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을 보러가는 길에
- 영종도 백운산에서
굳이 작정하고 나선 길은 아니었을 겁니다.
푸른 물처럼 깊지 않은 바다와 가을처럼
기름지지 않은 들녘과 눈 가득 높지 않은 산들이
꾸준하게 경계 없이 이어져 있는 이 섬에서
그저 걷다가 무심코 들어온 길이었을 겁니다.
행여 그대처럼 누구를 만나러 온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 산 이름이 백운이라는 것을 떠 올리니
걷다가 조금 오르다 보면 문득 저 앞 너른 바위에서
잠시 앉아 곤한 지팡이를 쉬게 하는
가을 산에 취한 듯한 그대를 만날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왜 그대이냐면
그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떡갈나무 이파리 느티나무 이파리 솔잎까지
걸음마다 부서지고 발길 뒤로 뭉쳐지는 소리 들으며
조금씩 더 조금씩 산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산허리를 지난다고 여겼는데 이미 산마루입니다.
하늘이 갑자기 나무 위에 걸려 있습니다.
나무들이 여위어서 파랗고 기름지고 높았습니다.
땀도 흐르지 않았지만 잠시 쉬기라도 할까요.
백운이어도 산은 구름 한 점 보여주지 않고
거문고 소리 같은 바람조차 섞여오지 않는데도
오늘은 꽤나 천연한 달이 밝게 오를 것 같습니다.
혹여 이 근처 어디쯤인가 그대 지은 高學士 草堂이 있어
낚싯대 메고 나간 그대를 혹여 기다릴 것도 같습니다.
만일 주인 없다 해도 잘 새가 깃들 듯이 찾아가서
술 익었다고 내 그대를 기다려 보는 것을 어떨까요.
그대야 나인 줄 모를 지라도 내 그대를 좇으려
조금 더 걷기로 하는데
그런데 이런, 걸음을 너무 재촉하였는지
길은 내려오는 길입니다. 달은 아직 뜨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의 마을 너머로 물 빠진 바다까지 멀리 보입니다.
아쉽지만 다행인가요.
그대처럼 술을 많이 좋아하지 못하기에.
굳이 작정하고 찾아가려 했던 길이 아니었기에.
걸음과도 같은 내 삶이 이 섬을 닮아버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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