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병자일기

정축년(1637) - 11월

New-Mountain(새뫼) 2022. 2. 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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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 큰달

 

을축 초하루

맑았다.

김포의 남서방이 밥 먹은 뒤에 갔다.

 

11월 2일

맑았다.

사곡 어머님 생신 다례를 형님 댁에 가 지내고, 이어서 형님댁에서 중명 씨 생일이라고 삼등댁과 다 모여서 약주를 먹었다.

수야가 금산 갔더니 금산에서 고리, 키, 장 두 말, 꿀 두 되, 포육 두 접, 말린 꿩 고기 세 마리를 보내셨다.

여러 번째니 비록 내 사촌님이시나 어려워서 동지에 쓸 술만 빚어 심부름꾼에 보내시고, 간장까지 지워 보내시니, 내 사촌님이시니 어려운 줄을 깨닫지 못하겠다.

 

11월 3일

종일 비가 내리고 밤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11월 4일

맑았다.

꿈에 문밖 어머니 뵈옵고, 영감도 계속하여 보이니 나오시는가 바라도다.

 

11월 5일

흐렸다.

만 리 밖에 가 계신데도 꿈마다 모여 보이니 내 정신이 만 리 밖에 가는가?

 

11월 6일

맑았다. 날씨가 따뜻하다.

남진사 생일이라 건너가서 형님 모시고 지내다가 어두워서야 왔다.

난리 후에 그리 가서 동생 사촌님네나 조카님네 늘 모여 이러구러 지내니, 벌써 이 해도 거의라.

불행 중 다행이나 언제 영감 나오실까. 늘 근심으로 항상 숨이 막히는 듯하고 죽은 자식 그리워 설워한다.

아우가 떡을 하여 보냈다.

 

11월 7일

맑고 바람이 불었다.

형님이 바리오지로 가셨다.

심양에서 시월 초하룻날 하신 편지와, 두림이가 열이튿날 의주 가서 한 편지와, 열엿샛날 통원보 가서 한 편지가, 장계 오는 편에 왔거늘, 이좌랑 댁에서 전하여 왔다.

사내자식은 세상이 어지러워진 때에야 더 알겠다. 계속해서 꿈마다 영감을 뵈오니 반갑고 마음 든든하다. 어느 날 한데 모여 가슴속에 쌓인 것이 조금이나마 풀어질까.

 

11월 8일

맑고 따뜻하였다.

꿈에 죽은 동생님도 보이고, 사곡 어머님도 뵈옵고 영감도 뵈오니, 신기하고 특이한 학 같은 짐승이 춤을 추는 듯 넘노는 듯하다가 영감이 손수 그 짐승을 씻기시니, 부리와 발이 검던 것이 붉어지며 몸이 희고 붉은 광채가 갓 칠을 한 듯하여, 그 짐승이 기뻐하며 춤을 추고 말을 하는데 그 말은 알지 못할러라.

상서로운 일이 있어서 이런가.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다. 영감께서 쉽게 나오실까 하노라.

밤이면 등불을 마주하여 밤이 들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나 날로 등불이 맑고 좋으니 마음 든든하여 하노라.

오늘이 별좌의 생일이라 차례 지내고, 조카님네와 진사가 다 술을 여섯 잔씩 마셨다. 나의 마음이 더욱 어떠하랴. 슬픈 정과 서러운 마음이 풀어질 적이 없도다.

 

11월 9일

맑고 따뜻하였다.

여주 며느리의 기제사 날이라 슬픔이 그지없다. 남진사가 와서 제를 지냈다. 어찌 젊은 사람들이 일찍 인간 세상을 떠났으며, 자식도 하나 없어서 제사 지낼 사람도 없고, 어떤 일에 부닥쳐도 서럽지 않은 일이 없으니, 참고 지내나 나의 속이 얼마나 썩겠는가.

또 조창원이 충주에서 오니, 난리 후에 이렇게 만나보니 그지없이 반갑다.

 

11월 10일

맑았다.

창원이가 부안으로 공물을 거두려고 갔다.

양남에 사는 종들이 집에서 부리는 종들을 보고 모두 마주 나와, 상전의 기별을 묻고 무사히 지내신 것이 하늘 같다고 하며, 우리 노비들도 상전님 덕분에 하나도 죽은 사람이 없이 다 살았노라고 하면서, 다들 즐겨하더라 하고,

갔던 종들이 남의 집 사람들은 주인이 심하게 다뤄, 달아난 이가 많고 숨은 이가 많으나, 저희는 다 그러구러 고공이나마 힘써 주더라고 하니, 외방종이나마 상전이 모질게 하지 않은 탓이로다 하노라.

 

11월 11일

동이 틀 무렵 눈이 조금 오더니, 밥 먹은 뒤에 큰 눈이 내렸다.

서산의 막석이가 살림살이와 민어 한 마리를 보내었다. 애련이가 왔다.

 

11월 12일

맑고 따뜻하였다.

꿈에 사곡 어머님을 뵈옵고 죽은 동생님네도 다 보니 반갑다.

여러 해가 되었지마는 꿈에도 분명히 못 보았더니 창골 며느리를 보니 얼굴이 뚜렷하고, 내 앞에 앉았으니, 아깝고 불쌍할 사.

내 자식들, 서러울 사 아이고, 어디로들 가서 형체와 그림자도 없어졌는가.

본디부터 자식이 없었던 사람이야 이렇게까지 서러울쏜가. 꿈속에서도 반갑고 다시 반갑고 슬픈 정이 그지없으나 평상시 같이 보이니, 잠을 깨니 흐뭇하나, 어찌 늙은 나는 이렇게 살아서 가지 많은 시절까지 보는가. 아이고 할 뿐이로다.

영감도 뵈오니 나오시는가 한다.

 

11월 13일

맑고 따뜻하였다.

꿈에 여주 며느리를 보았다. 다들 어디로 갔는고. 신주들만 보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다.

이틀 꿈에 계속하여 두 며느리를 보니 영감께서 쉽게 나오시게 되니까 혼령들이 도와서 기쁜 일이 있음인가 한다.

먹젓골 정동지 부자가 배고프다고 하여 보이니 슬프다.

이참의가 시월 초나흘 하신 편지 오니, 동궁 전하께서 나오실 기별이시니 하늘만 같다.

 

11월 14일

맑고 추웠다.

꿈에 영감을 뵈오니 반갑고 마음 든든하다.

새벽에 조진사가 청주로 가신다고 하면서 부안으로부터 와서 안부를 전하신다.

충이가 개령에 갔다가 목화 백삼십이 근을 가져왔다.

 

11월 15일

흐렸다.

이좌랑댁이 서울로부터 오신다 하고 마중 간다고 한다.

 

11월 16일

맑았다. 월식을 했다.

계속하여 꿈에 영감도 뵈옵고 사곡 어머님과 죽은 동생님네를 뵈오니 마음 든든하다. 좋은 징조가 있는가 바라노라.

 

11월 17일

눈과 바람이 종일이었다.

꿈마다 만리 밖에 계신 분을 뵈오니 진실로 수많은 산을 가리지 못함이로다.

저물 무렵 이참의가 고국으로 나오신다는 기별이 오니 시원함이 그지없다. 우리 뜻이 이러한데 그 집안에서야 오죽할쏜가. 우리는 언제나 이 말을 듣고 즐길꼬.

이참의까지 나오고 나면 영감께서 혼자 남으시게 되니 그 마음이 더욱 어떠하실까 하고 헤아려보니 숨이 막힐 듯 가슴이 답답하여 어느 약으로 이 고칠꼬.

나오신다는 기별만 있으면 반드시 시원하려니 이리 헤고 저리 헤니 정신이 얼음장 같아서, 산이나 하늘만 바라고 지내나, 누운들 잠이 오며 비록 음식이 있다 한들 먹을 마음이 있으며, 아침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창증은 심하여만 가니 이 일을 어찌하리.

미친 사람 같아서 앉았다 일어났다 어린아이를 돌보며 날을 보내니 이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맏생원이나 진사가 다들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고, 낮이면 두세 번씩 와서 조용히 있다가 가니, 이렇게 한 마을에 모두 모여 지내는 것이 만만하나, 충주로 가면 누구와 더불어 말벗이나 할까.

 

11월 18일

흐리고 눈이 조금 왔다.

축이가 전라도에 갔다가 왔다. 창원이가 부안에 다녀왔다.

남원 사람이 서울 갔다가 목지평의 편지를 가져오고, 종들에게 비용이 너무 드니 방어돌 목산이가 왔다.

이진규가 서울로 마중을 갔다.

 

11월 19,20일

눈이 많이 왔다.

꿈에 영감을 뵈옵고, 또 온 집안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는 듯이 보이니, 쉽게 나오시게 되는가 하노라.

 

11월 21일

맑았다.

두하 씨가 보령 다녀오고 이도사댁이 서울에서 오셨다.

 

11월 22일

맑았다가 밤에 큰 눈이 왔다.

이 해도 거의 다하여 가니, 심양 행차는 어느 날에나 바랄꼬. 아침이면 해님을 우러러 빌고 달 밝을 때면 달님에게 빌며, 천지지일월성신께 절하여 비나, 그러나 나의 정성이 부족한가, 하늘께서 감동을 아니 하시는가.

평생에 하느님을 원망하는 말을 입에 내지 아니하고, 평생에 사나운 일을 아니하려고 하였는데, 한 자식도 없고 이렇게 매양 가슴을 썩이며 지내니 높으시나 높으시나 살펴보소서.

 

11월 23일

맑았다. 이도사댁과 그 별실이 와 보고 밤이 깊도록 말하다가 갔다.

 

11월 24일

종일 비가 왔다. 오후에는 안개가 끼어, 지척을 분별할 수 없었다.

 

11월 25일

아침에 안개가 끼고 흐렸다.

전라감사가 이 고을에 왔다가 쌀 한 섬을 보내고 단자하였다.

 

11월 26일

안개가 많이 끼어, 지척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꿈에 사곡 어머님도 뵈옵고 영감도 뵈었다. 누런 베옷을 입고 계셔 보이니, 평안하고 쉽게 조정으로 돌아오실 꿈이로다.

 

11월 27일

종일 비가 오다가 저녁에는 안개가 끔찍하게 끼었다. 비가 오기 시작하여 밤을 새워 왔다.

 

11월 28일

아침에는 흐리더니 눈이 조금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불다.

저녁때에 판관이 오시니 반갑다 하기를 이루 다 말하랴.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잠이 없더라.

 

11월 29일

아침에 눈이 조금 왔다. 종일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밤에는 눈이 오고 바람이 불었다.

어두워진 후에 두륙이가 들어와 다 모이니 우리도 반갑고 든든하거든 아우님 뜻이 어떠하신고.

수야도 당진 갔다가 다녀왔다.

 

11월 그믐날

맑았다.

몹시 추운데, 남방 추위도 이러한데 저 땅은 어떠할꼬.

무슨 일을 당하여도 아니 생각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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