘거려 건너올 제 도련님 난간에 절반만 비껴 서서 부드럽게 바라보니 춘향이가 건너오는데 광한루에 가까운지라. 도련님 좋아라고 자세히 살펴보니 요염하고 정숙하여 달 같은 모습 꽃 같은 얼굴이 세상에 둘이 없음이라. 얼굴이 아름답고 깨끗하니 맑은 강에 노는 학이 눈 속에 비치는 달 같고 붉은 입술과 흰 이를 반쯤 여니 별도 같고 옥도 같다. 연지를 품은 듯, 자줏빛 치마 고운 태도 어린 안개 석양에 비치..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 만남 (3/4)

다. 기생의 딸이라니 당장 가서 불러오라 이때는 삼월이라 일렀으되, 오월 단옷날이렷다. 한 해 중에 가장 좋은 날이라. 이때 월매 딸 춘향이도 또한 시와 글씨 소리와 가락이 능통하니 단옷날을 모를쏘냐. 그네를 뛰려고 향단이 앞세우고 내려올 제 난초같이 고운 머리 두귀를 눌러 곱게 땋아 금봉채를 가지런히 하고 엷은 비단치마 두른 허리 가벼운 병이 걸린 듯 가는 버들 힘이 없이 드리운 듯, 아름답고 고운 태도 아장 걸어 흐늘 걸어 가만가만 나올 적에, 긴 숲 속으로 들어가니, 푸픈 나무와 향기로운 풀 우거져 금잔디 좌르륵 깔린 곳에 황금 같은 꾀꼬리는 쌍상이 짝지어 오고가며 날아들 제, 무성한 버드나무 백 자나 넘는 높은 곳에서 그네를 뛰려할 제 수화유문, 초록 장옷, 남색 명주 홑치마 훨훨 벗어 걸어두고,..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 만남 (2/4)

나. 봄날 흥이 지극하니 오늘 내가 견우로다 이때 삼청동에 이한림이라 하는 양반이 있되,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가요 세대명가요 충신의 후예라. 하루는 전하께옵서 충효록을 올려 보시고 충효자를 고르시어 백성을 아끼는 지방의 원님을 맡기실 새 이한림으로 과천 현감에서 금산 군수로 자리를 옮겼다가 남원 부사 임명하시니, 이한림이 임금의 은혜를 사례하여 공손하게 절한 후에 하직하고 행장을 차려 남원부에 도임하여 백성들의 사정을 살펴 잘 다스리시니 사방에 일이 없고 시골의 백성들은 더디 옴을 칭송한다. 태평한 시대에 동요를 듣는구나. 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곡식이 잘되며 백성이 효도하니 요순시절이라. 이때는 어느 때뇨. 놀기 좋은 봄날이라. 호연과 비조 뭇 새들은 풀을 희롱하고 소리로 서로 화답하며 짝을 지어 쌍쌍..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 만남 (1/4)

I. 만남 가. 신령께서 지시하여 부인댁에 왔나이다 숙종대왕 즉위 초에 임금의 덕이 넓으시사 어진 임금의 자손은 끊이지 않고 대를 이어가사, 징과 북 옥피리 소리는 요순 임금 시절이요, 옷차림과 문물의 왕성함은 우탕의 버금이라. 좌우에서 기둥과 주춧돌과 같은 신하들이 임금을 돕고, 장수들은 용처럼 뛰어오르고 호랑이처럼 성을 굳게 지키더라. 조정에 흐르는 덕의 교화는 시골에 퍼졌으니 온 세상의 굳은 기운이 원근에 어려 있다. 충신은 조정에 가득하고, 효자와 열녀는 집집마다 있었더라.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비가 때맞추어 오고 바람이 고르게 부니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즐겁게 지내는 백성들은 곳곳에서 격양가라. 이때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 하는 기생이 있되, 삼남의 유명한 기생으로서 일찍이 기생에서 물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