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병자일기

정축년(1637) - 10월

New-Mountain(새뫼) 2022. 2. 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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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큰달

 

을미 초하루

흐렸다.

 

10월 2,3일

맑았다.

별좌의 제사를 지내니 나의 설움이야 끝이 없으니,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리. 제사를 지낼 사람도 없어서 남진사와 조창하가 제사에 참례하고, 신주를 보니 숨이 막히는 듯하고 정신이 아득하기만 하니, 세월이라 가나 어느 때 어느 날에나 잊을까.

어여쁘던 얼굴이 생생하여 그리운 일만 생각하면 간담이 쪼개지는 듯, 베어지는 듯, 아이고, 꿈에나 나타나 보이라 하고 경계하며 눈물을 흘리며 지내나, 한번 꿈속에도 보이지를 않으니 그리워라.

저인들 혼백이 있으면 늙은 어미를 아니 생각하랴마는, 이승과 저승이 다른지라 그런가 하여 더욱 설워하노라. 벌써 오 년이 장차 되어가니 흐르는 세월이 누구를 위하여 머물꼬.

 

10월 4일

흐렸다.

꿈에 영감을 보았다. 또 신선 같은 한 노인이 겨 웃고 나에게 말하기를,

‘무슨 일을 근심하느냐, 염려 말라.’

하여 보이니 필연 귀한 사람이니, 꿈 깨어 든든하고 기뻐하며, 동궁 전하를 모셔 수이 나오시는가 하며, 보통 있는 일이 아닌 꿈속이라 기쁘기가 많기만 하다.

이제는 정신이 없어 꿈을 생각하지 못하되, 이런 꿈은 조금도 잊히지 아니하고, 기이하고 특별한 얼굴이 너무 분명하고 온전하여 말씀이나 잊히지 아니하더라.

이날 두하가 영월에서 오니, 큰 난리에 서로 생사도 알지 못하여, 겨우 무사히 난리 난 기별만 들었는데, 만나보니 반가운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로다.

 

105

부안 별좌 집에서 큰 병으로 약주 두 병과 안주 하여 왔거늘 모여서 먹었다.

조창하가 청주로 갔다.

여기 종들에게 나무를 베게 하여, 아침밥을 해 먹을 쌀을 주고 점심은 지어 먹이니, 하루 모여서 베어 누인 것이 가장 많다.

밤에 비가 시작하여 바람이 크게 불고 눈이 왔다.

 

106

큰 눈과 비가 왔다.

청배집이 회덕에서 왔다.

 

107

눈이 왔다.

목지평께서 구월 보름날 하신 영감의 편지를 전하였다.

 

108,9

가끔 흐리고 비와 눈이 왔다.

남원 사람이 서울에 갔더니 천남이가 두고 간 편지와 누룩 한 동이, 노구솥과 상을 가지고 왔다.

 

1010

가끔 흐리고 눈이 왔다.

 

1011

맑았다.

조별좌 댁에서 약주 한 병을 보내왔다.

 

1012,13

맑았다.

김포의 남중후가 어제 왔다가 오늘 김제로 갔다

 

1014,15

맑았다.

두경이 중명이 이충의가 술잔을 같이 마련하였는데, 다 역질이 일어 이 연고 때문에 우리에게 다 모여서 약주 드셨다.

의주댁 형님도 우리에게 와 주무셨다.

 

1016

맑았다.

모여서 약주를 가지고 와서 또 먹고는 오후에 내려가셨다. 이 약주는 의주댁 형님이 보내신 것인데, 멀리 살던 사람들이 잠깐 머무는 겨를에 아니 먹이겠는가 하시며, 세 집이 음식도 많이 장만하고 극진히 준비하신 약주라.

그 형님이 나를 대접하시기를 아침저녁으로 하시며, 세심하게도 아침저녁 잡숫는 반찬이나 먹을 것을 세 집 중에서 넘치게 하시고, 몹시 덥거나 비 올 때는 좁은 막에 어떻게 견디느냐고 하시면서 항상 내려오라고 하시니, 한 달 사이에도 삼분의 일이나 가서 지내니, 그런 고마운 일이 없고, 영감 쪽으로 보아 사촌 사이이시나 각별하시더라.

 

1017,18

맑았다.

귀하게도 민어를 한 마리 가져다 주셨다

 

1019,20

맑고 따뜻하였다.

남원에서 문어와 도미, 홍합을 우리에게만 보내셨다. 서리올에서 찰 차린 음식을 많이 하여 보내주시니 고맙다.

 

1021

맑았다.

 

1022

외조모 기제사 날이다. 정랑 댁 차례라고 하여 두하가 와서 지냈다.

꿈에 영감을 뵈옵고 집의 종들도 다 보니 나오시는가 바람이로다. 의주댁 형님도 꿈에 보았다 하시고 편지를 보내었다.

어두워질 무렵에 송감사 댁이 와 다녀가셨다.

 

1023

흐렸다.

심제 씨가 서울 갔다가 이 고을에 들러 조기 세 뭇, 민어 한 마리, 말린 꿩고기 한 마리를 가져오고, 주인 원님께서 꿩 한 마리와 호산춘 한 병을, 몰랐다고 하고 심제 씨 편에 함께 보내시거늘, 그 술을 가지고 삼등 댁으로 가져가 두하 씨를 먹이려고 가서, 모두 모여 먹고 집에 있는 술 한 병도 가져와서 먹었다.

 

1024

맑았다.

조카님네들이 모여 대여섯 잔씩 먹었다.

 

1025

맑았다.

충주 갔던 종들이 들어왔다.

 

1026

가끔 맑았다 흐렸다 했다.

꿈에 영감을 뵈옵고 반가운 정에 못내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아침에 남원으로 가는 관주인이 심양에서 구월 초닷샛날 하신 편지를 가지고 오니, 기운은 평안하시다고 하나, 나오실 기별은 없으니 답답하고 갑갑하다.

 

1027,28

맑았다.

꿈에 영감을 뵈오니, 연이어 이러하니, 나오시는가 바라노라.

 

10월 그믐날

맑고 추웠다.

오늘도 또 뵈오니, 천남이가 들어갔으니 모시고 나오는 점괘인가 한다.

문밖에서 어머님도 꿈에 뵈오니, 경사 있으려 영혼도 기뻐하셔서 그런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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