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 만남 (2/4)

New-Mountain(새뫼) 2020. 6. 3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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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봄날 흥이 지극하니 오늘 내가 견우로다

 

이때 삼청동에 이한림이라 하는 양반이 있되,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가요 세대명가요 충신의 후예라. 하루는 전하께옵서 충효록을 올려 보시고 충효자를 고르시어 백성을 아끼는 지방의 원님을 맡기실 새 이한림으로 과천 현감에서 금산 군수로 자리를 옮겼다가 남원 부사 임명하시니, 이한림이 임금의 은혜를 사례하여 공손하게 절한 후에 하직하고 행장을 차려 남원부에 도임하여 백성들의 사정을 살펴 잘 다스리시니 사방에 일이 없고 시골의 백성들은 더디 옴을 칭송한다. 태평한 시대에 동요를 듣는구나. 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곡식이 잘되며 백성이 효도하니 요순시절이라.

이때는 어느 때뇨. 놀기 좋은 봄날이라. 호연과 비조 뭇 새들은 풀을 희롱하고 소리로 서로 화답하며 짝을 지어 쌍쌍이 오고 가며 날아들어 온갖 춘정 다투는데, 남쪽 산에 꽃이 피니 북쪽 산도 붉어지고, 천만 갈래 버드나무 가지에 꾀꼬리는 벗 부른다. 나무나무 숲 이루고, 두견 접동 다 지나니 한 해에서 가장 좋은 때이라.

이때 사또 자제 이도령이 나이는 열여섯이요, 풍채는 두목지라. 도량은 너그러운 마음은 큰 바다 같고 지혜 활달하고 문장은 이백이요 글씨는 왕희지라.

하루는 방자 불러 말씀하되

“이 고을 아름다운 곳이 어디메냐? 봄 흥취에 시 짓고 싶은 마음이 넘쳐 흐를 듯하니 뛰어난 경치를 말하여라.”

방자놈 여쭈오되

“글공부하시는 도련님이 좋은 경치 찾아 부질없소.”

이도령 이르는 말이

“너 무식한 말이로다. 예전부터 글 짓는데 재주 있는 이들도 아름다운 강산 구경하기는 풍월을 읊어 글을 짓는 근본이라. 신선도 두루 놀아 세상을 널리 구경함이 어이하여 부당하랴. 사마장경이 남으로 강호에 떠 있다 큰 강을 거스를 제, 미친 듯한 거센 물결과 파도에 음산한 바람이 성내어 부르짖어 예로부터 가르치니, 천지 사이에 만물의 변화가 놀랍고 즐겁고도 고운 것이 글 아닌 게 없느니라. 가장 으뜸인 시인인 이태백은 채석강에 놀았었고 적벽강의 가을 달 아래에 소동파 놀았었고, 심양강 명월에 백낙천 놀았었고 보은 속리산 문장대에 세조대왕 노셨으니 아니 놀든 못하리라.”

이때 방자 도련님 뜻을 받아 사방 경치 말씀하되,

“서울로 이를진대 자하문 밖 내달아 칠성암 청련암 세검정과 평양 연광정 대동루 모란봉, 양양 낙선대, 보은 속리 문장대, 안의 수승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가 어떠한지 모르오나, 전라도로 이를진대 태인 피향정, 무주 한풍루, 전주 한벽루 좋사오나 남원 뛰어난 곳 들어보시오. 동문 밖 나가시면 장림 숲 선원사 좋사옵고, 서문 밖 나가시면 관왕묘는 천고 영웅 엄한 위엄 있는 풍채 어제오늘 같사옵고, 남문 밖 나가시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 좋사옵고 북문 밖 나가시면 푸른 하늘에 깎은 듯이 솟아 있는 연꽃 같은 금빛 봉우리가 남에게 굽히지 않으려는 듯하여 우뚝 섰으니 기암 둥실 교룡산성 좋사오니 처분대로 가사이다.”

도련님 이르는 말씀이

“아! 말로 들어보더라도 광한루 오작교가 뛰어난 경치로다. 구경 가자.”

도련님 거동 보소. 사또 앞에 들어가서 공순히 여쭈오되,

“오늘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하오니 잠깐 나가 시를 읊으며 시운목도 생각하고자 싶으오니 성이나 한 바퀴 돌아 보오이다.”

사또 크게 기뻐하여 허락하시고 말씀하시되,

“남쪽 고을 경치를 구경하고 돌아오되 시제를 생각하라.”

도령 대답,

“아버님의 가르침대로 하오리다.”

물러 나와,

“방자야 나귀 안장 지워라.”

방자 분부 듣고 나귀 안장 지운다. 나귀 안장 지울 제, 붉은 가슴걸이, 자줏빛 고삐, 산호 채찍, 옥안장, 금채찍, 황금굴레, 붉고 푸른 실로 장식한 굴레, 주락상모 덤뿍 달아 층층한 다래, 은엽으로 만든 등자, 호랑이 가죽 안장에 앞뒤 걸이 줄방울을 염불하는 스님이 염주 매달 듯,

“나귀 준비하였소.”

도련님 거동 보소. 옥 같은 얼굴과 신선 같은 풍채, 고운 얼굴, 숱이 많고 치렁치렁하게 땋은 머리 곱게 빗어 밀기름에 잠재워 궁초댕기 누런 물감으로 물들여 맵시 있게 잡아 땋고, 성천 비단으로 지은 진달래빛 저고리, 올이 가는 흰 모시로 지은 상침 바지, 올이 가는 최상급 무명으로 겹버선에 남갑사로 만든 대님 치고, 육사단 겹배자에 밀화단추 달아 입고, 통행전을 무릎 아래 넌지시 매고, 영초단 허리띠, 모초단 둥근 주머니를 당팔사 갖은 매듭 고를 내어 넌지시 매고 쌍문초 긴 동정 중치막에 도포 받쳐, 검은 실로 띠를 가슴에 눌러 매고 육분당혜 끌면서,

“나귀를 붙들어라.”

등자 딛고 선뜻 올라 뒤를 싸고 나오실 제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삼문 밖 나올 적에 금물을 입힌 부채, 호당선으로 햇빛을 가리우고 성 남쪽의 넓은 길에 생기 있게 나갈 제, 수레에 귤이 가득 차던 두목지의 풍체이런가. 음악을 잘못 연주하여 주랑을 돌아보게 함이로다.

 

향기로운 읍내의 거리 봄성 안에 있으니,

뭇 백성과 군자 누군들 사랑하지 않겠는가.

 

광한루 훌쩍 올라 사면을 살펴보니 경치가 매우 좋다. 적성산 아침 늦은 안개 떠 있고, 푸른 나무에 저무는 봄은 버들꽃에 동풍이 둘러 있다.

 

온갖 붉은 누각들은 어지럽게 빛나는데

푸른 가옥과 비단 궁전은 찬란하게 빛나도다.

이는 임고대를 이르는 것이고

 

고운 처마와 서까래가 먼 데서도 빛나도다.

이는 광한루를 이르는 것이라.

 

악양루 고소대와 오나라 초나라의 동남수는 동정호로 흐르고, 연자 서북쪽의 풀 우거진 연못이 뚜렷한데, 또 한곳 바라보니 희고 붉은 꽃이 활짝 핀 중에 앵무 공작 날아들고, 산천 경치 둘러보니 에굽은 반송솔 떡갈잎은 아주 춘풍 못 이기어 흐늘흐늘, 폭포에 흐르는 물 시냇가의 꽃은 뻥긋뻥긋, 가지가 길게 축축 늘어진 키 큰 소나무는 무성하고, 나무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나을 때로다.

계수나무, 자단나무, 모란, 벽도화에 취한 산색은 긴 강 요천에 풍덩실 잠겨 있고, 또 한곳 바라보니 어떠한 한 미인이 봉황새 울음 한가지로 온갖 봄의 정취 못 이기어, 두견화 질끈 꺾어 머리에도 꽂아 보며 함박꽃도 질끈 꺾어 입에 함쑥 물어보고, 곱게 수놓은 비단 적삼 반만 걷고 푸른 산에 맑은 물에 손도 씻고 발도 씻고, 물 머금어 양치질하며 조약돌 덥석 쥐어 버들가지 꾀꼬리를 희롱하니 돌을 던져 꾀꼬리를 날려 보냄이 아니냐.

버들잎도 죽죽 훑어 물에 훨훨 띄워 보고 백설 같은 흰나비 수벌과 암나비는 꽃술 물고 너울너울 춤을 춘다. 황금 같은 꾀꼬리는 숲숲이 날아든다. 광한루 진기한 경치 좋거니와 오작교가 더욱 좋다. 바야흐로 호남의 제일가는 성이로다. 오작교 분명하면 견우직녀 어디 있나. 이런 좋은 경치에 풍월이 없을쏘냐.

도련님이 글 두 귀를 지었으되

 

높고 밝은 오작의 배에

광한루 옥섬돌

감히 묻노니 하늘의 직녀 누구인가.

흥이 지극하니 오늘 내가 바로 견우로다.

 

이때 내아에서 잡술상이 나오거늘 술 한 잔 먹은 후에 통인 방자 물려주고, 취한 흥이 도도하여 담배 피워 입에다 물고 이리저리 거닐 제, 경치 뛰어난 곳에 흥에 겨워 충청도 공주 땅 수영 보련암을 일렀은들 이 곳 경치 당할쏘냐.

붉을 단, 푸를 청, 흰 백, 붉을 홍 고을고을이 붉고 푸른데 버들 장막에서 꾀꼬리가 벗을 부르는 소리는 나의 봄 흥취를 도와 낸다. 노란 벌과 흰 나비, 왕나비는 향기 찾는 몸짓이라. 날아가고 날아오니 봄성의 안이요, 영주 방장 봉래산이 눈 아래에 가까우니 물은 보니 은하수요, 경치는 잠깐 옥경이라. 옥경이 분명하면 월궁 항아 없을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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