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에 대하여 - 눈오는 바닷가에서 고마움에 대하여 - 눈오는 바닷가에서 한참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다 보았다. 물 밀려나간 바닷가에서 모래 위에 박혀져 있는 흐릿한 내 삶의 자취들. 나를 앞서거니 혹은 내가 앞서거니 깊게 패이는 힘도 떨어지고 작정한 방향도 정확하지 못하게 함께 걷고 있었다. 그래도 또각또각 딛..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2019.02.21
송강을 보러가는 길에 - 영종도 백운산에서 송강을 보러가는 길에 - 영종도 백운산에서 굳이 작정하고 나선 길은 아니었을 겁니다. 푸른 물처럼 깊지 않은 바다와 가을처럼 기름지지 않은 들녘과 눈 가득 높지 않은 산들이 꾸준하게 경계 없이 이어져 있는 이 섬에서 그저 걷다가 무심코 들어온 길이었을 겁니다. 행여 그대처럼 누구..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2018.11.06
단체 사진을 찍으며 단체 사진을 찍으며 - 뒷줄 끝에 계신 분 옆을 보지 말고 앞을 보세요. 남기기 위한 것일까, 남겨기지 위한 것일까. 어색한 몸짓으로 사람들의 오와 열 속에 들어갔다가 나와 주변을 이 시간과 묶어 가늠해 보았다. 함께 지금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인연이 있으리라. 어제 나란히 앉아 같이 ..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2018.10.23
살아감에 대하여 살아감에 대하여 - 영화 '스타 이즈 본'의 대사를 변주하여 잠시 쉬다 가려하고 잠시 머물렀다가 하루 또 하루 더 머물렀다가 가는 길에 어디로 가려 했는지를 잊어버렸거나 머물고 있는 곳이 애초 가려는 곳이었거나 잠시 머물다 가려하고 잠시 쉬었다가 어제 또 오늘 더 쉬었다가 머무..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2018.10.10
중년에 중년에 공원 벤치에 무심히 앉았다가 하나 둘 날리더니 잎파리들이 점점 많이 붉게 바래 무릎 위로 내려 앉아 놀라게 한다 지금 당연히 가을이려니 그러다 보니 이미 저녁인데 노을도 얼굴에서 붉게 물들었다 지난 시간이 부끄러운 듯이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2018.10.02
꽃무릇 꽃무릇 바람 불어 가을이 저 멀리 높아 가는데 걸어온 그리 멀지 않은 길을 잠시 멈추고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꽃 몇 송이와 벗을 한다 흔히 상사화라 하는가 잎을 다 떨구고 나서야 꽃을 피우기에 꽃은 예전 자기 자리에 있었을 무성한 잎을 그리고 예전의 푸른 잎은 앞으로 외롭게 피어..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2018.10.01
영종도 해안북로, 저녁에 영종도 해안북로, 저녁에 하늘이 하도 곱다기에 달려가는 길입니다. 넓은 푸른색을 옅은 바탕으로 해 두고 흰색을 듬뿍 묻혀 큰 붓질을 하였다가 작은 붓으로 붉은 색을 덧칠하려는데 무엇을 밟았는지 덜컹 차가 흔들릴 제 저 구석에 놓아두었던 먹물통이 넘어졌는지 점점 하늘은 검은 색..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2018.05.28
유배지에서 쓰는 편지 - 세한도를 보며 유배지에서 쓰는 편지 - 세한도를 보며 얼마나 더 서늘해져야 나를 나로 온전하게 할 수 있으리오. 바람 나뭇가지 파고드는 소리 듣지 않고 눈발 들창 때리는 울림 그대로 흘리면서 바람과 눈발에 나를 섞어 가되 바람도 눈발도 아닌 나로 남아 나를 온전하게 할 수 있으리오. 파도 포말 위..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2018.05.08
북쪽을 앞에 두고 누우신 아버지께 북쪽을 앞에 두고 누우신 아버지께 - 2018.04.27 떠나오신 지 한 갑자(甲子)가 넘어 그곳과의 거리를 가늠하다 결국은 줄이지 못해 생채기가 된 세월의 두께에 눌려 오히려 그곳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 시간을 잊고 누우셨습니다. 차가운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봄이 되려나요. 뗏장이..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2018.05.01
사월, 서설 사월, 서설 흰눈처럼 분분하게 꽃잎이 날리더니만 굳이 시간으로 앞뒤를 갈라두는 게 무엇이냐고 굳이 이것이냐 저것이냐 나누는 게 무엇이냐고 꽃잎처럼 천연하게 흰눈이 날리더이다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2018.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