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3/5)

New-Mountain(새뫼) 2020. 7. 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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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리 둘이 이 술을 혼인 술로 알고 먹자

 

춘향 어미 이 말 듣고 이윽히 앉았더니 꿈꾼 일이 있는지라 연분인 줄 짐작하고 기쁘게 허락하며,

“봉이 나매 황이 나고, 장군 나매 용마 나고, 남원에 춘향 나매 봄바람에 오얏꽃이 꽃다웁다. 향단아, 술상 준비하였느냐?”

“예.”

대답하고 술과 안주를 차릴 적에 안주 등등을 볼 것 같으면 괴임새도 정결하고,

대양푼 가리찜, 소양푼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나는 매추리탕에 동래 울산대전복을 거북 등껍질 장식한 잘 드는 칼로 맹상군의 눈썹처럼 비슷비슷하게 오려 놓고, 염통 산적, 양볶이와 봄에 절로 우는 꿩의 생다리, 적벽 대접 분원기에 냉면조차 비벼놓고,

생밤, 찐밤 잣송이며 호도, 대추, 석류, 유자, 말린 감, 앵두, 탕그릇 같은 청술레를 칫수에 맞게 괴었는데, 술병 치레 볼 것 같으면 티끌 없는 백옥병과 푸른 바닷물에서 나온 산호병과 우물에 떨어진 오동잎을 그린 오동나무 병과 목 긴 황새병, 자라병, 당화병, 쇄금병, 소상강 동정호의 대나무병, 그 가운데 품질 좋은 은으로 만든 동그란 주전자, 붉은 구리로 만든 주전자, 금물 입힌 주전자를 차례로 놓았는데 갖춤도 갖출시고.

술 이름을 이를진대 이적선 포도주와 안기생 자하주와 산속 처사들이 마시던 송엽주와 과하주, 방문주, 천일주, 백일주 금로주, 팔팔 뛰는 화주, 약주, 그 가운데 향기로운 연엽주 골라내어 주전자 가득 부어, 청동화로 참숯불에 남비 냉수 끓는 가운데 주전자 둘러, 차지도 뜨겁지고 않게 데워 내어 금잔, 옥잔, 앵무배를 그 가운데 데웠으니, 옥경 연꽃 피는 꽃이 태을선녀의 연잎배 뜨듯, 대광보국 영의정 파초배를 띄우듯 둥덩실 띄워놓고 술 권하는 노래 한 곡조에 한 잔 한 잔 다시 한잔이라.

이도령 이른 말이

“오늘 밤에 하는 절차 보니 관청이 아니거든 어이 그리 잘 갖추었는가.”

춘향 모 여쭈오되

“내 딸 춘향 곱게 길러 정숙하고 기품있는 여인이 군자의 좋은 짝을 가리어서 큰 거문고와 작은 거문고가 짝이 되듯 평생 함께 즐기라 하올 적에 사랑에 노는 손님 영웅호걸 문사들과 어린 시절 벗님네와 밤낮으로 즐기실 제, 안방의 하인 불러 밥상 술상 재촉할 제, 보고 배우지 못하고는 어이 곧 준비하리.

안사람이 어리석으면 가장 낯을 깎음이라. 내 생전 힘써 가르쳐 아무쪼록 본받아 행하라고 돈 생기면 사 모아서 손으로 만들어서 눈에 익고 손에도 익히라고 한때 반 때 놓지 않고 시킨 바라. 부족하다 말으시고 입맛대로 잡수시오.”

앵무잔에 술 가득 부어 도련님께 드리오니, 도령 잔 받아 손에 들고 탄식하여 하는 말이

“내 마음대로 할진대는 육례를 행할 터나 그러질 못하고 남의 눈을 피해 개구멍으로 드나드는 서방으로 들고 보니 이 아니 원통하랴. 이 애 춘향아. 그러나 우리 둘이 이 술을 대례 술로 알고 먹자.”

한 잔 술 부어 들고

“너 내 말 들어봐라. 첫째 잔은 인사주요, 둘째 잔은 합환주라. 이 술이 다른 술 아니라 근원 근본 삼으리라. 순임금의 아황 여영 귀히귀히 만난 연분 지극히 무겁다 하였으되, 월하노인의 우리 연분, 삼생까지 이어질 아름다운 약속으로 맺은 연분, 천만년이라도 변치 아니할 연분, 대대로 삼정승 육판서를 하고, 자손이 많이 번성하여 자손 증손자 고손자며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죄암죄암 달강달강 어르면서 한평생을 오래 살다가 한날한시 마주 누워 앞뒤 없이 죽게 되면 천하에 제일가는 연분이지.”

술잔 들어 잡순 후에

“향단아 술 부어 너의 마누라께 드려라. 장모, 경사 술이니 한 잔 먹소.”

춘향 어미 술잔 들고 기쁘다가 문득 슬퍼하며 하는 말이,

“오늘이 딸애의 한평생 괴로움과 즐거움을 맡기는 날이라. 무슨 슬픔 있으리까마는 저것을 길러낼 제 애비 없이 설이 길러 이때를 당하오니, 영감 생각이 간절하여 마음이 몹시 슬프오이다.”

도련님 이른 말이

“이미 지나간 일 생각 말고 술이나 먹소.”

춘향 모 서너 잔 먹은 후에 도련님 통인 불러 상 물려 주면서

“너도 먹고 방자도 먹여라.”

통인 방자 상 물려 먹은 후에 대문 중문 다 닫치고 춘향 어미 향단이 불러 자리 마련하여 깔 제 원앙금침 잣베개와 샛별 같은 요강 대야, 자리 깔기를 깨끗이 하고

“도련님 평안히 쉬옵소서. 향단아 나오너라. 나하고 함께 자자.”

둘이 다 건너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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