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2/5)

New-Mountain(새뫼) 2020. 7. 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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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대장부 먹은 마음 박대할 일 있을쏘냐

 

이때 이도령은 퇴령 놓기를 기다릴 제,

“방자야.”

“예.”

“퇴령 놓았나 보아라.”

“아직 아니 놓았소.”

조금 있더니 하인 물리라 퇴령 소리 길게 나니,

“좋다 좋다. 옳다 옳다. 방자야. 등롱에 불 밝혀라.”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춘향의 집 건너갈 제 자취 없이 가만가만 걸으면서

“방자야 사또 계시는 방에 불 비친다. 등롱을 옆에 껴라.”

삼문 밖 썩 나서 좁은 길 사이에 달빛이 찬란하고, 꽃 핀 사이에 푸른 버들 몇 번이나 꺾었으며, 닭싸움하는 아이들도 밤에 기생집에 들었으니 지체 말고 어서 가자. 그렁저렁 당도하니 애닯도다, 오늘 밤이 적막한데 여인을 만나는 좋은 때가 이 아니냐. 가소롭다 고기 잡는 사람들은 별천지를 모르던가.

춘향의 집 문 앞에 당도하니 바람의 발길이 끊어져 밤은 깊었는데, 달빛은 삼경이라. 뛰어오른 물고기는 나타났다 숨었고, 대접 같은 금붕어는 임을 보고 반기는 듯 달 아래의 두루미는 흥을 겨워 짝 부른다.

이때 춘향이 칠현금을 비껴 안고 남풍시를 희롱하다가 잠자리에 졸더니 방자 안으로 들어가되, 개가 짖을까 염려하여 자취 없이 가만가만 춘향 방 영창 밑에 가만히 살짝 들어가서,

“이 애, 춘향아 잠들었냐?”

춘향이 깜짝 놀래,

“네 어찌 오냐.”

“도련님이 와 계시다.”

춘향이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울렁울렁 속이 답답하여 부끄럼을 못 이기어 문을 열고 나오더니 건넌방 건너가서 저의 모친 깨우는데,

“애고 어머니. 무슨 잠을 이다지 깊이 주무시오.”

춘향의 모 잠을 깨어,

“아가. 무엇을 달라고 부르느냐?”

“누가 무엇 달래었소.”

“그러면 어찌 불렀느냐?”

엉겁결에 하는 말이,

“도련님이 방자 모시고 오셨다오.”

춘향의 모 문을 열고 방자 불러 묻는 말이

“누가 와야.”

방자 대답하되

“사또 자제 도련님이 와 계시오.”

춘향 어미 그 말 듣고

“향단아.”

“예.”

“뒤 초당의 자리에 등불 조심하여 밝히고 자리를 펴라.”

당부하고 춘향 모가 나오는데, 세상 사람이 다 춘향 모를 일컫더니 과연이로다. 자고로 사람이 외탁을 많이 하는 고로 춘향 같은 딸을 낳았구나.

춘향 모 나오는데 거동을 살펴보니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소탈한 모양이며 단정한 거동이 눈에 띄도록 우뚝하여 두드러지고, 피부가 토실토실하여 복이 많은지라. 수줍고 점잖게 발막을 끌어 나오는데 가만가만 방자 뒤를 따라온다.

이때 도련님이 이리저리 거닐면서 좌우를 돌아보며 지루하게 서 있을 제 방자 나와 여쭈오되

“저기 오는 게 춘향의 모로소이다.”

춘향의 모가 나오더니 두 손을 마주 잡고 예를 표하며 우뚝 서며

“그 새에 도련님 문안이 어떠하오.”

도련님 반만 웃고

“춘향의 어미라지. 평안한가?”

“예 겨우 지내옵니다. 오실 줄 진정 몰라 맞이함이 어리석나이다.”

“그럴 리가 있나.”

“그럴 리가 있나.”

춘향 모 앞을 서서 인도하여 대문 중문 다 지나서 후원을 돌아가니 오래된 별당에 등롱을 밝혔는데, 버들가지 늘어져 불빛을 가린 모양 구슬을 꿴 발이 갈고리에 걸린 듯하고 오른편의 벽오동은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져 학의 꿈을 놀래는 듯, 왼편에 섰는 반송은 맑은 바람이 건듯 불면 늙은 용이 잠기는 듯,

창 앞에 심은 파초는 날씨가 따뜻해지니 봉황의 꼬리처럼 긴 속잎이 빼어나고, 물속의 구슬 같은 어린 연꽃 물 밖에 겨우 떠서 맑은 이슬을 받쳐 있고, 대접 같은 금붕어는 물고기가 용이 되려 하고 때때마다 물결쳐서 출렁 텀벙 굼실 놀 때마다 조롱하고, 새로 나는 연잎은 받을 듯이 벌어지고, 높이 솟아 있는 세 봉우리 석가산은 층층이 쌓였는데 계단 아래의 학 두루미 사람을 보고 놀라 두 죽지를 떡 벌리고 긴 다리로 징검징검 끼룩 뚜르르 소리하며, 계수나무 꽃 아래 삽살개 짖는구나.

그중에 반갑구나. 못 가운데 쌍 오리는 손님 오시노라 둥덩실 떠서 기다리는 모양이요, 처마에 다다르니 그제야 저의 모친 영을 받들어서 비단 창문을 반쯤 열고 나오는데 모양을 살펴보니 뚜렷한 둥글고 밝은 달이 구름 밖에 솟아난 듯 황홀한 저 모양은 측량키 어렵도다. 부끄러이 대청에 내려 천연히 섰는 거동은 사람의 간장을 다 녹인다.

도련님 반만 웃고 춘향더러 묻는 말이

“피곤하지 아니하며 밥이나 잘 먹었냐?”

춘향이 부끄러워 대답하지 못하고 묵묵히 서 있거늘 춘향이 모가 먼저 대청에 올라 도련님을 자리로 모신 후에 차를 들어 권하고 담배 붙여 올리오니, 춘향이 부끄러워 대답지 못하고 묵묵히 서 있거늘, 춘향이 모가 먼저 대청에 올라 도련님을 자리로 모신 후에 차를 들어 권하고 담배 붙여 올리오니, 도련님이 받아 물고 앉았을 제, 도련님 춘향의 집 오실 때는 춘향에게 뜻이 있어 와 계시지 춘향의 집안 살림살이 구경 온 바 아니로되, 도련님 첫 외입이라 밖에서는 무슨 말이 있을 듯하더니 들어가 앉고 보니 별로 할 말이 없고 공연히 숨이 헐떡거려 헛기침이 나며 몸이 오슬오슬 춥고 괴로운 증세가 생기면서 아무리 생각하되 별로 할 말이 없는지라.

방안을 둘러보며 벽 위를 살펴보니 어지간한 살림들이 놓였는데 용장, 봉장, 가께수리 이럭저럭 벌였는데 무슨 그림장도 붙어 있고 그림을 그려 붙였으되 서방 없는 춘향이요, 공부하는 계집아이가 온갖 살림살이와 그림이 왜 있을까만은 춘향 어미가 유명한 기생이라, 그 딸을 주려고 장만한 것이었다.

조선의 유명한 명필 글씨 붙여 있고, 그사이에 붙인 유명한 그림 다 후리쳐 던져두고 월선도란 그림 붙였으되 월선도 제목이 이렇던 것이었다.

 

옥황상제 하늘 위 높은 거처에서 신선들에게 조회 받던 그림,

청년거사 이태백이 황학전에 꿇어 앉아 황정경 읽던 그림,

백옥루 지은 후에 자기 불러올려 상량문 짓던 그림,

칠월 칠석 오작교에 견우직녀 만나는 그림,

광한전 달밝음 밤에 약을 찧던 항아 그림,

 

층층이 붙였으되 광채가 찬란하여 정신이 산란한지라.

또 한곳 바라보니 부춘산 엄자릉은 간의대부 마다 하고 갈매기로 벗을 삼고 원숭이와 학으로 이웃 삼아 양가죽을 떨쳐 입고 가을 동강 칠리탄에 낚시줄 던진 경치를 역력히 그려 있다. 바야흐로 신선의 경지할 이를 만함이라. 군자와 좋은 짝이 놀 데로다.

춘향이 한 조각의 붉은 마음으로 한 지아비를 좇아 섬기려 하려 하고 글 한 수를 지어 책상 위에 붙였으되,

 

봄바람의 대나무는 운치를 띠었으니,

향을 피워 밤늦도록 책을 읽는구나.

기특하다, 이 글 뜻은 목란의 절개로다.

이렇듯 칭찬할 제 춘향 어미 여쭈오되,

 

“귀중하신 도련님이 누추한곳에 욕되게 찾아오셨으니 황공 감격하옵니다.”

도련님 그 말 한마디에 말 구멍이 열리었지.

“그럴 리가 왜 있는가. 우연히 광한루에서 춘향을 잠깐 보고 그리워 애틋하게 보내기로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처럼 취한 마음 오늘 밤에 오는 뜻은 춘향 어미 보러 왔거니와 자네 딸 춘향과 백년 약속을 맺고자 하니 자네의 마음이 어떠한가.”

춘향 어미 여쭈오되

“말씀은 황송하오나 들어보오. 자하골 성참판 영감이 남원 고을 사또를 맡으셨을 때, 소리개를 매로 보고 수청을 들라 하옵기로 원님의 영을 못 어기어 모신 지 석 달 만에 올라가신 후로 뜻밖에 아이를 배어 낳은 게 저것이라.  

그 연유로 글을 올렸더니 젖줄 떨어지면 데려가련다 하시더니, 그 양반이 불행하여 세상을 버리시니 보내질 못하옵고, 저것을 길러낼 제 어려서 잔병조차 그리 많고, 일곱 살에 ≪소학≫ 읽혀 먼저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리게 하고 마음을 온화하고 순하게 함을 낱낱이 가르치니 씨가 있는 자식이라 모든 일에 널리 통하니, 삼강행실 뉘라서 내 딸이라 하리오.

집안 형편이 부족하니 재상집은 당치 않음이요, 사대부는 높고 서인은 낮아 혼인이 늦어가매 밤낮으로 걱정이나, 도련님 말씀은 잠시 춘향과 한평생을 약속한단 말씀이오나, 그런 말씀 말으시고 놀으시다 가옵소서.”

이 말이 참말이 아니라 이도련님 춘향을 얻는다 하니 앞으로 올 일을 몰라 뒤를 눌러 하는 말이었다.

이도령 기가 막혀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은 법이로세. 춘향도 혼인하기 전이요, 나도 장가들기 전이라. 피차 언약이 이러하고, 육례는 못할 망정 양반의 자식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할 리 있나.”

춘향 어미 이 말 듣고

“또 내 말 들으시오. 옛 책에 하였으되 신하 속내를 아는 것은 임금만한 이가 없고, 자식의 속내를 아는 것은 부모만한 이가 없다고 하니, 딸을 아는 것은 어미 아닌가. 내 딸 마음속은 내가 알지. 어려서부터 마음이 깨끗하고 야무져서 뜻이 있어 행여 신세를 그르칠까 의심이요, 한 지아비만을 섬기려 하고 일마다 하는 행실 철석같이 굳은 뜻이 푸른 솔과 푸른 대, 전나무 네 계절을 다투는 듯 뽕밭이 푸른 바다 될지라도 내 딸 마음 변할 손가.

금은이나 오나라 촉나라의 비단이 산처럼 쌓여 있다 해도 받지 아니할 터이요, 백옥 같은 내 딸 마음 맑은 바람인들 미치리오.

다만 옛날 올바른 도리를 본받고자 할 뿐이온데, 도련님은 욕심부려 인연을 맺었다가 장가들기 전에 도련님이 부모 몰래 깊은 사랑 쇠와 돌같이 맺었다가 소문 무서워 버리시면 옥결 같은 내 딸 신세 무늬 좋은 대모, 진주 고운 구슬 구멍노리 깨어진 듯 맑은 강에 놀던 원앙새가 짝 하나를 잃었은들 어이내 딸 같을쏜가. 도련님 속마음 이 말과 같을진대 깊이 헤아려 행하소서.”

도련님 더욱 답답하여

“그는 두 번 염려하지 마소. 내 마음 헤아리니 특별 간절 굳은 마음 가슴 속에 가득하니 분수에 맞게 지킬 의리는 다를망정 저와 내가 평생 기약 맺을 제 전안, 납폐 아니 한들 푸른 바다같이 깊은 마음 춘향 사정 모를쏜가.”

이렇듯이 이같이 말을 하니 청실홍실 육례 갖춰 만난대도 이 위에 더 뾰족할까.

“내 저를 첫 부인같이 여길 테니 부모님 아래라고 염려 말고 장가들기 전이라고 염려 마소. 대장부 먹는 마음 푸대접할 행실 있을쏜가. 허락만 하여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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