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병자일기 49

정축년(1637) - 6월

유월 작은달 무술 초하루 맑았다. 6월 2일 맑았다. 이사인 댁에 사람이 가거늘, 심양 갈 담배 여섯 덩이와 편지를 보냈다. 6월 3,4일 맑았다. 장에 가서 보리 다섯 필을 팔았다. 6월 5일 흐렸다. 천남이는 남원으로, 의봉이는 함양으로 갔다. 목경주댁이 남원에서 서울로 가셨다. 6월 6일 맑았다. 윤좌랑의 별실이 다녀갔다. 6월 7일 꿈에 영감을 뵈었다. 가져가신 거울을 서로 보며 반기니 쉽게 나오시는 일이로다 하고 혼자 해몽을 하여 본다. 6월 8,9일 맑았다. 서학골 댁이 청주로 가시니 난추가 하룻길까지 모시고 갔다. 저녁에 의주 댁에 내려갔다. 6월 10일 맑았다. 목지평의 편지가 서울에서 남원으로 가는 사람에게 오니, 사신 앞의 선래에 5월 20일에 보낸 이참의의 편지를 보고 대강의 문안은 ..

정축년(1637) - 5월

오월 큰달 5월 초하루 비가 많이 왔다. 5월 2,3일 맑았다. 조별좌가 상주에 갔다 다녀서 이리로 왔다. 5월 4일 맑았다. 별좌가 갔다. 5월 단오일 맑았다. 하도 섭섭하여 술과 과일과 떡을 하여 차례를 지냈다. 형님, 아우님, 젊으신 이들이 다 와서 모두 다녀갔다. 5월 6,7일 맑았다. 의주 댁 형님이 오라고 하셔서 가 뵈었다. 5월 9일 흐렸다. 이날 거처로 왔다. 꿈에 영감을 뵈오니 하도 야위어 보이시니, 염려하며 멀리 생각하시는 정이 그지없어 한다. 5월 10일 가끔 맑고 가끔 흐렸다. 맏생원과 진사가 서울 갔다가 다녀오시니, 심양 교체한다는 말이 거짓말이더라 하니, 어느 달 어느 날을 정하여 기다릴까. 광주의 제사는 무사히 지내고 오셨다. 5월 11,12일 종일 비가 왔다. 이날 밤에는 큰..

정축년(1637) - 윤4월

윤사월 기해 초하루 맑았다. 윤4월 2일 맑았다. 윤4월 3일 비가 왔다. 윤4월 4일 맑았다. 의주 댁에 갔다가 다녀왔다. 이산의 눈솔이가 공목 두 필과 떡을 하여 왔다. 그래도 부리던 종이니 다르다. 윤4월 5일 맑았다. 장생원께서 조기 한 뭇과 마늘을 보내었다. 전라병사 오는 데 이좌랑이 문안을 잊지 말고 전해달라고 하였다. 윤4월 6일 일봉이가 천남이를 데리러 남원으로 갔다. 신평 유생원과 오라버님이 오시니 반갑다. 윤4월 7일 새문 밖의 사촌님이 한산에 피란하여 와 계시나가 금산에서 모셔가는데, 길이 멀건마는 날 보러 들어오시니 반갑고, 한서방 일 때문에 하도 슬퍼하시니 그지없고, 의주댁 형님의 집안사람으로 친척이시고 한서방의 삼촌이시니, 우리 형제와 이좌랑댁이 다 어울려 의주 댁에 다녀왔다. ..

정축년(1637) - 4월

사월 작은달 을사 경자 초하루 맑았다. 남진사댁이 계성에서 오시니, 그 사이에 떠났다가 만나니 반갑다. 저녁 먹은 후에 닭잣골로 넘어가셨다. 4월 2일 맑았다. 이진규가 넘어와 보고 갔다. 남감찰이 진위로 간다고 다녀가시다. 박진사와 일봉이가 서울로 가니, 심양으로 보낼 모시 철릭, 모시 겹옷, 홑옷, 겹바지와 적삼, 속옷, 누비 베오라기, 버선을 보자기에 싸고, 후복이의 겹옷과 적삼을 하여 가지고 갔다. 4월 3일 맑았다. 이열 씨가 임천으로 가는 길에 다녀가셨다. 진사와 두륙이와 중소와 두림이가 앞 내에서 천렵한다고 모였다. 4월 4일 맑았다. 이보덕 행차에 갔던 종 회배가 돌아왔기에 평안히 가셨다는 기별을 듣고, 남생원에게 하신 편지와 종들에게 보낸 패자를 하셔서, ‘일가 행차 가는 곳에 곡식들을 ..

정축년(1637) - 3월

삼월 큰달 갑진 경자 초하루 이날 여산의 종 후명이, 수길이, 귀생이가 말 두 마리를 가져왔다. 3월 6일 보령의 영문이가 왔는데 주서댁이 입던 저고리하고 속옷 지어 청어와 감장을 하여 보내었다. 3월 8일 진사댁이 계성에서 해산하셨다 한다. 3월 9일 조별좌가 부안에 피란 가 있다가 우리가 게 간 기별 듣고 찾아오니 반가움을 정하지 못하리라. 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지 못하다가 만나보니 그지없는 정회를 다 이르랴. 충주로 가려 하니, 여러 날 길을 가기도 민망하고, 아기네만 데리고 어찌할까 걱정이고, 가도 게서 초대도 없으면 그것도 민망하고, 혼자 가서 견디어 낼 일도 아득하고, 의주 댁 형님이 여산에 계신다고 하니 보덕의 기별 올 적에 함께 가 지내려 했다. 3월 11일 형님은 행차하고 그곳을 떠..

정축년(1637) - 2월

이월 작은달 계묘 신미 초하루 다 기록하지 못하여 생각나는 족족 소일로 적노라. 2월 2일 판관댁이 해산하시다. 이때 섬 가운데에서 망극 망극하여 애끊는 때라 다 기록하랴. 2월 10일 밀산군 댁의 자제가 남한산성으로 가신다고 하는데 그 죽고 살기 헤아릴 수 있으랴. 천남이를 딸려 서울로 열흘날에 보내니 용인까지 올라가다 길에서 최○○를 만나보니, 영감은 동궁을 모시고 중신으로 오랑캐 땅에 가셨다는 기별을 듣고 도로 내려왔다. 2월 17일 새벽에 배가 건너 들어오는데 온 집안사람들이 통곡할 뿐이니 그 망극하기 어떠할꼬. 즉시 짐을 차렸다. 2월 18일 밀산군 댁이 행차하여 배로 떠나 소허섬에 오니 유시가 되었더라. 조울산의 부음을 어제 듣고 그런 일이 없어 하는데 판관댁이 발상하고 나왔다. 2월 19일 ..

정축년(1637) - 1월

정축 정월 큰달 임인 1월 초하루 흐렸다. 1월 2일 맑았다. 판관이 덕산에서 오셨다. 새해를 맞으니 망극하고 숨 막히는 심정을 다 말하랴. 1월 3,4일 맑았다. 판관댁이 오셨다. 한 마을에 있다. 1월 5일 흐렸다. 1월 6일 중명이가 임천에서 오니 반갑기가 어떠할까. 신창에서 오던 날에 새술막이라고 하는 곳에서 머물려 하였더니, 청배에 살던 목경주의 부인이 그 집에서 주무시고, 아침에 남원으로 가신다고 막 떠나셨다고 하고, 그 집안사람 둘과 계집종 하나가 발이 아파서 떨어졌다가 그 뒤를 따라간다고 하기에, 붓을 모지라진 것 얻어 가까스로 편지를 써서 여산을 갈 제 전하라 하고, 우리 행차가 당진으로 가노라 하였더니, 임천 생원이 알고 찾아온 것이다. 여산의 종 후명이와 수길이도 왔더라. 1월 7,8..

병자년(1636) - 12월

병자년(丙子年) - 1636 십이월 날짜 미상 미숫가루나 풀어 먹으려고 하였는데 판관 댁의 종을 만나 함양댁이 농소에 와 계신다 하거늘, 사람을 보냈더니 판관댁 나와 계시거늘, 함께 그 마을에 들어가 함양댁 종의 집에서 잠을 잤다. 12월 16일 판관댁 행차와 세 집이 일행이 되어 고족골종의 집에 가니 신시쯤 되더니, 판관댁은 용인으로, 가시고 우리 두 집 행차는 이틀 묵어 김포에 간 귀중한 짐과 글월이나 가져오려 하며, 근처의 곡식을 모아 양식이나 찧어서 길을 출발하려고 하였더니, 저물 때 일봉이가 남한산성으로부터 나오면서 영감의 편지를 가져와 기별하시되,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짐 나르기는 생각지도 마오. 밤낮 가리지 말고 청풍으로 가라.’ 고 하시거늘, 쉬고 있던 대복이에게 말을 거두게 하고, 선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