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병자일기

무인년(1638) - 1월

New-Mountain(새뫼) 2022. 3. 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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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월 큰달 갑인

 

을축 초하루

맑았다.

새해를 맞으니 마음이 더욱 망극하다. 심양에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집을 떠나신 지 벌써 삼 년이 되니 이 마음이 어떠하랴.

요사이는 창증도 심하고 음식도 일절 먹지를 못하니, 기력은 점점 쇠하고 잠까지 자지 못하고 지내니, 꿈에도 서로 뵈옵지 못한다.

또 들으니 남쪽의 왜적 소식이 좋지 못하다 하니 앞일이 어찌 될 줄을 알지 못하여 그지없는 회포로다.

이참의와 이진규 씨가 와보시고 조용히 말씀하시다가 가셨다.

 

1월 2일

맑았다.

아래 형님께서 오라고 하시기에 갔더니, 모두들 모였다. 어두워질 무렵에 올라왔다.

 

1월 3일

맑았다.

형님과 진사댁이 와 계시다가 저물 무렵 가셨다. 송서방과 안서방댁이 음식을 하여 와 다녀갔다.

 

1월 4일

맑았다.

 

1월 5일

비가 왔다.

진사댁이 다녀갔다.

 

1월 6일

아침에 흐리다가 늦게는 개었다.

이도사댁과 송감사의 별실이 와 다녀갔다.

 

1월 7일

흐렸다.

꿈에 사곡 어머님 뵈옵고 영감도 뵈었다.

청파 형님을 뵈오니, 갓 돌아가실 때 같아, 우리 서로 붙들고 울며 반가워하다 깨니, 그 집안사람이 오는가 하노라.

 

1월 8일

맑았다.

서리올 소서방 댁이 음식을 하여 와 보고 갔다.

어두울 무렵에 이참의 댁의 사람이 정조제에 갔가다, 심양에서 섣달 초열흘날 하신 편지 가지고 왔다.

목지평의 편지 보니 목강릉께서 병이 중하여 말을 통하지 못하신다고 하니, 어찌 되실까 싶도다.

형님께서도 주무시고 가셨다.

요사이 남쪽의 왜적 소식이 그렇게 시끄러우니 혼자서 근심한다.

 

1월 9일

맑았다.

보령의 김진사가 와, 내일 보령으로 간다고 한다. 최감사 댁 형님 편지를 보오니 슬픔이 그지없다.

양성립이 무장에 갔다가 우리에게 다녀가겠다고 하니, 나리께서 조기 다섯 못, 민어 두 마리, 또 새우젓 다섯 되, 알젓 세 되를 보내었다.

대부인께서 편지를 간절히 하시고, 기름종이 열 장을 보내셨다.

 

1월 10일

비가 왔다.

 

1월 11일

맑았다.

어두울 무렵 남원 가는 사람에게 목강릉의 부음을 들으니 놀랍고, 초이렛날 초상이 났다고 하니, 그날 밤 내 꿈에 청배 형님이 보이고 슬퍼하시더니, 그 집안에 초상이 나려고 그리하셨는가 싶더라.

젊었을 제부터 영감과 같이 공부한 벗님이시고, 공경하시기가 동생님 같으시던 분이시니 더욱 잊지 못하고, 목수찬 사정을 생각하니 더욱 그지없다. 누가 초상이나 구원하시는가. 잊지 못하리로다.

 

1월 13일

맑았다.

증조할아버지 기제사를 지냈다.

광주 유생원이 와 계시다가 어두울 무렵에 가셨다. 가까운 분들이 이 마음에 모이셨으니 반갑고 마음 든든하다.

임피 원님 조속께서 단자하고 생물 고기 한 뭇, 생닭 한 마리, 민어 한 마리, 말린 청어 세 두름을 보내고, 그 부인께서 편지 간절히 하시고, 곶감 한 접, 민어 두 마리, 알젓 두 보자기를 보내주시니, 동네가 서로 떨어져 있으나, 이 시절에 생각하여 주시는 것이 우연하지 아니하다.

 

1월 14일

맑았다.

남정자가 금구로부터 읍내에 와 다녀가시니, 두경이와 진사와 두림이가 읍내에 가 만나보고 우리에게서 약주 한 병 가져다 드렸다.

세룡이 여주에서 짐 차려 다녀가려고 왔다.

 

1월 15일

종일 비가 왔다.

다례 지냈다.

 

1월 16일

종일 비가 조금씩 오다 흐렸다.

홍서방이 충주에서 김제로 가노라고 손님과 함께 와 계신다.

 

1월 17일

밤부터 비가 왔다.

홍서방이 비가 와 못 가니 손님하고 식사하고 묵었다.

 

1월 18일

맑았다.

홍생원과 데리고 온 중 둘, 손하고 진지 잡숫고 가셨다.

문밖 어머님의 기제사였더니. 조별좌가 오려고 하다가 비 때문에 못 오는가 싶더라.

천남이를 데리고 띠를 띠고, 제사를 지내오니 슬프고 서러운 정이 그지없고, 외손자라도 있었으면 아니하랴, 가엽기 그지없다. 조카들도 하나도 못 오니 그런 섭섭함이 없다.

 

1월 19일

맑았다.

재 너머 사는 송서방댁이 술과 음식을 하여서 먹이시니 고맙다. 또 유좌수댁이 떡과 술을 하여 와 다녀가시니, 촌수로 팔촌 형제 항렬이라.

서로 절하여 떠나게 되니, 다시 서로 보게 되었으니, 정이 이러하시니 고맙다. 두터운 정을 못 잊을로다.

저물 무렵 가시고, 형님도 와 계셔 보시고 오셨기에 뵙고 모시고 가게 되니 마음 든든하다.

 

1월 20일

맑았다.

윤좌랑댁과 이생원댁이 떡과 술을 하여 가지고 와서 동생님네들 다 모여 있었는데, 조별좌댁이 부안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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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 댁에 가 모두 모여 계셔 하직하러 가 다녀왔다.

이 사이는 모두들 날마다 모이신다.

 

1월 22일

이도사댁과 송감사 부인, 별실 다 오고, 형님과 동생님들도 다들 모이셨다.

오후에 보령 김주서댁이 이날 멀리 간다고 오시니 반갑다 하기를 다 이르랴.

충주의 장남이와 용수가 오고, 홍판사 댁에서 말과 사람이 왔다. 축이가 전라도에서 공을 받아왔다.

손님네들 계속하여 오시고 밤 들도록 대접하였기에, 감기가 걸려 몹시 아프니, 닷새나 길을 떠나지 못했다.

 

1월 23일

그저 앓으니 민망하다.

 

1월 24일

흐렸다.

남원의 행차는 서울로 가시노라 오시고, 부인을 못 본 지가 이십이 년이라. 만나 보오니 반갑기가 가득하여 밤들도록 말씀하였다.

너무 젊어 계시니 고우시고 단단하신 얼굴이니 시름이 없어 그러하신가 싶더라. 이제도 이십여 세는 되어 보이시더라.

내가 있는 곳으로 오시니 형님과 아우님들 다 와 보셨다.

 

1월 25일

남원의 행차는 서울로 가시고, 조별좌댁은 부안으로 가셨다. 오후에 용틀 막난이 집에 와서 잤다. 이참의와 이생원이 다 와서 보시고, 또 용틀로 와 보시니 고맙다.

이충위와 소서방이 다 와서 인사드리고 가고, 진사 형제 임천 생원도 다 와 저물 무렵에 가셨다.

 

1월 26일

맑았다.

길을 떠났다. 여산을 떠나니 가없이 섭섭하고, 모두들 모여서 매일 소일하다가 이렇게 떠나감은 서울이나 가까이 가서 기별이나 듣고, 농사나 지을까 하려 움직이나, 마음이 너무 언짢고, 여산에 모두 모이신 데 떠나기와 별좌댁이 가는 데 더 멀고, 주서댁이 멀리 와 계셔 덧없이 여의게 되니, 어찌할 바 없어 하룻길이나 함께 가자고 떠나려 왔다.

중명은 말이 절어 반정까지 오고, 이충위는 시오 리나 왔다 가고, 두경 씨와 진사는 함께 와 연산 읍내에서 잤다.

 

1월 27일

남생원 남진사 들어가시니 섭섭하기 가없고, 떠나는 길이 각각 멀어 가니, 그 정회는 아무에게도 말할 바가 없다. 반정이나 가 주서댁은 진잠으로 들어가시고, 우리 행차는 하산하니 그리 못 갔다.

형제가 서로 이별하여 통곡하고, 무슨 일로 와 이내 마음을 새로이 서럽게 하는고.

보령에서 소주 두 병, 별좌댁이 소주 두 병 하여 왔더니, 여산에서 반이나 모여 먹고, 그 반은 장터에 와 먹고, 김생원은 울며 노래 부르고, 잔 잡아 진지하며

‘가을에 충주에 가리이다. 하며 아주버님 오시면 서울로 어머님 모여 올라가 다시 모이십시다.’

하고 떠나 형제 손목 쥐어 통곡하고 여의어 서로 말 위에서 이별하니 그 모습이 가엽다. 길이 점점 멀어지고, 가린 것이 못 보이게 되니, 이리하여 제갈공명도 서서를 여읠 제, 나무 수풀을 베라고 한 것이라.

그 일을 생각하다가 못 보이게 되니, 말 위에서 이별하니, 그 사정을 어떻다고 기록하리오.

늙고 병든 인생이 다만 한 아우를 영영 이별하는 것이니, 슬프고 서러운 정을 어찌 다 기록하리오.

동생도 무던히 여길 이가 있더라마는, 우리 형제는 오라비님 계실 적에도, 남에게 없는 동생들 같이 지내다가, 오라버님 두 분 돌아가시고 다만 우리 형제만 있어 각각 서울과 시골에서 사니, 그지없는 설운 회포를 어떻다고 하리.

그날 공주 땅 유성 근처에서 머물러 묵었다.

 

1월 28일

흐렸다.

오후에 바람이 크게 불고 비가 많이 와서, 일행이 온통 젖어 청안 땅 시화 역마을에 들어 잤다.

밤비가 날이 새도록 왔다.

 

1월 29일

아침에 이슬비가 오기에 밥 먹은 뒤에 길을 떠났다.

 

1월 30일

충주 남면에 와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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