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열녀춘향수절가 24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V. 재회 (5/5)

마. 높은 절개 빛이 나니 어찌 아니 좋을쏜가 사대문에 방 붙이고 옥 형리 불러 분부하되 “네 고을 옥에 있는 죄인들을 다 올리라.” 호령하니 죄인을 올리거늘, 다 각각 죄를 물은 후에 죄 없는 자들을 풀어줄 새 “저 계집은 무엇인고?” 형리 여쭈오되 “기생 월매 딸이온데 관아의 뜰에서 사납게 군 죄로 옥중에 있삽내다.” “무슨 죄인고?” 형리 아뢰되 “본관 사또 수청으로 불렀더니, 수절이 정절이라 수청 아니 들려 하고 사또 앞에 사납고 못되게 군 춘향이로소이다.” 어사또 분부하되 “너만 년이 수절한다고 관아의 뜰에서 못되게 굴었으니 살기를 바랄쏘냐. 죽어 마땅하되 내 수청도 거역할까?” 춘향이 기가 막혀 “내려오는 원님마다 개개이 이름이 났구나. 수의사또 들으시오. 험한 바위가 겹겹이 높은 바위 바람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V. 재회 (4/5)

어사또 춘향 집에 나와서 그날 밤을 새려 하고 문안 문밖 사정을 알아볼 새, 길청에 가 들으니 이방 승발 불러 하는 말이 “여보소. 들으니 수의사또가 새문 밖 이씨라더니, 아까 삼경에 등롱불 켜 들고 춘향 모 앞세우고 찢어진 옷과 갓을 쓴 손님이 아마도 수상하니, 내일 본관 잔치 끝에 하나부터 열까지를 구별하여 일부러 탈을 만드는 일 없도록 십분 조심하소.” 어사 그 말 듣고 “그놈들 알기는 아는데.” 하고 또 장청에 가 들으니 행수, 군관 거동 보소. “여러 군관님네, 아까 옥 근처를 오락가락하는 걸인 실로 괴이하데. 아마도 분명 어사인 듯하니 얼굴 그린 그림을 내어놓고 자세히 보소.” 어사또 듣고 “그놈들 모두가 귀신 같도다.” 하고 현사에 가 들으니 호장 역시 그러하다. 육방 사정을 다 실핀 후에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V. 재회 (3/5)

다. 청운에 오르거든 원한이나 풀어주오 이때 향단이 옥에 갔다 나오더니 저의 아씨 야단 소리에 가슴이 우둔우둔 정신이 울렁울렁 정처 없이 들어가서 가만히 살펴보니 전의 서방님이 와 계시는구나. 어찌 반갑던지 우루룩 들어가서 “향단이 문안이오. 대감님 문안이 어떠하옵시며 대부인 건강은 안녕하옵시며 서방님께서도 먼 길에 평안히 오셨나이까?” “오냐. 고생이 어떠하냐.” “소녀 몸을 아무 탈이 없사옵니다. 아씨 아씨, 큰아씨. 마오 마오, 그리 마오. 멀고 먼 천리 길에 뉘 보려고 와 계시기에 이 괄시가 웬일이오. 애기씨가 알으시면 지레 야단이 날 것이니 너무 괄시 마옵소서.”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먹던 밥에 풋고추 저리김치 양념 넣고 단간장에 냉수 가득 떠서 모난 쟁반에 받쳐 드리면서 “더운 진지 할 동안에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V. 재회 (2/5)

나. 사또가 모질더라 이도령이 무정터라 한참 이러할 제 한 농부 썩 나서며 “담배 먹세. 담배 먹세.” 갈멍덕 숙여 쓰고 두던에 나오더니 곱돌조대 넌짓 들어 꽁무니 더듬더니 가죽 쌈지 빼어 놓고 세차게 침을 뱉어 엄지손가락이 자빠지게 비비적비비적 단단히 넣어 짚불을 뒤져 놓고, 화로에 푹 찔러 담배를 먹는데 농군이라 하는 것이 담뱃대가 빡빡하면 쥐새끼 소리가 나것다. 양 볼때기가 오목오목 콧구멍이 발심발심 연기가 홀홀 나게 피워 물고 나서니 어사또 반말하기는 이골이 났지. “저 농부 말 좀 물어보면 좋겠구먼.” “무슨 말.” “이 고을 춘향이가 본관에 수청들어 뇌물을 많이 먹고 백성들 다스리는 일에 큰 폐단이 된단 말이 옳은지.” 저 농부 열을 내어 “게가 어디 사나?” “아무 데 살든지.” “아무 데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V. 재회 (1/5)

V. 재회 가. 아무 날 남원읍에 순행하여 대령하라 이때 한양성 도련님은 밤낮으로 ≪시경≫과 ≪서경≫, 여러 학자들이 지은 여러 가지 저서를 깊이 읽고 공부하였으니, 글로는 이백이요, 글씨는 왕희지라. 국가에 경사 있어 태평과를 보이실 새 서책을 품에 품고 과거 보는 마당 안에 들어가 좌우를 둘러 보니 수많은 백성과 허다한 선비들이 일시에 임금께 절을 한다. 궁중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 깨끗하여 속되지 않으니 앵무새가 춤을 춘다. 대제학이 골라내어 임금이 내린 과거시험 글 제목을 보이니, 도승지 모셔내어 홍장 위에 걸어 놓으니 글 제에 하였으되, “춘당대의 봄빛은 예나 지금이나 같도다.” 뚜렷이 걸었거늘 이도령 글 제를 살펴보니 익히 보던 바이라. 시지를 펼쳐 놓고, 글제를 어떻게 풀어낼까 생각하여 용..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V. 시련 (5/5)

마. 어느 날에 낭군님이 이곳에 도착하오리까 애고 애고, 섧게 울다 홀연히 잠이 드니, 깊이 잠들지도 깨지도 않은 어렴풋할 때, 나비가 장주 되고 장주가 나비 되어, 가랑비같이 남은 혼백 바람인 듯 구름인 듯 한곳을 당도하니, 하늘은 끝이 없고 땅은 넓어 막힘이 없고, 산은 밝고 물빛을 고운데, 은은한 대숲 사이에 한 층의 단청을 한 누각이 반공중에 잠겼거늘, 대체 귀신 다니는 법은 큰바람이 일어나, 하늘에 오르고 땅에 들어가니, 베개 위의 잠깐 동안의 봄날 꿈에 강남 수천 리를 다 갔구나. 앞쪽을 살펴보니 금칠 큰 글씨로 만고정렬황릉지묘라 뚜렷이 붙였거늘, 심신이 황홀하여 오고 가더니 천연한 낭자 셋이 나오는데, 석숭의 애첩 녹주 등불을 들고, 진주 기생 논개, 평양 기생 월선이라. 춘향을 이끌고 안채..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V. 시련 (4/5)

라. 저 달아 네가 일러 나의 수심 풀어 다오 이리 야단할 제 춘향 어미가 이 말을 듣고 정신없이 들어오더니 춘향의 목을 안고, “애고 이게 웬일이냐. 죄는 무슨 죄며 매는 무슨 매냐. 장청의 집사님네, 길청의 이방님 내 딸이 무슨 죄요? 장군방 두목들아, 매를 들던 옥사쟁이들도 무슨 원수 맺혔더냐.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칠십 나이 늙은 것이 의지 없이 되었구나. 아들 없는 외딸 내 딸 춘향 규중에 은근히 길러내어 밤낮으로 서책만 놓고 ≪내칙편≫ 공부 일삼으며 나 보고하는 말이, ‘마오 마오, 설워 마오. 아들 없다 설워 마오. 외손자가 제사 못 모시리까?’ 어미에게 지극정성 곽거와 맹종인들 내 딸보다 더할쏜가. 자식 사랑하는 법이 위아래가 다를쏜가. 이내 마음 둘 데 없네. 가슴에 불이 붙어 한숨이..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V. 시련 (3/5)

다. 소녀를 이리 말고 아주 때려 죽여주오 사또 크게 화를 내어, “이년 들어라. 군사를 일으켜 큰 반역을 일으키는 죄는 능지처참하여 있고, 관장을 조롱하는 죄는 제서율에 써 있고, 관장을 거역하는 죄는 엄한 형벌을 내리고 귀양을 보내느라. 죽노라 설워 마라.” 춘향이 사납게 악을 쓰며, “유부녀 겁탈하는 것은 죄 아니고 무엇이오?” 사또 기가 막혀 어찌 분하시던지 붓과 벼루가 담긴 책상을 두드릴 제, 탕건이 벗어지고 상투 고리가 탁 풀리고 첫마디에 목이 쉬어 “이년 잡아 내리라.” 호령하니 골방에서 수청들던 통인, “예.” 하고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주루루 끌어내며 “급창.” “예.” “이년 잡아 내리라.” 춘향이 떨치며 “놓아라.” 중계에 내려가니 급창이 달려들어 “요년 요년. 어떠하신 높은 분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V. 시련 (2/5)

나. 일편단심 소녀 마음 굴복하지 못하리라 어여쁘고 고운 기생 그중에 많건마는 사또께옵서는 근본 춘향의 말을 높이 들었는지라. 아무리 들으시되 춘향 이름 없는지라. 사또 수노 불러 묻는 말이, “기생 점고 다 되어도 춘향은 안 부르니 물러난 기생이냐?” 수노 여쭈오되, “춘향 모는 기생이되 춘향은 기생이 아닙니다.” 사또 묻기를, “춘향이가 기생이 아니면 어찌 규중에 있는 아이 이름이 높이 난다?” 수노 여쭈오되, “근본 기생의 딸이옵고, 덕색이 장한 고로, 벼슬이 높고 권세가 있는 양반네와 재주가 첫째가는 한량들과 내려오신 벼슬아치마다 구경하고자 간청하되, 춘향 모녀 듣지 않기로, 양반 상하 물론 하고 한 집안사람인 소인 등도 십 년에 한 번 정도 대면하더라도 말을 주고받음이 없었더니, 하늘이 정하신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V. 시련 (1/5)

IV. 시련 가. 네 고을의 계집 춘향이 매우 어여쁘다지 이때 몇 달 만에 신관 사또 났으되, 자하골 변학도라 하는 양반이 오는데 글과 글씨도 여유가 있고 인물 풍채 활달하고 풍류 속에 널리 통하여, 외입 속이 넉넉하되, 한갓 흠이 타고난 성품이 괴팍한 중에 미쳐 날뛰는 증세를 겸하여, 혹시 덕망을 잃기도 하고 잘못 처결하는 일이 간간이 많은 고로, 세상에 아는 사람은 다 고집불통이라 하것다. 신연하인 하인 현신할 제 “사령 등 현신이요.” “이방이요.” “감상이요.” “수배요.” “이방 부르라.” “이방이요.” “그새 너희 고을에 일이나 없느냐?” “예. 아직 아무 탈이 없습니다.” “네 고을 관노가 삼남에 제일이라지?” “예. 부름 직하옵니다.” “또 네 고을에 춘향이란 계집이 매우 어여쁘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