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교육대8 - 행렬 가을 들녘 넉넉한 이삭을 헤치고 우리는 어깨의 소총이 힘겹게 어딜 향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끝 없는 길을 나아갑니다. 군가를 부르다가 목이 메인 가래침 힘있게 배앝아도 보지만 추한 타액은 군복 위로 떨어지고 누렇게 흙범벅이 된 땀내나는 그 옷에서 쉬이 구별할 수 없습니다. 훈련..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89년~91년 2013.02.19
신병교육대7 - 사격장에서 풍경은 익어가는 살찐 가을로 잠자리 두마리 즐거운 교미 하늘거리는 들국화 몇 송이 그리고 동화책 몇 페이지처럼 푸른 하늘과 흰 구름 몇 조각 인간이라는 거추장스러운 허물을 다 벗어버리고 풍경에 취하고 싶다. 가진 것 모두 원하는 이들에게 던져주고 그저 황홀하게 이 땅에 눕고 ..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89년~91년 2013.02.19
신병교육대6 - 비오는 날 훈련병에게도 험한 비는 감상인가 먼 과거의 추억 속에서 그려내는 사치스러운 상상인가 일요일 오전 끙끙거리며 그네에게 편지를 쓰고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에서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훈련병에게도 쓸쓸함이 존재하는가 앞산 중턱에 잿빛 구름이 걸려 있다. 구름 밑으로 비에 젖는 ..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89년~91년 2013.02.19
신병교육대5 - 퇴소식 사내들의 땀과 함성만이 그득하던 철원, 깊은 산골에서 우리는 낯선 사람들을 보다. 제복을 입지 않고, 긴 머리 자랑하는 그리고 짧은 치마 아래 흰 종아리 눈부신 사람들, 저들은 사제인간 저들 치마속 향내 짙은 바람에 한순간 뭐가 올라오는 듯, 울컥울컥 인솔자의 구령을 듣지 못한다...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89년~91년 2013.02.19
신병교육대4 - 아침점호 아침. 덜 깬 잠의 함성이 둘러막힌 산벽에 부딪히고 그것이 다시 내게로 달려올 때, 고단한 한 하루가 시작됬다는 것을 느낄 듯도 하다. 여기는 어디인가. 하루가 진정 시작되는 것인가. 간밤 처량한 비를 쏟고 산중턱으로 물러난 구름조각이 잿빛으로 보일 때, 아침점호. 고향에 대한 ..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89년~91년 2013.02.19
신병교육대3 - 한가위 날에 밝은 보름달을 볼 수 없다. 오늘이 한가위인데도 하늘은 검게 그늘을 지운채 끊임없이 비만 내리고 그 어둠에 홀로 서서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 비에 젖은 훈련병 보고 싶은 얼굴을 볼 수 없다. 오늘이 한가위인데도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89년~91년 2013.02.19
신병교육대2 - 휴식 시간에 흙먼지 풀풀 이는 연병장 그 구석에 쭈그리고 담배물고 피어오르는 백자연기를 물끄러미 지켜보다. 지나온 세월은 하얗게 일어나는 먼지만큼이나 작겠지. 지나야 할 시간은 이 넓은 연병장처럼 넓고 넓겠지. 감상이 필요없는 곳이다. 흘린 땀이 푸른 군복에 배고 또 배이고 다시 안경 아..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89년~91년 2013.02.19
신병교육대1 - 개울가에서 별 부끄러움도 잊고 냇가에 쭈그리고들 앉아 그곳을 드러낸 젊은이들이 있다. 이미 수치라는 것은 저 기억 속에 두고 하루 종일의 땀이 닦이는 것이 그저 즐거운 단순한 젊은이들 복잡함을 잊은 피곤한 이들이 있다. 검게 그을린 벌거숭이들 틈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조국..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89년~91년 2013.02.19
거울 거의 낯설은 모습으로 상실해가는 힘겨운 미소가 있다. 무엇일까, 저기 서 있는 얼굴은 잃어버린 과가를 찾으려는 또 하나의 몸짓 저 먼데로 향하는 애절한 그리움 같은 그런 것인가, 하지만 허물어지려는 듯 형체를 겨우 지탱한 그네에 나 역시 똑같은 흉내를 지을 밖엔 없고 안타까움은..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89년~91년 2013.02.19
마지막 불빛이 닫혀버리고 마지막 불빛이 닫혀버리고 이역의 땅에 남겨진 이들은 이미 그대를 기억 못하나 다를 게 없는 거라고 어제처럼 오늘도 흘러갈 거라고 반복되는 수없는 메아리 속에 이미 그대를 기억 못하나 날 저물기 전 미처 끝내지 못했던 우리의 말들 지금 멀리 떠나 차가운 바닥에 두 무릎을 꿇리우.. 자작시와 자작소설/시; 89년~91년 2013.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