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 372

(경판)남원고사 - XII. 옥중 고초 (1/3)

XII. 옥중 고초 가. 내 딸이 너로 하여 옥중에서 죽는구나 허둥지둥 바삐 걸어 또 한 곳을 다다르니, 풍헌 약장, 면임들이 답인과 수결 발기를 들고 백성들에게 물품을 거둬들이는구나. 이달 이십칠일이 이 고을 원님 생일이라. 크고 작은 가리지 않고 나누어 돈과 쌀을 거둬들이니, 백성들의 원한이 하늘을 찌르니 집집이 울음이다. 길가에서의 상제가 하나 울고 가며 하는 말이, “이런 관장 보았는가? 살인죄의 죄명을 적어 관청에 내었더니, 원님이 판결을 내리되, ‘얼마 되지 않는 백성 중에 하나 죽고도 어렵거든, 또 하나를 사형에 처하면 두 백성을 잃는구나. 바삐 몰아 내치어라.’ 하니 이런 일처리를 보았는가?” 이런 말도 얻어듣고 또 한 곳 다다르니 나무꾼 하나 하되, “불쌍하고 가련하다. 이인들 아니 불쌍..

(경판)남원고사 - XI. 어사 이몽룡 (4/4)

라. 옛정을 생각하여 만나기를 바라나이다 하직하고 한 곳을 다다르니 길가에 주막 짓고 한 영감이 앉아서 막걸리 팔며 청올치 꼬며 반이나마 부르니, 하였으되, “반나마 늙었으니 다시 젊든 못하여도 이후나 늙지 말고 매양 이만이나 하였고저. 백발이 제 짐작하여 더디 늙게.” 어사가 주머니 떨어 돈 한 푼 내어 쥐고, “술 한 잔 내라리까.” 영감이 어사의 꼴을 보고 “돈 먼저 내시오.” 쥐었던 돈 내어주고 한 푼어치 졸라 받아 먹고 입 씻고 하는 말이, “영감도 한 잔 먹으라니까.” 영감이 대답하되, “아스시오, 그만두오. 지나가는 행인에게 무슨 돈이 넉넉하여 나를 술 먹이려시오.” 어사가 대답하되, “내가 무슨 돈이 있어 남을 술 먹일까. 영감 술이니 출출한데 한 잔이나 먹으란 말이지.” 영감이 골을 내어..

(경판)남원고사 - XI. 어사 이몽룡 (3/4)

다. 무도한 이도령은 영영 소식 끊겼는가 멀리 달아나 한 곳에 다다르니 기암 층층 절벽 사이 폭포의 푸른 물이 떨어지고, 계곡 옆 좌우 넓은 바위 위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 무수하다. 땀 들여 세수하고 또 한 곳 다다르니 짧은 머리 나무하는 아이 소모는 아이들이 쇠스랑에 호미 들고 소리하며 올라올 제, “어떤 사람 팔자 좋아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어 염려 없고, 또 어떤 사람 팔자 운수가 사나워 한 몸이 난처하고, 아마도 가난과 추위, 고생과 즐거움을 돌려 볼까.” 또 한 아이 소리하되, “이 마을 총각, 저 마을 처녀, 남자는 장가 여자는 시집이 제법이다. 일 처리가 공평한 하늘 아래 세상일이 사리의 옳고 그름도 지다.” 어사가 서서 듣고 혼잣말로, “조 아이 녀석은 의붓어미에게 밥 얻..

(경판)남원고사 - XI. 어사 이몽룡 (2/4)

나. 남원 부사 어떠하오 공사가 분명하오 이때는 춘삼월 좋은 시절이라.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온화하며 산천 경치 거룩하여 시골 경치 또한 서울보다 더 나음이 많더라. 어사가 마음이 어지럽고 몸이 몹시 지쳐 고단한지라. 다리도 쉬며 경치도 구경하려 꽃 버들 사이에 앉아 사면을 살펴보니, 먼 산은 겹쳐있고 가까운 산은 첩첩, 태산은 넓고 멀어 아득하고, 기암은 층층, 큰 솔은 휘늘어지고, 계곡물은 잔잔, 비오리 둥둥, 두견새 접동새는 좌우에 넘노는데, 계면쩍고 부끄러운 산따오기는 이 산으로 가며 따옥 저 산으로 가며 따옥 울음 울고, 또 한 편 바라보니 모양 없는 쑥꾹새는 저 산으로 가며 쑥국, 이 산으로 가며 쑥국 울음 울고, 또 한 편 바라보니 마니산 갈까마귀 돌도 차돌도 아무것도 못 얻어먹고 태백산 ..

(경판)남원고사 - XI. 어사 이몽룡 (1/4)

XI. 어사 이몽룡 가. 어사를 맡기시면 탐관오리 살피오리다 차설, 이도령은 경성으로 올라와서 은근히 저를 위한 정이 가슴에 못이 되고, 오장에 불이 되어 구름 낀 산을 시름없이 바라보매, 몸에 날개 없음을 한탄하고 정신을 잃을 듯이 염려되어 밤마다 관산을 넘나드니, 꿈에 다니는 길이 자취 곧 날 양이면, 임의 객창 밖에 돌길이라도 닳으리라. 아무리 생각하여도 하릴없다. “내가 만일 병 곧 들면 부모에게 불효 되고, 저를 어찌 다시 보리. 학업을 힘써 공명을 이룰 양이면, 부모에게 영광과 효도를 뵈고, 문호를 빛낼진대, 내 사랑은 이 가운데 있으리라.” 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할 제, 한 번 보면 모두 다 기억하는 재주 있는 남아이거든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듯 아무 염려할 것이 없도다. 이적선..

(경판)남원고사 - X. 옥중 춘향 (2/2)

나. 내가 만일 죽거들랑 한양성내 묻어주오 를 지어내니, “내 몸이 여자 되고 군자를 사모하나 밝은 해가 무정하여 세월이 깊어 가니 뒤척뒤척 잠 못 드니 청춘이 아깝구나 봄 석 달에 깊은 병이 뼛속까지 들었으니, 가슴에 썩은 피를 편작인들 어이할꼬? 대문 앞의 버들과 창밖의 매화는 가지마다 봄빛이요 금실로 맺었으며 흰 눈으로 다듬었다. 끝이 없는 봄빛은 어이하여 나의 회포를 돋우느뇨 사람이 다시 젊어질 수 없다는 걸 나도 잠깐 알건마는 동쪽 정원의 복숭아꽃 배꽃은 봄임을 임은 어이 모르는고 탁문군의 거문고는 남산의 솔잣나무로 만들어 월하노인의 끈으로 맺어내어 우리 인연 맺고지고 죽지사와 매화곡을 임의 이름 삼아 던져두고 사람 소리 없는 황혼의 저녁에 한숨 섞어 노래한들 그 뉘라서 찾아오리 푸른 하늘이 알..

(경판)남원고사 - X. 옥중 춘향 (1/2)

X. 옥중 춘향 가. 오늘이나 편지 올까 내일이나 소식 올까 이 말 저 말 내어 그리 저리 흩어지니, 춘향의 거동 보소. 정신을 겨우 차려 눈을 들어 살펴보니, 옥방 형상 가엾다. 앞문에는 살이 없고, 뒷벽에는 외만 남아, 시절은 음력 섣달이라. 겨울바람은 뼈까지 불고 눈보라 흩날리니 뼈마디가 저려 온다. 북풍 눈보라 찬 바람은 화살 쏘듯 들어오니, 머리끝에 서리 치고 손발조차 얼음 같다. 거적자리 헌 누비에 그리 저리 겨울 가고 봄이 지나 여름 유월이 다다르니 완연한 오랜 죄수로다. 헌 자리에 벼룩 빈대 야윈 등에 종기를 퍼뜨리고, 팔뼈 없는 모기들은 뱃가죽에 침질할 제, 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려서 축축한 궂은 날에 귀신의 울음의 소리가 처량하고, 컴컴한 세상 어두운 밤에 옥의 고초가 그지없다. 이팔청..

(경판)남원고사 - IX. 남원 왈짜들 (4/4)

라. 사또 말고 오또 와도 우리는 놀아보자 한편에서는 노름한다. “일성옹주정꼭지 삼 년을 피리 소리로 관산월 노래를 들음이라. 장님 수풀에 범 긴다.” “세 목 죽었는데 네 목째 간다.” “이번 꽂은 장이야 뚫고 샐까.” “곤이 장원 못 지거든 가라니까.” 한편에서는, “백사 아삼 오륙하고, 쥐부리 사오 삼륙하고, 제칠삼오 제팔관이 묘하다. 열여덟씩 드리소.” 한편에서는, “네 대갈수야, 오구일성이로구나.” “어렵다. 조장원 맞추기 반씩 하자.” “석류 먹던 씨나 그만 있소.” “척척 쳐서 섞어 쥐어라.” “석조는 하공정이로구나.” “바닥 둘째 입을 내소.” “어디에 갈까?” “이 애 하자던 반이나 하자.” 또 한편에서는, “삼십삼천 바로 쳤다. 민동이를 드리소.” “당당홍에 중초립에 건양재를 넘는구나...

(경판)남원고사 - IX. 남원 왈짜들 (3/4)

다. 춘향아 언문책을 읽을 테니 들어보게 또 한 왈짜가 언문 책 본다. “이날 큰 강 중에 화염은 하늘에 퍼져 가득하다 함성은 크게 떨치는데, 좌편은 한당, 장흠 양쪽의 노 젓는 군대가 적벽 서쪽으로 짓쳐오고, 우편은 진무, 주태 양쪽 노 젓는 군대가 적벽 동으로 짓쳐오고, 가운데는 주유, 정보, 서성, 정봉의 크나큰 배들이 불기운을 끼워 삼강구로 일시에 짓쳐 들어오니, 불기운은 바람을 돕고 바람은 불 위엄을 도우니, 이 이른바 삼강 수전이요, 적벽 오전이라. 북군이 화살 맞으며 불에 타며 물에 빠진 자가 너무 많아서 그 수효를 헤아릴 수가 없음이러라. 한 왈짜가 하는 말이, “나는 보겠다. 각설, 송강이 강주성 밖에 나와 대종, 이규, 장순 등을 만나지 못하고, 홀로 마음이 심심하매 느리게 걸어 나가 ..

(경판)남원고사 - IX. 남원 왈짜들 (2/4)

나. 춘향아 기운차려 우리 노래 들어보게 이렇듯이 다투면서 여러 한량 왈짜들이 칼머리를 받아들고 구름같이 양쪽에서 부축하여 보호하며 옥중으로 내려갈 제, 칼 멘 왈짜 한다. “얼널네화, 남문 열고 종을 쳤다. 샛별이 돋아 오네. 앞뒷집의 촛불이 꺼져가니 발등거리 불 밝혀라. 얼널네화 얼널네화 요령은 쟁쟁 울려 서소문이요, 만장은 날아 나부끼며 모화관을 치마바위 돌아갈 제 담제꾼이 발 부르트고 행자와 곡비 목이 멘다. 얼널네화 얼널네화.” 한 왈짜 내달으며 뺨따귀를 딱 붙이거늘, “에구, 이것이 웬일이니?” “에구라니, 요 방정의 아들놈아. 산사람 메고 가며 상여꾼의 소리는 웬일이니?” “오냐. 내가 무심히 잘못은 하였다마는 사람들이 많이 빽빽하게 모인 가운데에 무안쩍게 뺨은. 제 어미를 붙기에 그다지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