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 만남 (1/4)

New-Mountain(새뫼) 2020. 6. 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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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만남

 

가. 신령께서 지시하여 부인댁에 왔나이다

 

숙종대왕 즉위 초에 임금의 덕이 넓으시사 어진 임금의 자손은 끊이지 않고 대를 이어가사, 징과 북 옥피리 소리는 요순 임금 시절이요, 옷차림과 문물의 왕성함은 우탕의 버금이라. 좌우에서 기둥과 주춧돌과 같은 신하들이 임금을 돕고, 장수들은 용처럼 뛰어오르고 호랑이처럼 성을 굳게 지키더라.

조정에 흐르는 덕의 교화는 시골에 퍼졌으니 온 세상의 굳은 기운이 원근에 어려 있다. 충신은 조정에 가득하고, 효자와 열녀는 집집마다 있었더라.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비가 때맞추어 오고 바람이 고르게 부니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즐겁게 지내는 백성들은 곳곳에서 격양가라.

이때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 하는 기생이 있되, 삼남의 유명한 기생으로서 일찍이 기생에서 물러나서 성가라 하는 양반을 데리고 세월을 보내되, 나이 사십에 이르러 자식 하나 없어 이것이 한이 되어 긴 한숨에 근심스러운 마음으로 병이 되겠구나.

하루는 크게 깨쳐 옛사람을 생각하고 가군을 청해 들어오게 한 후에 여쭈오되 공순히 하는 말이,

“들으시오. 전생에 무슨 은혜 끼쳤던지 이생에 부부 되어, 천한 기생 행실 다 버리고 예절에 맞는 몸가짐을 숭상하고 길쌈도 힘썼건만, 무슨 죄가 무거워서 한 점 혈육이 없으니, 자식 없고 친척 없는 우리 신세 선산에 제사 받듦을 누가 하며 죽은 후에 장례는 어이 하리. 유명한 산과 큰 절에 신성한 기도나 올려 아들이든 딸이든 낳게 되면 평생 한을 풀 것이니 가군의 뜻이 어떠하오.”

성참판 하는 말이

“일생 신세 생각하면 자네 말이 당연하나, 빌어서 자식을 낳을진대 자식 없는 사람이 있으리오”

하니 월매 대답하되,

“천하의 큰 성인 공자께서도 이구산에 빌어 나셨고, 정나라의 정자산은 우형산에 빌어 나셨으며, 동방의 우리나라 강산을 이를진대 이름난 산과 큰 절이 없을쏘냐. 경상도 웅천 주천의는 늦도록 자녀 없어 가장 높은 봉우리에 빌었더니 명니라의 천자가 나 계시사 명나라 세상이 밝았으니 우리도 정성이나 드려 보사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은 나무 꺾일쏘냐. 이날부터 목욕재계 깨끗이 하고 이름난 산과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갈 제, 오작교 썩 나서서 좌우 산천 둘러보니 서북의 교룡산은 서북쪽을 막아 있고, 동으로는 장림 수풀 깊은 곳에 선원사는 은은히 보이고 남으로는 지리산이 웅장한데 그 가운데 요천수는 일대 긴 강의 푸른 물결이 되어 동남으로 둘렀으니 좀체 볼 수 없는 아주 좋은 세상이 여기로다.

푸른 수풀 끌어 잡고 계곡물을 밟아 들어가니 지리산이 여기로다. 반야봉 올라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좋은 산과 큰 강이 뚜렷하다. 꼭대기에 제단을 쌓아 제사 음식 차려 놓고 제단 아래 엎드려서 온갖 고생하며 산신님의 덕이신지, 이때는 오월 오일 갑자시라.

한 꿈을 얻으니 상서로운 기운이 반공중에 어리고 다섯 빛이 영롱하더니 선녀 하나 푸른 학을 타고 오는데 머리에 꽃 관이요, 몸에는 울긋불긋한 옷이로다. 월패 소리 쟁쟁하고 손에는 계수나무 한 가지를 들고 대청에 오르며, 두 손을 잡아 높이 들고 허리를 굽히면서 공순히 여쭈오되,

“낙포의 딸이더니 하늘나라의 복숭아를 옥황상제께 바치러 옥경에 갔다가 광한전에서 적송자 만나 충분하지 못한 정회를 풀려 하던 차에, 때늦음이 죄가 되어 옥황상제 크게 화내시고 인간 세상에 내치시매 갈 바를 모르더니 두류산 신령께서 부인 댁으로 지시하기로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하며 품으로 달려들 새 학의 울음소리가 높은 것은 목이 길기 때문이라. 학의 소리에 놀라 깨니 한때의 헛된 꿈이라.

황홀한 정신을 진정하여 가군과 꿈의 일을 이야기하고, 하늘의 도움으로 남자를 낳을까 기다리더니, 과연 그달부터 태기 있어 열 달을 당하매, 하루는 향기 방안에 가득하고 오색구름이 영롱하더니, 혼미한 가운데 아이를 낳으니 옥녀 한 명을 낳았으니 월매의 달이 깊어지도록 바라던 마음 남자는 못 낳았으되 잠깐 동안 풀리는구나.

그 사랑함은 어찌 다 말로 나타내리. 이름을 춘향이라 부르면서 손안에 든 귀한 보석같이 길러내니 효행을 비할 데 없고, 인자함이 기린이라. 칠팔 세 되매 서책에 맛을 붙여 예절에 맞는 몸가짐과 곧은 절개 일삼으니 효행을 오 고을 사람이 칭송하지 아니할 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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