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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익어가는 살찐 가을로
잠자리 두마리 즐거운 교미
하늘거리는 들국화 몇 송이
그리고 동화책 몇 페이지처럼
푸른 하늘과 흰 구름 몇 조각
인간이라는 거추장스러운 허물을 다
벗어버리고 풍경에 취하고 싶다.
가진 것 모두 원하는 이들에게 던져주고
그저 황홀하게 이 땅에 눕고 싶다.
소박하고 깨끗하게
그러나, 우리가 들고 있는 것은
밭가는 쟁기가 아니라
우리가 걸치고 있는 것은
풍요로운 철원평야의 가을이 아니라
우리가 흘리고 있는 땀은
수확을 맞는 기쁜 숨가뿜이 아니라
멀리 고향을 등진 이들이 모여서
피티 준비, 하나 둘 셋 하나
조준선 정렬, 좌선 우선 사격준비
우리의 모든 것을 표적판을 향해
왜 낯선 언어에
아름다운 이성을 맡겨야 하는가
여기는 아름다운 땅인데
푸른 아우슈비츠의 행렬을 만들고
먼 이방의 땅에서나 들을 수 있는
천둥소리를 지어내는가
손에 들린 싸늘한 쇠붙이
정녕 이 금속을 애인으로 사랑하여야 하나
남쪽 그네의 얼굴과 바꾸어야 하나
푸른 제복들은 생각을 제한받는다.
상상의 인간을 표적에 그려내고
쏘아야 하는가 아닌가의
두 갈림길에서
손가락 마디에 힘을 가해야만 한다.
철원
누렇게 벼이삭이 제 몸을 주체 못하고
그 아래 깊은 골, 맑은 계곡이
멀리멀리 흘러가는
가을의 철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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