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병자일기

무인년(1638) - 3월

New-Mountain(새뫼) 2022. 3. 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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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큰달 병진

 

갑자 초하루

맑았다.

조별좌의 편지를 지상이가 가져오니, 부안에서 청주로 왔다고 한다. 의봉이와 애남이가 여산에서 심양으로 보낼 종이를 맞추었더니 그것을 가지고 왔다. 그곳 편지를 모두 보게 되니 반갑다.

삼등댁도 상주로 가셨다 한다.

 

3월 2일

맑았다.

흙땅 논 열세 마지기를 정수와 소 한 마리, 사람 열한 명이 갈았다.

저녁에 홍판사 댁의 사람이 서울 갔다 오면서 심양에서 정월 스무엿샛날 하신 편지도 오고, 목수찬의 편지를 보니 영감께서 나오시는 것은, 윗전께서 나이도 많고 공로도 많으며 수릉관도 지냈으니 남 아무개를 먼저 나오게 하라고 전교하셨기 때문이라고 하니, 천은이 망극하고 망극하다.

이제야 체했던 것이 시원하니 온 집안 경사를 다 이르랴.

 

3월 3일

차례 지내고 천남이가 월탄 다녀왔다.

오늘 벗고개 논을 인부들을 들여서 가느라고 종들이 다 갔다.

논대가 떡과 술을 하여 왔다. 오씨가 왔다.

 

3월 4일

맑았다.

천남이가 서울로 갔다.

절이가 아비 생일이라고 모든 종들에게 음식을 갖다가 준다.

여주의 계수가 오니, 신감역댁의 편지를 보고 반가웠다.

오늘 흙질을 마저 하였다.

 

35,6

맑았다.

이른개의 남편이 가흥으로 가기에 이서방댁에게 편지를 보냈더니 영덕 소식도 모른다고 답장이 왔다.

치질로 밤을 새워 앓느라고 한 경도 잠을 못 자니 정신이 이러하랴. 오늘 돌샘골 논 일곱 마지기를 갈았다. 소하고 종들 여섯이서 정수하고 갈았다. 노경국이 가흥에 왔다가 기별을 듣고는 술 한 병 가지고 와서 문안드린다.

오늘이 천계의 생일이다. 잔을 부어놓고 어찌 자식들이 저희가 내게 하여야지, 내가 저희에게 하게 하는가 하니 슬프기 그지없다.

충신이가 서울 갔다가 효신이의 집에서 부리는 사람을 만났는데 스무하룻날에 유지가 심양으로 갔다고 하니 마음이 날아갈 듯하다.

 

37

종일 비가 왔다.

종들에게 가래 하나, 쇠스랑 세 개 만들게 하고, 바자를 세우게 했다.

 

38

흐렸다.

돌샘골 논에 종들 여섯이 가서 갈고 쇠스랑질하러 갔다. 점심 후에 종 셋은 흙당골 논에 와 가래질하였다.

 

39

맑았다.

꿈에 영감을 뵈었다. 엷은 바지를 축이에게 보내는 걸로 보이니 벌써 나오시는가 한다.

오늘 돌샘골 논에 올벼 일곱 말을 씨 뿌리러 갔다. 집의 종 일곱과 정수까지 갔다. 어두울 무렵 영월에서 덕남이가 오니, 삼등댁 행차가 상주로 편히 가신 기별을 듣고 영월 편지도 모두 보게 되니 반갑다.

 

310

맑았다.

요사이는 잠도 편하지를 못하나 꿈마다 영감을 뵈오니, 유지가 벌써 심양으로 들어갔는가 한다.

오후에 일봉이가 서울로 두림이를 데리고 갔었는데, 저는 과거 보고 바로 심양으로 들어가려고 일봉이와 함께 내려오지 않으니 섭섭함이 많다.

영감께서 이월 열엿샛날, 열여드렛날, 스무닷샛날 하신 세 차례의 편지가 함께 왔는데, 기운이나 평안하시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오늘 흙당 논에 가래 두 개로 가래질하러 정수까지 일곱 사람이 갔다.

 

311

맑았다.

꿈에 사직골 어머님을 뵈옵고 영감도 뵈오니 마음 든든하다.

오늘은 품앗이 갚기에 일곱 사람이 갔다.

주서댁이 이월 초아흐렛날 한 편지가 서울에서 왔다. 반갑기 그지없다.

 

3월 12일

흙당 올벼논 다섯 마지기를 삶으러 집의 종 다섯과 정수까지 갔다.

 

313

맑았다.

애남이가 서울 두림이에게 갔다. 신주독을 칠하는 값까지 합하여 열한 필 가지고 갔다.

망남이가 사냥하러 영월로 갔다.

 

314

맑았다.

꿈에 영감을 뵈오니 마음 든든하다.

 

315

맑았다.

거리실 논을 집의 종 다섯과 정수 삼 형제가 가래 둘과 소 한 마리로 하루에 갈려고 갔다.

남촌 이생원댁이 떡과 술을 하여 와보고 가셨다. 삼십여 년 만에 뵈오니 반갑다.

은봉이가 와서 별좌댁이 몸이 불편하시다고 하니 걱정이 되어서 양식 열 말을 보냈다.

이생원은 저녁에 가셨다.

 

316

맑았다.

정수가 돌샘골 논에 뿌릴 씨 열네 말을 맡아 가지고 갔다.

 

317

맑다가 가끔 흐렸다.

집의 종 넷과 정수 형제가 거리실 논을 더러 갈고, 가래질하고 파고 왔다.

 

318

맑았다.

의봉이가 두림이와 영감 마중 가려고 서울로 갔다. 초관댁이 공으로 받은 무명 열 필을 가지고 갔다.

 

319

맑았다.

집의 종 넷과 정수가 거리실 논에 갔다.

 

320

맑았다.

꿈에 영감을 뵈오니 나오시는 기별이 올까 바라노라.

오늘 벗고개 논에 집의 종 다섯과 정수 형제, 장남이가 갈고 가래질하였다.

 

321

맑았다.

논에 물이 말라서 못 부치고 가을걷이하기에도 아직 일러서 오늘은 톱질한다.

이천 부사와 둘째 생원이 와보고 가시니 반갑고, 난리 후에 만나보고, 산성 가서 하시던 말을 이르시니 더욱 그지없다. 두 분 점심하여 잡숫고 가시니 섭섭하다.

월탄에서 준향이를 시켜 큰 붕어 살아 있는 것을 두 마리 잡아 보내시니 손님 식사에 반찬 하여 드리고 기쁘다.

 

322

맑았다.

충이를 서울 보내어 심양 기별도 알아 오게 하고, 반찬 없는 밥에 견디지 못하여 조기나 받아 오라고 올려보냈다.

영감께서 나오신다는 기별이 없을 때는 아무 것도 바라는 것도 없었는데 유지가 갔다고 한 후에는 마음이 도리어 어린아이 같아져서 날마다 바라는 마음이 끝이 없다.

요사이는 꽃 피는 계절은 벌써 지나고 녹음이 어리었으니 해마다 시절은 때를 잃지 아니하는데, 죽은 자식들은 혼령이나마 있으면 꿈에라도 나를 찾아 아니 보려 하니, 이렇게 외롭고 고단할 때는 더욱더욱 생각하고 설워한다.

어제 영월에서 혼인 지내니 난추가 나올까 바란다.

축이와 일봉이가 청풍으로 갔다. 세룡이를 부린다. 제 할미는 죽고 제 어미도 돌볼 형편이 못 되니 어린 종을 버리랴.

신평에서 맏아우님이 편지를 보냈다.

 

323

온종일 흐렸다.

축이와 일봉이가 청풍 가서 두 바리에 메주, 열여덟 말 팥, 열일곱 말, 장리로 받은 팥 서 말, 섬이에게 메주와 못 받았던 팥 두 말을 받아 가지고 왔다.

 

324

흐렸다.

꿈에 모두들 뵈었다. 서울 기별이나 오는가.

오늘 청배집이 가흥으로 갔다. 안악댁이 와 계신 곳에 뵈러 간 것인데, 중소가 들어오니 반갑고 마음 든든하다.

망남이가 거기 혼인에 가서 노루 두 마리를 잡아서 썼다고 한다.

 

325

맑았다.

오늘은 영감께서 어디쯤에서 지내시는가 하고 생각하니 마음 아프기 그지없다. 어떤 일에도 잊을 때가 없다.

효신이가 제 어미와 술 한 병을 가지고 와 다녀갔다.

이 마을에 사는 안대훈이라든가 하는 양반이 전에 보성군수도 지나 수사도 지냈다고 하더니 그 첩이 약주와 안주를 하여 와서 다녀갔다.

그 양반이 계에서 우리에게 나무와 이엉을 각각 하여 주라고 하였으나, 말뫼에 있는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상유사라 못한다 하여 동리 사람이 주지 않자, 보성이 노하여 자기 산에 있는 소나무 세 바리 남짓 우리에게 주니, 그래도 서울 왕래하고 벼슬이나 하던 사람이니 그렇게 한 것이다.

 

326

맑았다.

흙당 논을 다섯이 갈았다. 정수와 용수도 갔다.

밥 먹은 뒤에 서울에서 학이가 왔는데 왜란 기별이 그렇게 요란하다고 하고, 천남이도 서울에 그냥 있다고 하고, 박진사도 와서 편지를 보내고 반찬을 가지가지 보내셨다.

세상일이 그러하면 평안도로 마중을 나가고, 급하면 이리로 와서 우리 행차를 데려가는 것처럼 하였으니, 또 어찌 피란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가 하여 갑갑하다.

 

327

맑았다.

학이가 갔다. 영감께 바지를 보내드린 후 이리로 오실까 바라고 있었는데 또 이런 기별을 들으니 마음이 그지없다.

홍판사가 와서 조용히 말씀하시고 소주 네 잔을 잡수시고, 세상일이 어쩔 수 없게 되면 도담으로 가자 하신다.

 

328

꿈에 영감을 뵈었는데, 모든 조카들이 함께 모여 보이니 세상이 태평하여 모두들 모일 꿈인가 한다.

오늘 거리실 논 서 말 반지기 부쳤다.

충이가 서울 갔다가 다녀왔는데 소동이 조금 덜하고 두림이도 선문 오는 모양을 보아 영감께로 가려고 그저 있더라고 한다.

베 두 필에 조기 열여덟 뭇, 베 한 필에 소금 여섯 말을 받아 왔다.

남감찰과 남진사의 편지를 다 보니 반갑다. 박진사는 며칠 있다가 이리로 오겠다고 하더라고 한다.

노루 한 마리를 잡았다.

 

329

맑았다.

흙당 논 여섯 말 반지기를 삶았다.

 

3월 그믐날

맑았다.

집의 총 여섯과 정수 삼 형제, 장남이, 이른개의 남편, 합해서 열세 명이서 거리실 논을 갈았다.

오후에 안첨지의 첩이 꽃지짐하고 약주를 하여 와 보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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