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신채효성두본 춘향가 18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V. 치죄와 해로 (3/3)

다. 가마 타고 어사또가 오셨으니, 백년해로 뉘라 아니 부러워하리. 각 방 하인 달려들어 어사또를 모실 적에 어사또의 거동 보소. 입으셨던 그 복색에 청목 부채 코 가리고 남여 위에 높이 앉아 동헌으로 들어와서 자리에 취한 연후에 각 육방 예를 그만두고 수형리를 불러들여, “네 고을 옥 죄인이 몇 명이나 갇혔느냐?” “열한 명이외다.” “하나도 빠짐없이 이리 다 올려라.” 옥쇄장이가 옥의 자물쇠 들고 급급히 내려가서 죄인 모두 올릴 적에, 춘향이는 아픈 다리 큰 칼 쓰고 올 수 없어, 상단의 어깨 짚고 발걸음을 간신히 떼어 몇 걸음 못 가서 쉬어가며 올라올 제, 문간의 재촉 소리 벽력이 진동한다. 열한 죄인 한가지로 관청의 뜰에 늘어 엎드리니 어사또 분부하되, “그중에 계집 죄인 한편으로 내앉히라.” 수..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V. 치죄와 해로 (2/3)

나.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았구나, 암행어사 출도야. 다담상 물인 후에 어사또는 출두하자 차비를 차리는데, 본관은 봄철의 꿩이 스스로 울 듯 손수 재촉 더 우스워, 좌상을 돌아보며, “우리 오늘 이 모임이 좋은 경치 이름난 누각에서 서로 만나 잘난 벗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높은 벗이 집안에 가득하니 열흘 겨를은 못 얻어도 반나절은 한가하게 되었으니, 시를 읊으며 술을 마시며 좋은 재미 시 짓기 하나 하옵시다.” 모인 사람들이 다 좋다 하니 본관이 당지 두루마리에 운자를 써 놓는데, 어사또 짓기 좋게 비위를 똑 맞추어 기름 고 자, 높을 고 자. 기생이 두루마리 들고 자리 차례로 돌려 뵐 제, 운봉 영장 앞에 오니 어사또가 손 내밀어 두루마리 축을 쑥 빼시며 운봉에게 하는 말이, “붓과 먹을 청합..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V. 치죄와 해로 (1/3)

V. 치죄와 해로 가. 사람 입에 상하 있나, 이제 곧 자리에다 똥쌀 놈이 몇 놈일까. 그 이튿날 본관 사또 생신 잔치 차리는데, 갖춘 것이 매우 대단하여 광한루 붉은 난간에 색칠한 누각이 구름 속에 솟았는데, 처마에 흰 베로 아름다운 휘장을 하늘에 닿게 치고, 사면의 두른 것은 물색 고운 푸른 휘장, 대청에 펴 놓은 것 꽃무늬 보료, 꽃 가득한 방석, 학춤과 장수들의 쟁강춤과 용알북춤, 배따라기, 풍류하는 갖가지 악기 모두 준비하였으며, 기생, 소리꾼, 광대, 악사 제일가는 이만 골라 뽑아 사면으로 벌여 세고, 각읍 수령 모여들 제 호기가 대단하다. 영장을 겸한 운봉 현감, 승지 당상, 순천 부사, 나이 많은 곡성 현감, 무주, 용담, 진안, 장수, 광양, 낙안, 흥양 현감, 장흥, 보성, 강진이며, ..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V. 귀향과 재회 (3/3)

다. 서방님 급제한 뒤 남원 고을 떠나려니 둘이 밤낮 호강하세. 한참을 치하하니 사또가 할 말 없어 듣기만 하는구나. 다른 가객 몽중가는 옥중에서 어사 보고 요사한 말을 한다는데, 이 사설 짓는 이는 신행길을 차렸으니 앉으신 분들 처분 어떠할지. 춘향이가 조금 있다 수작을 다시 내어, “서방님 들으셨소? 내일이 본관 생신 잔치를 펼치어서 각읍 수령 모은다니 노모와 한가지로 내 집으로 돌아가서 둘이 덮던 금침 속에 평안히 주무신 후, 서방님께 드리려고 옷 한 벌 새로 하여 옥상자 속에 넣었으니, 저 옷 벗고 그 옷 입고 잔치 굿 보시다가 대청 위로 올라가서 모여드신 수령님과 수작을 하였으면 좌상에 모인 관장댁 모를 이 뉘 있겠소. 천첩의 전후 내력 한 조각을 말한다면 사리 밝은 관장님네 본관 사또를 꾸짖고..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V. 귀향과 재회 (2/3)

나. 가세 탕진 허망한 신세로다, 그리해도 곧이 듣지 않을 터요. 날새도록 탄식할 제 이때에 소경 하나 옥 밖으로 지나는데 서울 장님 같더라면 문일수 하련마는, 시골 사는 소경이라 마구 팔아먹어, “무꾸리들 하오.” 춘향이가 앉아 듣다, “여보시오. 옥사쟁이. 간밤 꿈이 매우 흉하니 해몽이나 하여 보게 저 봉사를 불러주오.” 옥사쟁이 이 봉사 불러, “저기 가는 저 봉사.” “거 누구가 나를 찾노?” “옥에 갇힌 춘향이가 해몽을 하려 하니 옥방으로 들어갑소.” 소경이 반겨 듣고 더듬더듬 오는구나. 춘향이 급히 나와 옥문 안에 비껴 서서, “이리오오, 이리오.” 저 소경 거동 보소. 석화 굴덩이 같은 눈을 번뜩번뜩 번뜩이며 불똥 디딘 걸음으로, “어디로 가, 어디로 가?” 소리만 힘들여 하며 건정건정 들어..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V. 귀향과 재회 (1/3)

IV. 귀향과 재회 가. 거친 풀만 가득한 춘향 집에 춘향 어미 지성으로 비는구나. 사잇길로 흩어 걸어 광한루에 올라가니 여러 겹의 정자 층층 나란히 앞에 있구나. 집은 아니 변했으나 지난 시간 사람 일은 다시 오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것마다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나. 나귀 매던 버드나무 안개는 옛날처럼 십 리 제방을 둘러싸고, 그네 뛰며 놀던 꽃숲에서 복숭아꽃은 예전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구나. 철 따라 나는 문물과 아름다운 경치는 이러한데, 마음에 품은 사람은 어디 갔노. 시름없이 바라보며 방황하시다가 황혼의 때를 틈타 춘향 집을 찾아가니, 부서진 대나무 사립은 바람 없이 닫히었고, 사람 자취 없는 뜰에 거친 풀만 가득하다. 꽃 병풍 뒤에 은신하여 동정을 살펴보니 후원에서 사람 소리 은은히 들리..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II. 고난과 기다림 (4/4)

라. 춘향 편지 받아 보고 백성 말을 들어보니 본관은 명관이라 한 모퉁이 돌아가니 나이 많은 이십 총각 아이 초록 대님 발싸개에 육승포 온골로 전대하여 허리를 잡아매고 윤노리나무 지팡이를 한 손으로 끌면서 탄탄대로 넓은 곳에 갈 지 자로 흩걸으며 시절 노래 부르는데, “어이 가리, 어이가리. 오늘 가다 어디 자고 내일 가다 어디 잘꼬. 유황숙이 단계 뛰던 적로마 가졌으면 이제 한양 가련마는, 조그마한 이 다리로 몇 밤 자고 한양 가리. 어허 어허.” 한참 이리 올라갈 제 어사또가 찌꺽 닿아, “이애, 너 어디 있나?” “남원 읍내 사옵니다.” “무슨 일로 어디 가노?” “서울 삼청동 구관댁에 가오.” “그 댁에 어찌 가노?” “구관 자제 나이 어린 첩 춘향 편지 가지고 가옵니다.” “이아, 날 잘 만났다..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II. 고난과 기다림 (3/4)

다. 암행 어사 제수 받아 남원 고을 가려는데 춘향이가 죽는다오. 하룻밤 슬퍼하며 지낼 적에, 이때에 도령님은 본댁에 올라가서 재상댁과 혼인하고 글공부만 힘쓰더니, 진풍연 잔치 끝에 경과를 주시거늘, 문방사우 가지고서 춘당대에 들어가니 ‘요임금이 다스린 오십 년’이란 글제를 걸었거늘, 봉황을 토하고 말에 기대어 쓰는 글재주, 용은 구름을 타고 뱀이 안개를 노니는 필법을 마치어 첫 번째로 글을 지어 가장 먼저 글장을 바치었으니, 임금의 눈에 기쁨이 넘쳐 장원 급제 곧바로 한림 벼슬 홍패 교지 타 가지고 돈화문 밖 썩 나서니, 입은 것은 청삼이요, 꽂은 것은 사화로다. 준마에 은안장 얹고, 화동이 옥피리 불며, 청개와 홍개를 별배와 추종이 들고, 장악원 풍류 속에 호기 있게 문에 도착하여 부모가 맞이하고 사..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II. 고난과 기다림 (2/4)

나. 이 몸이 죽기로야 하겠소만, 임 그리워 애고애고 설운지고. 이때의 춘향 어미 상단을 데리고서 냇가로 빨래 갔다 이 소식을 늦게 듣고, 아홉 번 구르고 열 번 거꾸러지며 급히 오니, 춘향이가 몹시 매를 맞고 벌써 하옥하였는데 뻣뻣한 송장이라. 우르르 달려들어 춘향의 가는 목을 칼머리 앙구어서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낯을 한데 대고 문지르며 통곡한다. “애고 내 딸 죽었구나. 눈을 떠라, 눈을 떠라. 네 어미 내가 왔다.” 가슴을 내려 씻고, 입으로 코를 빨며 상단을 아래 앉아 저의 아씨 상한 다리 살손으로 주무르고 청심환, 소합환과 소주, 아이 오줌, 생강즙 등등을 입에다 전짓대 대고 무수히 흘려 넣으니 수식경 지낸 후에 춘향이 숨이 튼다. “후유.” 일성 긴 한숨에 감은 눈을 겨우 뜨니, 노모와 상..

(판소리)신재효성두본 춘향가 - III. 고난과 기다림 (1/4)

III. 고난과 기다림 가. 기생이 수절한다니 우습구나, 사또도 두 임금을 섬기려오. 춘향이 여쭈오되, “소녀의 먹은 마음 사또님과 다르오니 도령님이 믿음 없어 설령 다시 안 찾으면 반첩여의 본을 받아 옥창 앞에 반딧불이 비치며 지나갈 제, 가을밤에 비단 휘장 지키다가 이 몸이 죽거든 황릉묘를 찾아가서 두 왕비의 혼령 모시옵고, 얼룩 반죽 가지에 저문 비와 창오산 밝은 달에 놀아 볼까 하옵는데, 다시 혼인하여 수절하란 분부 시행할 수 없나이다.” 사또가 도임 초에 춘향 행실 모르고서 처음에는 불렀으나, 하는 말이 이러하니 기특하다 칭찬하고 그만 내어 보냈으면 관아나 마을이 무사할 것인데, 생긴 것이 하 예쁘니 욕심이 잔뜩 나서 어린 계집아이라고 얼러 보면 혹시 될까 절 자를 가지고서 한 번 잔뜩 에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