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 만남 (4/4)

New-Mountain(새뫼) 2020. 6. 3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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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잘 가거라 오늘 밤에 우리 서로 만나보자

 

 

춘향이가 그제야 못 이기는 체로 겨우 일어나 광한루 건너갈 제 대명전 대들보의 칼새 걸음으로, 양지 마당의 씨암탉걸음으로 백모래 바다 금자라 걸음으로 달 같은 모습 꽃 같은 얼굴로 고운 태도로 느릿느릿 건너갈 새 흐늘흐늘 월나라 서시가 토성애서 배우던 걸음으로 흐늘거려 건너올 제 도련님 난간에 절반만 비껴 서서 부드럽게 바라보니 춘향이가 건너오는데 광한루에 가까운지라.

도련님 좋아라고 자세히 살펴보니 요염하고 정숙하여 달 같은 모습 꽃 같은 얼굴이 세상에 둘이 없음이라. 얼굴이 아름답고 깨끗하니 맑은 강에 노는 학이 눈 속에 비치는 달 같고 붉은 입술과 흰 이를 반쯤 여니 별도 같고 옥도 같다. 연지를 품은 듯, 자줏빛 치마 고운 태도 어린 안개 석양에 비치는 듯, 푸른 치마가 영롱하여 무늬는 은하수 물결 같다. 연꽃 같은 걸음을 단정히 옮겨 꾸밈없이 누각에 올라 부끄러이 서 있거늘,

통인 불러,

“앉으라고 일러라.”

춘향의 고운 태도 단정하게 앉는 거동 자세히 살펴보니 흰 바다 물결 사이로 비 내린 뒤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을 보고 놀라는 듯, 별로 꾸민 일 없이 그대로 나라 제일의 미인이라. 아름다운 얼굴을 상대하니 구름 사이로 내보이는 밝은 달 같고, 붉은 입술을 반쯤 여니 연못에 떠 있는 연꽃 같도다. 신선을 내 몰라도 영주에 놀던 선녀 남원에 귀양오니 월궁에 모시던 선녀 벗 하나를 잃었구나. 네 얼굴, 네 태도는 세상 인물 아니로다.

이때 춘향이 넌짓한 눈빛을 잠깐 들어 이도령을 살펴보니 지금 세상의 호걸이요, 인간 세상의 기인한 남자라. 이마 가운데가 높았으니 젊었을 때 공을 쌓아 이름을 날릴 것이요, 오악이 잘 어울리고 귀하니, 나라를 돕는 충성스러운 신하가 될 것이매 마음에 기쁜 마음으로 사모하여 눈썹을 숙이고 무릎을 단정히 하고 앉을 뿐이로다.

이도령 하는 말이,

“성현도 같은 성끼리는 혼인하지 아니한다 일렀으니, 네 성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이뇨?”

“성은 성가이옵고 나이는 십육 세로소이다.”

이도령 거동 보소.

“허허 그 말 반갑도다. 네 나이 들어보니 나와 동갑 이팔이라. 성을 들어보니 하늘이 정한 인연임이 분명하다. 두 개의 성이 결합하여 좋은 연분 평생 같이 즐겨 보자. 너의 부모 다 살아 계시냐?”

“홀어머니 아래로소이다.”

“몇 형제나 되느냐?”

“올해 육십인 나의 모친 아들 없는 외딸 나 하나요.”

“너도 남의 집 귀한 딸이로다. 하늘이 정하신 연분으로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년의 즐거움을 이뤄 보자.”

춘향이 거동 보소. 팔자의 고운 눈썹을 찡그리며 붉은 입술을 반쯤 열어 가는 목 겨우 열어 고운 목소리로 여쭈오되,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음이요, 열녀의 정절은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 것이라 옛글에 일렀으니 도련님은 귀한 집의 자제요, 소녀는 천한 계집이라. 한 번 정을 맡긴 연후에 버리시면 한 조각 붉은 이내 마음, 빈방에서 혼자 지내며 홀로 누워 우는 한은 이내 신세 내 아니면 누구일꼬? 그런 분부 마옵소서.”

이도령 이른 말이

“네 말을 들어보니 어이 아니 기특하랴. 우리 둘이 인연 맺을 적에 쇠나 돌처럼 굳은 약속 맺으리라. 네 집이 어드메냐?”

춘향이 여쭈옵되

“방자 불러 물으소서.”

이도령 허허 웃고

“내 너더러 묻는 일이 허황하다. 방자야.”

“예.”

“춘향의 집을 네 일러라.”

방자 손을 넌지시 들어 가리키는데

“저기 저 건너 동산은 울창하고, 연못은 푸르른데 기르는 물고기가 바람을 일으키고, 그 가운데 아름다운 꽃과 풀이 흐드러지게 피어 나무나무 앉은 새는 화려함을 자랑하고, 바위 위의 굽은 솔은 맑은 바람이 건듯 부니 늙은 용이 몸을 구부렸다 일으켰다 하는 듯, 문 앞의 버들가지가 있는 듯 없는 듯하고, 들쭉나무, 측백나무 전나무며 그 가운데 은행나무는 암수를 좇아 마주 서고, 초당 문 앞의 오동나무, 대추나무, 깊은 산중 물푸레나무, 포도, 다래, 으름 덩굴, 휘휘친친 감겨 낮은 담장 밖에 우뚝 솟았는데, 소나무 정자가 대숲 두 사이로 은은히 보이는 게 춘향의 집입니다.”

도련님 이른 말이

“담장이 정결하고 솔과 대가 울창하니 여자 절개와 행실을 가히 알 리로다.”

춘향이 일어나며 부끄러이 여쭈오되

“세상 사람들의 인심 고약하니 그만 놀고 가야겠소.”

도련님 그 말을 듣고

“기특하다. 그럴듯한 일이로다. 오늘 밤 퇴령 후에 너의 집에 갈 것이니 푸대접이나 부디 마라.”

춘향이 대답하되

“나는 몰라요.”

“네가 모르면 쓰겠느냐. 잘 가거라. 오늘 밤에 서로 만나 보자.”

누각에서 내려 건너가니 춘향 어미 마주 나와,

“애고 내 딸 다녀오냐. 도련님이 무엇이라 하시더냐?”

“무엇이라 하여요. 조금 앉았다가 가겠노라 일어나니 저녁에 우리 집 오시마 하옵디다.”

“그래, 어찌 대답하였느냐?”

“모른다 하였지요.”

“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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