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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미어를 보고 와서
핵폭탄
박경리
핵폭탄 한 개
천신만고의 산물인 그 한 개
좌판에 달랑 올려놓고
행인을 물색하는
노점상의 날카로운 눈초리
고독한 매와 같다
하기야 그것이
한 개이면 어떻고 천 개이면 어떠한가
터질 듯 기름진 거상이건
초췌한 몰골의 영세상이건
신념은 같은 것
죽음의 조타수임에 다를 바 없지
문명의 걸작이며
승리의 금과옥조
세계를 쥐고 흔든다는 것은
죽음을 지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죽음의 행진 은밀한 그 발자욱 소리
죽음의 향연, 옥쇄를 앞둔 술잔
죽음의 난무, 멈출 수 없는 분홍신의 춤
미쳐서 세상이 보이지 않는 무리에게는
처참하고 웅대한 멸망의 서사시야말로
황홀한 꿈의 세계일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파리 운동장이 된 굶주린 아이들 얼굴
주마등같이 지나가는
저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보다
핵무기는 귀하고 귀한 것이 되었고
유구한 세월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인류 각고의 유산보다
핵무기는 값지고 또 값진 것이 되었고
오대양 육대주
생명이란 생명 모두 전율하게 되었으니
이 보다 확실하게 끝내 주는
지배가 어디 또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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