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 372

(경판)남원고사 - XV. 아름다운 어울림 (2/2)

나. 실낱 같은 내 목숨을 어사 낭군 살렸구나 “얼싸, 좋을시고.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전생인가, 이생인가. 아무래도 모르겠네. 조물주가 이루었나? 하늘과 신령이 도왔는가? 좋을, 좋을, 좋을시고. 어사 서방이 좋을시고. 세상 사람 다 듣거라, 젊은 나이로 과거에서 장원급제하니 젊어 급제 즐거운 일, 첫날밤 동방에 비치는 환한 촛불에 노총각이 숙녀 만나 즐거운 일, 천 리 타향 옛 고향 사람 만나 즐거운 일. 봄날 심한 가뭄 단비 만나 즐거운 일, 칠십 노인 구대 독신 아들 낳아 즐거운 일, 수삼 천 리 유배 죄인 대사면 만나 즐거운 일, 세상의 즐거운 일 많건마는 이런 일도 또 있는가? 실낱 같은 내 목숨을 어사 낭군이 살렸구나. 좋을, 좋을, 좋을시고. 저리 귀히 되었구나. 어제는 떠돌아다니던 ..

(경판)남원고사 - XV. 아름다운 어울림 (2/2)

나. 실낱 같은 내 목숨을 어사 낭군 살렸구나 “얼싸, 좋을시고.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전생인가, 이생인가. 아무래도 모르겠네. 조물주가 이루었나? 하늘과 신령이 도왔는가? 좋을, 좋을, 좋을시고. 어사 서방이 좋을시고. 세상 사람 다 듣거라, 젊은 나이로 과거에서 장원급제하니 젊어 급제 즐거운 일, 첫날밤 동방에 비치는 환한 촛불에 노총각이 숙녀 만나 즐거운 일, 천 리 타향 옛 고향 사람 만나 즐거운 일. 봄날 심한 가뭄 단비 만나 즐거운 일, 칠십 노인 구대 독신 아들 낳아 즐거운 일, 수삼 천 리 유배 죄인 대사면 만나 즐거운 일, 세상의 즐거운 일 많건마는 이런 일도 또 있는가? 실낱 같은 내 목숨을 어사 낭군이 살렸구나. 좋을, 좋을, 좋을시고. 저리 귀히 되었구나. 어제는 떠돌아다니던 ..

(경판)남원고사 - XV. 아름다운 어울림 (1/2)

XV. 아름다운 어울림 가. 오늘 내 분부도 시행하지 못할쏘냐 수노 놈이 분부 듣고 큰 소리로 높여 점고할 제, “타고난 군자는 꾸밈이 없어 맑고 깨끗한 마음의 옥련이 나오. 기쁘게 서로 삼가라고 알리며 꽃줄기에 다섯 덕을 갖춘 복희 나오. 봄 달이 가을 달보다 더 나으니, 패옥 소리 찰랑찰랑하는 진주옥이 나오. 푸른 나무 우거진 보름밤에, 주렴 걷는 미인 월출이 나오. 찬란히 빛나는 문장으로 덕의 귀함을 살피니, 성스러운 세상 진귀한 날짐승 같은 채봉이 나오. 고당부가 한 번 쓰인 후에 열두 봉우리 끝에 초운이 나오. 인간 세상 팔월에 모든 꽃이 다 졌으나, 홀로 맑은 향기 지키는 계홍이 나오. 즐겁고 화목한 세상 사람들이 봄 언덕을 오르는 요임금 세상에 사는 순일이 나오. 적벽의 뭇별들이 호표 바위에..

(경판)남원고사 - XIV. 어사 출도 (3/3)

다. 청천의 벽력이라 암행어사 출또요 이때에 삼반 하인 맞춘 때가 다가오니, 관문 근처 골목마다 파립 장사, 망건장사, 미역장사, 황아 장사, 각각 외며 돌아다녀 삼반 하인 손을 치니, 군관 서리 역졸들이 청전대를 둘러 띠고 붉은 전립을 젖혀 쓰고, 마패를 빼어 들고 삼문을 꽝꽝 두드리고, “이 고을 아전 놈아. 암행어사 출또로다. 큰문을 바삐 열라.” 한편으로 관가의 창고를 잠가버리고 우지끈 뚝딱 두드리며 급히 짓쳐 들어오며, “암행어사 출또하오!” 이 소리 한마디에 태산의 범이 울고, 청천의 벽력이라. 기왓골이 떨어지고, 동헌이 터지는 듯 놀음이 고름이요, 삼현이 깨어짐이요, 노래가 모래 되고, 술상이 선반이라. 좌우 수령 거동 보소. 겁낸 거동 가소롭다. 언어수작 뒤집어 한다. “갓 내어라, 신고 ..

(경판)남원고사 - XIV. 어사 출도 (2/3)

나.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구나 본관이 꾸짖으며 나무라되, “그만하면 썩 흡족함이거든 또 기생 안주를 하라는고. 어허 괴이한 손이로고.” 운봉이 기생 하나 불러, “약주 부어 드리라.” 그중 한 년이 마지 못하여 술병 하나 들고 내려오니, 어사가 하는 말이, “너 묘하다. 권주가 할 줄 알거든 하나만 하여 나를 호사시키어라.” 그 기생 술 부어 들고, 외면하며 하는 말이, “기생 노릇은 못 하겠다. 비렁뱅이도 술 부어라, 권주가가 웬일인고? 권주가가 없으면 목구멍에 술이 아니 들어가나?” 혀를 차며 권주가한다. “먹으시오, 먹으시오. 이 술 한 잔 먹으시오.” “여보아라, 요년. 네 권주가 본래 그러하냐? 행하 권주가는 이러하냐? 잡수시오, 말은 마음에 들기에도 못하느냐?” 그 기생 독을 ..

(경판)남원고사 - XIV. 어사 출도 (1/3)

XIV. 어사 출도 가. 아마도 이 놀음이 고름이 되리로다 새벽에 문을 나서 군관 서리, 역졸들을 입짓으로 뒤를 따라 청운사로 들어가니, 각읍에 퍼진 염탐꾼 각각 옷을 바꿔 입고 다 모였다. 배 장사, 미역장사, 망건장사, 파립 장사, 황아 장사, 걸객이라. 밤중에 딴 방 잡아 불을 켜고 오십삼 관 염탐한 글을 각 항마다 조목조목 비교하여, 모일 모 역 모장터로 자리를 확실히 잡아 기약 헤쳐놓고, ‘금일 오후 본부 생일잔치에 부채 펴셔 들거들랑 출또하고 들어오라.’ 약속을 정한 후에, 해 뜰 무렵에 이르러서 백번이나 당부하던 옥문 밖은 아니 가고, 관문 근처 다니면서, 잔치 낌새 살펴보니 생일잔치 분명하다. 백설 같은 구름차일 보계판도 높을시고. 왜병풍에 모란 병풍을 좌우에 둘러치고, 화문등매, 채화석에..

(경판)남원고사 - XIII. 옥중 재회 (2/2)

나. 아무쪽록 급제하사 이 원한을 씻어주오 한편으로 반기며 한편으로 아득하여, 정신이 어질하여 엎드렸다가, 밥 먹을 만큼 잠깐 사이에 일어나 문틈으로 바라보며 눈물 오월 홍수 같아서 슬피 울며 하는 말이, “사람이 초년 가난하고 어렵기 또한 예사이건마는, 서방님 의관이 남루한들 저다지도 되었는고. 애고 내 신세를 어찌하리.” 어사가 이 형상을 다 보고 속이 터지는 듯 가슴이 답답. 들입다 붙들고 싶으나 겨우 참고 대답하되, “어허 이것이나 내 것이라고? 상투 바람으로 다니다가 임실 읍내 올벼 논에 막대 씌워 세운 것을 앞뒤 사람 없을 적에 가만히 도적하여 쓰고 부리나케 도망하여 어제 이리 왔거니와 임자가 날까 사람 많은 곳은 가기 싫더라.” 춘향이 어미 불러, “애고, 어머니. 내 말 듣소. 서방님이 정..

(경판)남원고사 - XIII. 옥중 재회 (1/2)

XIII. 옥중 재회 가. 선녀같던 네 모습이 산 귀신이 되었구나 춘향의 거동 보소. 정신이 아주 혼미하게 앉았다가 부르는 소리 듣고 급히 일어 나오다가, 형문 맞은 정강이를 옥 문턱에 부딪히고 애구 소리 크게 하며, “어머니가 놀라겠다.” 목 안 소리로 겨우 애고 애고 하고, 진정하여 대답하되, “어머니, 이 밤중에 또 왜 왔소. 밤이나 제발 평안함이 쉬시오. 저리 애쓰다가 마저 병이 들면 구할 리가 뉘가 있소? 이미 보러 와 계시니, 내 속곳이나 가져다가 앞 냇물에 솰솰 빨아 양지바르게 널어 주오. 차마 가려워 못 살겠소.” 춘향 어미 손목 잡고 대성통곡 우는 말이, “이를 어찌하자니? 내 장례를 네가 치러야 하는데, 네 장례를 내가 치르니 누가 내 장례를 치를까? 애고 애고, 설움이야. 내 곡을 네..

(경판)남원고사 - XII. 옥중 고초 (3/3)

다. 꿈 그리던 낭군님을 머지않아 만나리라 차설, 이때 허판수놈 하는 말이, “신수점이나 쳐 보아라. 내 식전 정신에 잘 쳐 보마.” 춘향이 꿈꾼 말을 다 자세히 이르며 옷고름에, “돈 너 푼, 호천호지 호일호월 합하면 천지일월이라, 가진 것이 이뿐이니 꿈 풀이 점을 잘 쳐 주오.” 판수의 거동 보소. 주머니를 어루만져 산통 내어 손에 들고 눈 위에 번쩍 들어 솰솰 한다면서,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묻거나 두드리면 곧 응답하시고, 신께서는 이미 영험이 있으시니, 내 마음에 감응하시어 순조롭게 통하기를 엎드려 비옵니다. 해와 달과 별과 같은 밝으심으로 이 세상을 밝게 비추시어 인간의 화복을 살피소서. 팔팔 육십사 괘 삼백육십사 효, 괘는 모양을 이루기 어렵고 효는 움직이기 어려우니, 하늘과 땅으로 그..

(경판)남원고사 - XII. 옥중 고초 (2/3)

나. 죽는 꿈을 꾸었으니 이를 어찌하잔 말가 차설, 이때 춘향이는 옥중에 홀로 앉아 한밤중에 못 든 잠을 새벽녘에 겨우 들어 잠들지도 깨지도 않은 채로 꿈을 꾸니, 평상시에 보던 몸거울이 한복판이 깨어지고, 뒷동산의 앵두꽃이 백설같이 떨어지고, 자던 방 문설주 위에 허수아비 달려 뵈고, 태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말라 뵈니, 꿈을 깨어나서 하는 말이, “이 꿈 아니 수상한가. 남가의 헛된 꿈인가, 화서몽, 구운몽, 남양초당 춘수몽, 이 꿈 저 꿈 무슨 꿈인고? 임 반기려 길몽인가? 나 죽으려 흉몽인가? 하루아침에 낭군 이별 후에 소식조차 끊어지니 급히 달려간 서간도 돌아오는 소식이 없고, 삼 년이 되어 가되, 편지 일 장 아니하나? 봄은 믿음 있어 오는 때에 돌아오되, 임은 어이 믿음 없어 돌아올 줄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