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 만남 (3/4)

New-Mountain(새뫼) 2020. 6. 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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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기생의 딸이라니 당장 가서 불러오라

 

이때는 삼월이라 일렀으되, 오월 단옷날이렷다. 한 해 중에 가장 좋은 날이라. 이때 월매 딸 춘향이도 또한 시와 글씨 소리와 가락이 능통하니 단옷날을 모를쏘냐.

그네를 뛰려고 향단이 앞세우고 내려올 제 난초같이 고운 머리 두귀를 눌러 곱게 땋아 금봉채를 가지런히 하고 엷은 비단치마 두른 허리 가벼운 병이 걸린 듯 가는 버들 힘이 없이 드리운 듯, 아름답고 고운 태도 아장 걸어 흐늘 걸어 가만가만 나올 적에, 긴 숲 속으로 들어가니, 푸픈 나무와 향기로운 풀 우거져 금잔디 좌르륵 깔린 곳에 황금 같은 꾀꼬리는 쌍상이 짝지어 오고가며 날아들 제, 무성한 버드나무 백 자나 넘는 높은 곳에서 그네를 뛰려할 제 수화유문, 초록 장옷, 남색 명주 홑치마 훨훨 벗어 걸어두고, 자주빛 가죽신을 썩썩 벗어 던져두고, 흰 명주 속곳 턱 밑에 훨씬 추켜올리고, 삼껍질 그넷줄을 가늘고 고운손으로 넌지시 들어 두 손에 갈라 잡고, 흰 비단 버선 두 발길로 가볍게 선뜻 올라 발 구를 제, 가는 버들 같은 고운 몸을 단정히 놀리는데 뒷장으로 옥비녀 은죽절과, 앞치레 볼 것 같으면 밀화장도 옥장도며, 비단 겹저고리 하늘색 고름에 모양이 난다.

“향단아 밀어라.”

한 번 굴러 힘을 주며 두 번 굴러 힘을 주니 발 밑에 가는 티끌 바람 좇아 펄펄 앞 뒤 점점 멀어가니 머리 위의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흔들흔들 오고갈 제 살펴보니, 나무 그늘 속에 붉은 치맛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한없이 높고 넓은 하늘에 떠있는 흰구름 사이에 번갯불이 쏘는 듯, 바라보니 앞에 있다가 갑자기 뒤에 가 있더라. 앞으로 얼른 하는 양은 가벼운 저 제비가 복숭아꽃 한 점 떨어질 제 찾으려 하고 좇는 듯, 뒤로 번듯하는 양은 거센 바람에 놀란 나비가 짝을 잃고 가다가 돌이키는 듯, 무산 선녀 구름 타고 양대 위에 내리는 듯, 나뭇잎도 물어보고 꽃도 질끈 꺾어 머리에다 실근실근,

“이 애 향단아. 그네 바람이 독하기로 정신이 어찔하냐. 그네줄 붙들어라.”

붙들려고 무수히 나아가고 물러서며 한창 이리 노닐 적에 시냇가 넓은 바위 위에 옥비녀 떨어져 쟁쟁하고 ‘비녀 비녀’ 하는 소리 산호 비녀를 들어 옥쟁반을 깨뜨리는 듯 그 모습은 세상 인물 아니로다.

제비는 봄 내내 날아 다니더라. 이도령 마음이 울적하고 정신이 어찔하여 별 생각이 다 나것다. 혼잣말로 헛소리하되 오호에 조각배 타고 범소백을 좇았으니 서시도 올 리 없고, 해성 달 밝은 밤에 장수의 장막에서 부른 슬픈 노래 불러 초패왕을 이별하던 우미인도 올 리 없고, 단봉궐 하직하고 백룡퇴 간 연후에 무덤에서 홀로 푸른 풀이 돋았으니 왕소군도 올 리 없고, 장신궁 깊이 닫고 백두음을 읊었으니 반첩여도 올 리 없고, 소양궁 아침에 모시고 돌아오니 조비연도 올 리 없고, 낙포선녀인가, 무산선녀인가. 도련님 혼이 하늘 가운데로 날아다녀 온 몸이 외로운지라. 진실로 결혼 못한 총각이로다.

“통인아.”

“예.”

“저 건너 꽃과 버들 사이에 오락가락 희뜩희뜩 어른어른 하는 게 무엇인지 자세히 보아라.”

통인이 살펴보고 여쭈오되

“다른 무엇 아니오라 이 고을 기생 월매 딸 춘향이란 계집아이로소이다.”

도련님이 엉겁결에 하는 말이

“장히 좋다. 휼륭하다.”

통인이 아뢰되,

“제 어미는 기생이오나 춘향이는 도도하여 기생 구실 마다하고 온갖 종류의 꽃과 풀잎을 보며 글자도 생각하고, 바느질과 길쌈이며 문장을 함께 잦추어 여염집의 처자와 다름이 없나이다.”

도령 허허 웃고 방자를 불러 분부하되

“들은 즉 기생의 딸이라니 급히 가 불러오라.”

방자놈 여쭈오되

“눈처첨 흰 피부와 꽃처럼 고운 얼굴이 이 남쪽에서 유명하기로 관찰사, 첨사, 병사와 부사, 군수,현감, 원님네 엄지발가락이 두 뼘 가웃씩 되는 양반 오입장이들도 무수히 보려 하되 보지 못하였고, 장강의 미모와 임사의 덕행이며, 이백과 두보의의 글재주며, 태사의 온화하고 순한 마음과 이비의 정절을 품었으니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요, 만고에 덕이 높은 여자이오니 황공하온 말씀으로 불러오기 어렵나이다.”

도령 크게 웃고,

“방자야 네가 물건마다 각기 임자가 있음 모르는도다. 형산의 백옥과 여수에서 나는 황금이 임자 각각 있느니라. 잔말 말고 불러오라.”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갈 제, 맵시 있는 방자녀석 서왕모 요지 잔치에 편지 전하던 청조같이 이리저리 건너가서

“여봐라, 이 애 춘향아.”

부르는 소리 춘향이 깜짝 놀래

“무슨 소리를 그따위로 질러 사람의 정신을 놀래느냐.”

“이 애야, 말 마라. 일이 났다.”

“일이라니 무슨 일.”

“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에 오셨다가 너 노는 모양 보고 불러오란 명령이 났다.”

춘향이 화를 내어

“네가 미친 자식이로다. 도련님이 어찌 나를 알아서 부른단 말이냐. 이 자식 네가 내 말을 종달새 삼씨 까 듯이 하였나보다.”

“아니다. 내가 네 말을 할 리가 없되 네가 그르지 내가 그르냐. 너 그른 내력을 들어보아라.

계집아이 행실로 그네를 뛸 양이면 네 집 후원 담장 안에 줄을 매고 그네 뛰는 게 도리에 당연함이라. 광한루 멀지 않고 또한 이곳을 논할진대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져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나을 때라.

향기로운 풀은 푸르렀는데 앞 내 버들은 초록색 장막 두르고 뒷 내 버들은 연두색 장막 둘러 한 가지 늘어지고 또 한 가지 펑퍼져 거센 바람 이기지 못해 흐늘흐늘 춤을 추는데, 광한루 경치 구경하는 곳에 그네를 매고 네가 뛸 제, 외씨 같은 두 발길로 흰 구름 사이에 노닐 적에, 붉은 치맛자락이 펄펄 흰 명주 속곳 갈래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 같은 네 살결이 흰 구름 사이에 희뜩희뜩, 도련님이 보시고 너를 부르실 제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잔말 말고 건너가자.”

춘향이 대답하되

“네 말이 당연하나 오늘이 단옷날이라. 비단 나뿐이랴. 다른 집 처자들도 예와 함께 그네를 뛰었으되 그럴 뿐 아니라, 설혹 내 말을 할지라도 내가 지금 관아에 매인 몸이 아니거든 여염집 사람을 오라고 불러 놓고 다시 쫓아 버리려 부를 리도 없고 부른대도 갈 리도 없다. 당초에 네가 말을 잘 못 들은 바라.”

방자 속마음에 성가시어 광한루로 돌아와 도련님께 여쭈오니, 도련님 그 말 듣고

“기특한 사람이로다. 말이야 옳은 말이로되, 다시 가 말을 하되, 이리이리 하여라.”

방자 전갈 모아 춘향에게 건너가니 그 사이에 제집으로 돌아갔거늘 저의 집을 찾아가니 모녀간 마주 앉아 점심밥이 장차 시작할 참이라.

방자 들어가니,

“너 왜 또 오느냐?”

“황송하다. 도련님이 다시 전갈하시더라. 내가 너를 기생으로 앎이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 한다기로 청하노라. 여염집에 있는 처자 불러 보기 듣기에는 괴이하나 미심쩍게 알지 말고 잠깐 와 다녀가라 하시더라.”

춘향의 너그러운 뜻이 인연이 맺어지려고 그러한지 홀연히 생각하니 갈 마음이 나되, 모친의 뜻을 몰라 무엇을 깊이 생각하느라고 한참 동안 말 않고 앉았더니 춘향 모 썩 나 앉아 정신없게 말을 하되,

“꿈이라 하는 것이 모두 허사가 아니로다. 간밤에 꿈을 꾸니 난데없는 청룡 하나 벽도나무 선 연못에 잠겨 보이거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우연한 일 아니로다. 또한 들으니 사또 자제 도련님 이름이 몽룡이라 하니 꿈 몽자, 용 룡자 신통하게 맞추었다. 그러나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갈 수 있겠느냐? 잠깐 가서 다녀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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