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4/5)

New-Mountain(새뫼) 2020. 7. 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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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사랑사랑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춘향과 도련님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 지는 햇볕을 받으면서 삼각산 제일봉의 봉황과 학이 앉아 춤추는 듯, 두 팔을 휘어질 듯 굽게 들고 춘향의 가냘프고 고운 손이 겨우 겹쳐 잡고 의복을 공교하게 벗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 가는 허리를 담쏙 안고,

“적삼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 제, 이리 곰실 저리 곰실 푸른 물의 붉은 연꽃에 잔잔한 바람 만나 꼼지작거리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제쳐놓고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실랑이질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 청룡이 굽이를 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 될 말이로다.”

실랑이 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끼어 안고 진득이 누르며 기지개 켜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활딱 벗어지니 형산의 백옥덩이 이 위에 비할쏘냐. 옷이 활씬 벗어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하고 슬그머니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가 이부자리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좇아 들어 누워 저고리를 벗겨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데다 둘둘 뭉쳐 한 편 구석에 던져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뼈에서 즙이 날 제 삼승이불 춤을 추고, 샛별 요강은 장단을 맞추어 청그렁 쟁쟁, 문고리는 달랑달랑, 등잔불은 가물가물, 맛이 있게 잘 자고 났구나. 그 가운데 재미 좋은 일이야 오죽하랴.

하루 이틀 지나가니 어린 것들이라 신맛이 간간 새로워 부끄럼은 차차 멀어지고, 그제는 희롱도 하고 우스운 말도 있어 자연 <사랑가>가 되었구나.

사랑으로 노는데 똑 이 모양으로 놀던 것이었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동정호 칠백 리 달빛 비취는 마을에 무산같이 높은 사랑,

아득하게 펼쳐진 물에 하늘처럼 크고 넓은 바다같이 깊은 사랑,

옥산전 달 밝은데 수많은 가을 산봉우리에서 달 구경하는 사랑,

일찍이 춤을 배울 적 시험 삼아 퉁소를 불어 보던 사랑,

느릿하게 해질 제 달빛이 만들어낸 주렴 사이로 복숭아꽃 오얏꽃이 피어나 비친 사랑,

가늘고 가는 초승달이 분처럼 하얀데 머금은 미소와 고운 자태가 숱한 사랑,

달 아래 삼생 연분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없는 부부 사랑, 

동산에 꽃비 내리는데 목련꽃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다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은하수 직녀가 짠 비단같이 올올이 이은 사랑,

기생집의 미인과 함께 드는 잠자리처럼 홈질한 옷의 솔기마다 감친 사랑,

시냇가 수양버들같이 느슨하고 늘어진 사랑,

관아 남북 창고에 쌓인 곡식같이 담불담불 쌓인 사랑,

은장 옥장 장식같이 이모저모 모두 잠긴 사랑,

영산홍 꽃잎들이 봄바람에 넘노나니 노란 벌과 흰 나비 꽃을 물고 즐긴 사랑,

푸른 강물 위의 원앙새처럼 마주 둥실 떠 노는 사랑,

해마다 칠월 칠석 밤에 견우직녀 만난 사랑,

육관대사 성진이가 팔선녀와 노는 사랑,

산을 뽑을 듯한 초패왕이 우미인 만난 사랑,

당나라 당명황이 양귀비 만난 사랑,

명사십리 해당화같이 색이 엷고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도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도를 보자.

빵긋 웃고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 보자.

너와 나와 만난 사랑, 연분을 팔자 한들 팔 곳이 어디 있어.

생전 사랑 이러하고, 어찌 죽은 후 기약 없을쏘냐.

너는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글자 되되, 

땅 지자 그늘 음자 아내 처자 계집 녀자 변이 되고,

나는 죽어 글자 되되, 

하늘 천자 하늘 건 지아비 부, 사내 남, 아들 자, 몸이 되어

계집 녀 변에다 딱 붙이면, 좋을 호자로 만나 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

또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물이 되되 

은하수, 폭포수, 한없이 넓은 바닷물, 푸른 계곡물, 흰 계곡물, 한 줄기 긴 강물 던져두고,

칠 년 큰 가뭄에도 항상 넉넉하게 젖어 있는 음양수란 물이 되고,

나는 죽어 새가 되되, 

두견새 되지 말고, 요지에 해 뜨고 달 뜰 제, 

청조 청학 백학이며 대붕조 그런 새가 되지 말고,

쌍쌍이 오고가며 떠날 줄 모르는 원앙새란 새가 되어,

푸른 물에 원앙새처럼 어화둥둥 떠 놀거든, 나인 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나 아니 될라요.”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경주 인경도 되지 말고,

전주 인경도 되지 말고,

송도 인경도 되지 말고,

한양 종로 인경 되고,

나는 죽어 인경 망치 되어,

삼십삼천 이십팔수를 응하여

길마재 봉화 세 자루 꺼지고

남산 봉화 두 자루 꺼지면

인경 첫마디 치는 소리 그저 뎅뎅 칠 때마다

다른 사람 듣기에는 인경소리로만 알아도

우리 속으로는 춘향 뎅 도련님 뎅이라.

만나 보자꾸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방아 확이 되고,

나는 죽어 방아 고가 되어

경신년 경신일 경신시에

강태공이 만든 방아

그저 떨거덩 떨거덩 찧거들랑

나인 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간간 즐거운 사랑이야.”

 

춘향이 하는 말이

“싫소. 그것도 내 아니 될라요.”

“어찌하여 그 말이냐?”

“나는 항시 어찌 지금이나 죽은 다음이나 밑으로만 되라니까 재미없어 못 쓰겠소.”

“그러면 너 죽어 위로 가게 하마.

너는 죽어 맷돌 위짝이 되고 나는 죽어 밑짝 되어

이팔청춘 젊고 고운 여인들이 가늘고 고운 손으로 맷대를 잡고 슬슬 돌리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게 휘휘 돌아가거든

나인 줄 알려무나.”

“싫소, 그것도 아니 될라요. 위로 생긴 것이 분한 마음 나게만 생기었소. 무슨 년의 원수로서 일생 한 구멍이 더하니 아무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명사십리 해당화가 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어

나는 네 꽃송이 물고 너는 내 수염 물고

봄바람이 건듯 불거든

너울너울 춤을 추고 놀아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내 간질간질 즐거운 사랑이지.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이 모두 내 사랑 같으면

사랑 걸려 살 수 있나.

어화둥둥 내 사랑,

내 예쁜 내 사랑이야.

방긋방긋 웃는 것은 꽃 중의 왕 모란화가

하룻밤 가랑비 온 뒤에 반만 피고자 한 듯

아무리 보아도 내 사랑

내 간간 사랑이로구나.

그러면 어쩌잔 말이냐.

너와 나와 정이 있으니

정 자를 넣어 놀아보자.

소리를 함께 하여 정자 노래나 불러 보세.”

“들읍시다.”

“내 사랑아, 들어봐라.

너와 나와 유정하니

어이 아니 다정하리.

장강의 물은 출렁이며 흐르는데,

멀리 떠나는 나그네의 시름은 그치지 않는구나.

하수의 다리에서 그대를 보내지 못하니,

강가의 나무도 안타깝구나.

남포에서 그대를 보내니 안타깝고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내 마음을 보내노라.

한태조가 비 오기를 바라는 희우정

삼정승 육판서 벼슬아치들이 모인 조정

불도를 닦는 곳이 속되지 않고 깨끗하니 청정

각시가 그리워하는 친정

오랜 친구들과 나누는 통정

어지러운 세상을 평온하게 진정

우리 둘이 맺었던 천년 인정

달은 밝고 별은 드문 소상강 동정호

세상 만물은 조화롭게 자리가 정해치고 근심 걱정

억울함을 글로 하소연하는 원정

몰래 뇌물로 바치는 인정

음식 투정, 복 없는 저 방정,

송사 처리하던 관아의 뜰, 안의 사정, 밖의 사정

영암의 애송정

활을 쏘는 전주의 천양정

양귀비가 먹을 갈던 침향정

두 왕비가 몸을 던진 소상정

강릉의 한송정

온갖 꽃이 만발한 호춘정

기린봉에 뜨는 달을 보는 전주의 백운정

너와 나와 만난 정

진실한 마음을 따져 말하면

내 마음은 어질고 예의 있고, 의롭고, 지혜롭고

네 마음은 내게 맡긴 한 조각의 정

이같이 다정하다가 만일 즉시 정이 깨어지면

복통이 절정 되어 걱정되니

진정으로 사정을 하소연하자는 그 정 자다."

춘향이 좋아라고 하는 말이

“정 자 속은 아주 잘 되어 매우 좋소. 우리 집 재수있게 안택경이나 좀 읽어 주오.”

도련님 허허 웃고

“그 뿐인 줄 아느냐. 또 있지야. 궁 자 노래를 들어보아라.”

“애고 얄궂고 우습다. 궁 자 노래가 무엇이오.”

“네 들어보아라. 좋은 말이 많으니라.

좁은 천지 처음 열리는 개탁궁,

천둥 번개 비바람 속에 상서로운 해와 달과 별의 빛이 풀려 있는 장대한 창합궁

임금의 덕이 넓으신데,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일은 어이 되었는가. 술이 연못이 될 만큼 손님들이 구름같이 몰려들던 은왕의 대정궁,

진시황의 아방궁,

천하를 얻게 된 까닭을 물을 적에 한태조 함양궁, 그 곁에 장락궁,

반첩여의 장신궁, 당명황제 상춘궁,

이리 올라 이궁, 저리 올라서 별궁,

용궁 속에 수정으로 지은 궁, 월궁 속의 광한궁,

너와 나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평생 끝이 없구나.

이 궁 저 궁 다 버리고

네 두 다리 사이 수룡궁에

나의 심줄 방망이로 길을 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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