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병자일기

정축년(1637) - 7월

New-Mountain(새뫼) 2022. 2. 28. 08:34
728x90

칠월 작은달

 

정묘 초하루

맑았다.

 

7월 2일

기송이가 남원으로 갔다.

보령의 김생원이 왔다. 난리 후에 만나게 되니 반갑기가 그지없다.

 

7월 3일

맑았다.

임천 나리께서 와보고 가셨다.

두림이가 회덕에 다녀왔다.

심양에서 이참의가 지난 달 12일에 보낸 편지는 왔으나, 우리 편지는 안 왔으니 답답하고 갑갑하다.

 

7월 4,5일

가끔 맑고 소나기가 왔다.

 

7월 5일

흐렸다.

 

7월 6일

양조모 기제사를 지냈고, 김생원이 보령으로 갔다.

 

7월 7일

비가 왔다

 

7월 8일

흐렸다.

 

7월 9일

아침에 흐렸다가 늦게야 개었다.

 

7월 10,11,12일

맑았다. 이날 밤에 소나기가 왔다.

 

7월 13일

비가 왔다.

애남이가 심양 갔다가 내려오니, 자세한 기별을 듣고 영감의 편지를 보니, 기운이 그만하여 계시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나, 이 가슴에 한 조각 걸린 것은 언제나 풀어질꼬.

 

7월 14일

아침에 안개가 끼었다.

 

7월 15일

맑았다.

의주 댁에 갔다가 저녁에 왔다.

 

7월 16,17일

가끔 흐리고 비가 왔다.

애남이가 서울로 갔다. 심양으로 보낼 포육 두 접, 전복 네 꼬치, 민어 한 마리, 조기 한 뭇, 양말외니, 금은화, 차거리를 봉하여 최명길 행차가 간다고 하기에 맞추어 보내느라고 이날 보냈다.

저번에 주인 원님께서 백미 네 말, 장 두 말, 청어젓 한 두름을 처음으로 보내었다. 그리도 어찌 생각하는가?

 

7월 18일

맑았다.

 

7월 19일

흐렸다.

양증조모 기제사를 지냈다.

서울로 삼실을 실어 축이와 충이와 의봉이가 세 바리에 스물세 필을 받아 왔다.

 

7월 20일

아침에 안개가 끼었다가 늦게야 개었다.

이열 씨가 와 다녀갔다.

 

7월 21,22일

흐리다 맑다 하였다.

 

7월 23일

맑았다.

감찰댁의 부음을 들으니 가엽고 불쌍하다. 그 집의 형편을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없다. 20일에 상이 났다고 한다.

 

7월 24일

성문 밖 조별좌 댁 할머니 기제사 지냈다.

 

7월 25일

비가 왔다.

이날 밤에 배가 아파 곽란 기운이 있었다.

 

7월 26,27일

종일 누워 지냈다.

 

7월 28일

맑았다.

또 허리 않기를 겸하여 종일 누워 지냈다. 한 증세가 나타나면 온갖 병이 다 나니 병든 짐승에 파리 모이기라는 말이 진실로 옳다.

초경쯤 되어서 귀신 소동으로 고을이 온통 소란하니 허무한 일이로되, 고을로부터 대포 소리와 두드리는 소리가 한 각이나 계속되고, 온 마을 사람이 소동하여 들어 치니, 밤이 새도록 두렵고 무서우나 자취가 없는 일이로되, 마음에 놀라우니 어찌 된 시절이기에 가지가지의 변고가 나는가 하노라.

종들을 다 모아서 밤을 새우니 태평한 시절에도 이런 변란이 있었던가?

 

7월 29일

맑았다.

여주 며느리의 생일 다례를 지내고, 젊은 사람들이 먼저 죽어서 나로 하여금 이런 일을 보게 하는가. 이 늙은 몸이 설워하게 하는가.

영감을 집에 모시고 있을 적에는 슬픈 기색도 보이지 않고 지냈더니, 만리 밖 다른 나라에 이런 시절을 만나 들여보내게 되었으니, 이 늙고 병든 몸이 외로이 있어 밤낮으로 속을 태우나, 실낱같은 인생이 견디며 지내는데, 천남이를 심양으로 보내고 나면 그 후에는 더욱이 어찌 견딜까.

제 아내를 매일 밤이 깊도록 데리고 지내니 이 사람들 아니면 어찌할까.

날마다 진사와 맏생원이 낮이나 아침이나 저녁이나 와서 말하다가 가니 한 집들 같으나, 문왕도 매일 세 번 예를 갖추었다고 하는데 자네들은 그보다도 더하니 내 고마워라 이르노라.

 
 
728x90

'고전총람(산문) > 병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축년(1637) - 9월  (0) 2022.02.28
정축년(1637) - 8월  (0) 2022.02.28
정축년(1637) - 6월  (0) 2022.02.28
정축년(1637) - 5월  (0) 2022.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