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병자일기 49

무인년(1638) - 4월

사월 작은달 정사 갑오 초하루 맑았다. 종들이 서로 품앗이를 가 피 가릴 사이가 없다. 4월 2일 맑았다. 요사이도 영감께서 나오신다는 기별을 듣지 못하니 답답하고 민망하다. 오후에 소나기가 오고 광풍과 천둥이 매우 심했다. 집 종 하나와 정수가 벗고개 논을 갈려고 도로 갔다. 어두워질 무렵에 남진사, 박진사, 두림이가 모두들 모이니 든든하고 마음 반가우나 심양 기별을 밤새 바라다가 선문 기별도 없어 두림이가 내려오게 되니 답답하고 민망하다. 남진사를 보니 여산에서 아침저녁으로 함께 있던 일을 다시 보는 듯하다. 4월 3일 간혹 맑았다가 흐렸다. 벗고개 논 열세 마지기를 삶았고, 집의 종 넷과 용수가 갔으나 못다 삶았다. 4월 4일 맑았다. 오늘 마저 둘이 가서 논을 삶고, 나머지 종들은 고기잡이를 가서..

무인년(1638) - 3월

삼월 큰달 병진 갑자 초하루 맑았다. 조별좌의 편지를 지상이가 가져오니, 부안에서 청주로 왔다고 한다. 의봉이와 애남이가 여산에서 심양으로 보낼 종이를 맞추었더니 그것을 가지고 왔다. 그곳 편지를 모두 보게 되니 반갑다. 삼등댁도 상주로 가셨다 한다. 3월 2일 맑았다. 흙땅 논 열세 마지기를 정수와 소 한 마리, 사람 열한 명이 갈았다. 저녁에 홍판사 댁의 사람이 서울 갔다 오면서 심양에서 정월 스무엿샛날 하신 편지도 오고, 목수찬의 편지를 보니 영감께서 나오시는 것은, 윗전께서 나이도 많고 공로도 많으며 수릉관도 지냈으니 남 아무개를 먼저 나오게 하라고 전교하셨기 때문이라고 하니, 천은이 망극하고 망극하다. 이제야 체했던 것이 시원하니 온 집안 경사를 다 이르랴. 3월 3일 차례 지내고 천남이가 월탄..

무인년(1638) - 2월

이월 을미 2월 1일 초하루 충주의 종들이 반정까지 마중을 나왔다. 장남이의 집에서 잤다. 2월 2일 비가 왔다. 정수 어미의 집에 오니 집도 무던하고 종의 집에 오니 편하다. 홍정 댁에서 술 한 병을 보내었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종이라는 것이 우연하지 않다. 2월 3일 맑았다. 여산 종들 계집종과 사내종을 합해서 아홉을 데리고 오다가 반석 오는 길에서 다 보내고, 이른동이, 수복이, 수길이는 저희 말을 두 마리 가져왔기 때문에 충주에 와서 돌아갔다. 영월 사람이 소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두 바리의 양식과 말 먹이를 갖추어주니, 어디로 가나 난리 중이지마는, 이상하게도 우리에게는 먹을 사람이나 오가는 사람들이 모여드니 이상한 일이다. 천남이가 홍판사를 만나보러 갔다. 2월 4일 맑았다. 오장이 서울로..

무인년(1638) - 1월

원월 큰달 갑인 을축 초하루 맑았다. 새해를 맞으니 마음이 더욱 망극하다. 심양에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집을 떠나신 지 벌써 삼 년이 되니 이 마음이 어떠하랴. 요사이는 창증도 심하고 음식도 일절 먹지를 못하니, 기력은 점점 쇠하고 잠까지 자지 못하고 지내니, 꿈에도 서로 뵈옵지 못한다. 또 들으니 남쪽의 왜적 소식이 좋지 못하다 하니 앞일이 어찌 될 줄을 알지 못하여 그지없는 회포로다. 이참의와 이진규 씨가 와보시고 조용히 말씀하시다가 가셨다. 1월 2일 맑았다. 아래 형님께서 오라고 하시기에 갔더니, 모두들 모였다. 어두워질 무렵에 올라왔다. 1월 3일 맑았다. 형님과 진사댁이 와 계시다가 저물 무렵 가셨다. 송서방과 안서방댁이 음식을 하여 와 다녀갔다. 1월 4일 맑았다. 1월 5일 비가 왔다. ..

정축년(1637) - 12월

납월 큰달 계축 을미 초하루 맑았다. 양어머님 기제사를 지냈다. 맏생원과 진사가 제사에 참여하니 든든하나 제관도 없으니 더욱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언짢다. 이진규가 서울 가서 한 편지에 참의는 26, 27일께 서울로 들어오신다고 하였다. 이날 일식을 했다. 윤좌랑 댁에서 떡과 술, 안주를 갖추어서 보내시니 마침 부안 조진사가 와 계시다가 대답하였다. 기쁘다. 이날 밤에 눈이 많이 오고 바람도 크게 불었다. 12월 2일 아침에 맑고 추웠다. 윤좌랑댁이 와 계시다가 저녁때에 가셨다. 영감의 편지가 이참의 행차보다 먼저 왔다. 이도사댁도 와 계시다 밤에야 가셨다. 이참의 댁 사람이 서울 갔다가, 심양에서 시월 초나흘날 선전관 행차에 하신 편지를 가져왔다. 12월 3일 맑고 추웠다. 조진사가 청주로 갔다. 밥 ..

정축년(1637) - 11월

동짓달 큰달 을축 초하루 맑았다. 김포의 남서방이 밥 먹은 뒤에 갔다. 11월 2일 맑았다. 사곡 어머님 생신 다례를 형님 댁에 가 지내고, 이어서 형님댁에서 중명 씨 생일이라고 삼등댁과 다 모여서 약주를 먹었다. 수야가 금산 갔더니 금산에서 고리, 키, 장 두 말, 꿀 두 되, 포육 두 접, 말린 꿩 고기 세 마리를 보내셨다. 여러 번째니 비록 내 사촌님이시나 어려워서 동지에 쓸 술만 빚어 심부름꾼에 보내시고, 간장까지 지워 보내시니, 내 사촌님이시니 어려운 줄을 깨닫지 못하겠다. 11월 3일 종일 비가 내리고 밤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11월 4일 맑았다. 꿈에 문밖 어머니 뵈옵고, 영감도 계속하여 보이니 나오시는가 바라도다. 11월 5일 흐렸다. 만 리 밖에 가 계신데도 꿈마다 모여 보이니 내 정..

정축년(1637) - 10월

시월 큰달 을미 초하루 흐렸다. 10월 2,3일 맑았다. 별좌의 제사를 지내니 나의 설움이야 끝이 없으니,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리. 제사를 지낼 사람도 없어서 남진사와 조창하가 제사에 참례하고, 신주를 보니 숨이 막히는 듯하고 정신이 아득하기만 하니, 세월이라 가나 어느 때 어느 날에나 잊을까. 어여쁘던 얼굴이 생생하여 그리운 일만 생각하면 간담이 쪼개지는 듯, 베어지는 듯, 아이고, 꿈에나 나타나 보이라 하고 경계하며 눈물을 흘리며 지내나, 한번 꿈속에도 보이지를 않으니 그리워라. 저인들 혼백이 있으면 늙은 어미를 아니 생각하랴마는, 이승과 저승이 다른지라 그런가 하여 더욱 설워하노라. 벌써 오 년이 장차 되어가니 흐르는 세월이 누구를 위하여 머물꼬. 10월 4일 흐렸다. 꿈에 영감을 보았다. 또..

정축년(1637) - 9월

구월 작은달 병인 초하루 맑았다. 9월 2,3,4일 맑았다. 홍진사가 김제에서 와서 아침 식사 후에 갔다. 이진규 씨가 송생원 댁 행차를 모시고 왔다고 한다. 목래선이 급제하였다 하고, 관주인이 오는 길에 심양에서 7월 25일에 하신 편지를 가지고 왔다. 9월 5일 맑았다. 조엄 오라버님이 홍산으로부터 오시니 반갑기를 다 이르랴. 둘이 울다가 관판을 내러 무주로 가신다고 하면서 그날 가셨다. 쌀 두 말, 민어 한 마리를 가져다 주셨다. 9월 6일 맑았다. 오늘이 나의 대기일이라 끝없는 정만 자꾸 생각하노라. 밤중에 천둥 벼락을 하더니 비가 왔다. 조창우가 서울을 다녀서 이리로 오니, 난리 후에 다들 무사하여 만나보니 아무런 일이 없고, 조상들 덕분으로 이런가, 매우 다행한 일이로다. 밤이 깊도록 말을 하..

정축년(1637) - 8월

팔월 큰달 초하루 비가 왔다. 8월 2일 맑았다. 8월 3,4일 흐렸다. 진사가 계성에 갔다 다녀왔는데, 한쪽에서 귀신 소동이 다 진동하더라 한다. 8월 5,6일 가끔 비 오고, 가끔 맑았다. 목감역 댁이 서울로 가셨다. 8월 7일 맑았다. 추석 제사도 지나고 심양 갈 일도 듣고 보려고 천남이가 서울로 갔다. 임천 생원도 갔다. 조별좌와 조진사가 부안에서 와서 점심 후에 조진사는 가고 별좌는 남았다. 남원의 정비장이 왔다. 8월 8일 맑았다. 별좌가 청주로 갔다. 이날 귀생이가 곽란하였다. 8월 9일 맑았다. 귀생이가 죽으니 그런 놀라운 일이 없다. 무명 한 필을 줬다. 8월 10일 충이가 서울에서 왔다. 8월 11일 흐렸다. 8월 12,13,14일 가끔 비가 오고 맑았다. 정수와 장남이가 충주에서 왔다..

정축년(1637) - 7월

칠월 작은달 정묘 초하루 맑았다. 7월 2일 기송이가 남원으로 갔다. 보령의 김생원이 왔다. 난리 후에 만나게 되니 반갑기가 그지없다. 7월 3일 맑았다. 임천 나리께서 와보고 가셨다. 두림이가 회덕에 다녀왔다. 심양에서 이참의가 지난 달 12일에 보낸 편지는 왔으나, 우리 편지는 안 왔으니 답답하고 갑갑하다. 7월 4,5일 가끔 맑고 소나기가 왔다. 7월 5일 흐렸다. 7월 6일 양조모 기제사를 지냈고, 김생원이 보령으로 갔다. 7월 7일 비가 왔다 7월 8일 흐렸다. 7월 9일 아침에 흐렸다가 늦게야 개었다. 7월 10,11,12일 맑았다. 이날 밤에 소나기가 왔다. 7월 13일 비가 왔다. 애남이가 심양 갔다가 내려오니, 자세한 기별을 듣고 영감의 편지를 보니, 기운이 그만하여 계시다고 하니 천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