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 372

정축년(1637) - 11월

동짓달 큰달 을축 초하루 맑았다. 김포의 남서방이 밥 먹은 뒤에 갔다. 11월 2일 맑았다. 사곡 어머님 생신 다례를 형님 댁에 가 지내고, 이어서 형님댁에서 중명 씨 생일이라고 삼등댁과 다 모여서 약주를 먹었다. 수야가 금산 갔더니 금산에서 고리, 키, 장 두 말, 꿀 두 되, 포육 두 접, 말린 꿩 고기 세 마리를 보내셨다. 여러 번째니 비록 내 사촌님이시나 어려워서 동지에 쓸 술만 빚어 심부름꾼에 보내시고, 간장까지 지워 보내시니, 내 사촌님이시니 어려운 줄을 깨닫지 못하겠다. 11월 3일 종일 비가 내리고 밤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11월 4일 맑았다. 꿈에 문밖 어머니 뵈옵고, 영감도 계속하여 보이니 나오시는가 바라도다. 11월 5일 흐렸다. 만 리 밖에 가 계신데도 꿈마다 모여 보이니 내 정..

정축년(1637) - 10월

시월 큰달 을미 초하루 흐렸다. 10월 2,3일 맑았다. 별좌의 제사를 지내니 나의 설움이야 끝이 없으니,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리. 제사를 지낼 사람도 없어서 남진사와 조창하가 제사에 참례하고, 신주를 보니 숨이 막히는 듯하고 정신이 아득하기만 하니, 세월이라 가나 어느 때 어느 날에나 잊을까. 어여쁘던 얼굴이 생생하여 그리운 일만 생각하면 간담이 쪼개지는 듯, 베어지는 듯, 아이고, 꿈에나 나타나 보이라 하고 경계하며 눈물을 흘리며 지내나, 한번 꿈속에도 보이지를 않으니 그리워라. 저인들 혼백이 있으면 늙은 어미를 아니 생각하랴마는, 이승과 저승이 다른지라 그런가 하여 더욱 설워하노라. 벌써 오 년이 장차 되어가니 흐르는 세월이 누구를 위하여 머물꼬. 10월 4일 흐렸다. 꿈에 영감을 보았다. 또..

정축년(1637) - 9월

구월 작은달 병인 초하루 맑았다. 9월 2,3,4일 맑았다. 홍진사가 김제에서 와서 아침 식사 후에 갔다. 이진규 씨가 송생원 댁 행차를 모시고 왔다고 한다. 목래선이 급제하였다 하고, 관주인이 오는 길에 심양에서 7월 25일에 하신 편지를 가지고 왔다. 9월 5일 맑았다. 조엄 오라버님이 홍산으로부터 오시니 반갑기를 다 이르랴. 둘이 울다가 관판을 내러 무주로 가신다고 하면서 그날 가셨다. 쌀 두 말, 민어 한 마리를 가져다 주셨다. 9월 6일 맑았다. 오늘이 나의 대기일이라 끝없는 정만 자꾸 생각하노라. 밤중에 천둥 벼락을 하더니 비가 왔다. 조창우가 서울을 다녀서 이리로 오니, 난리 후에 다들 무사하여 만나보니 아무런 일이 없고, 조상들 덕분으로 이런가, 매우 다행한 일이로다. 밤이 깊도록 말을 하..

정축년(1637) - 8월

팔월 큰달 초하루 비가 왔다. 8월 2일 맑았다. 8월 3,4일 흐렸다. 진사가 계성에 갔다 다녀왔는데, 한쪽에서 귀신 소동이 다 진동하더라 한다. 8월 5,6일 가끔 비 오고, 가끔 맑았다. 목감역 댁이 서울로 가셨다. 8월 7일 맑았다. 추석 제사도 지나고 심양 갈 일도 듣고 보려고 천남이가 서울로 갔다. 임천 생원도 갔다. 조별좌와 조진사가 부안에서 와서 점심 후에 조진사는 가고 별좌는 남았다. 남원의 정비장이 왔다. 8월 8일 맑았다. 별좌가 청주로 갔다. 이날 귀생이가 곽란하였다. 8월 9일 맑았다. 귀생이가 죽으니 그런 놀라운 일이 없다. 무명 한 필을 줬다. 8월 10일 충이가 서울에서 왔다. 8월 11일 흐렸다. 8월 12,13,14일 가끔 비가 오고 맑았다. 정수와 장남이가 충주에서 왔다..

정축년(1637) - 7월

칠월 작은달 정묘 초하루 맑았다. 7월 2일 기송이가 남원으로 갔다. 보령의 김생원이 왔다. 난리 후에 만나게 되니 반갑기가 그지없다. 7월 3일 맑았다. 임천 나리께서 와보고 가셨다. 두림이가 회덕에 다녀왔다. 심양에서 이참의가 지난 달 12일에 보낸 편지는 왔으나, 우리 편지는 안 왔으니 답답하고 갑갑하다. 7월 4,5일 가끔 맑고 소나기가 왔다. 7월 5일 흐렸다. 7월 6일 양조모 기제사를 지냈고, 김생원이 보령으로 갔다. 7월 7일 비가 왔다 7월 8일 흐렸다. 7월 9일 아침에 흐렸다가 늦게야 개었다. 7월 10,11,12일 맑았다. 이날 밤에 소나기가 왔다. 7월 13일 비가 왔다. 애남이가 심양 갔다가 내려오니, 자세한 기별을 듣고 영감의 편지를 보니, 기운이 그만하여 계시다고 하니 천만다..

정축년(1637) - 6월

유월 작은달 무술 초하루 맑았다. 6월 2일 맑았다. 이사인 댁에 사람이 가거늘, 심양 갈 담배 여섯 덩이와 편지를 보냈다. 6월 3,4일 맑았다. 장에 가서 보리 다섯 필을 팔았다. 6월 5일 흐렸다. 천남이는 남원으로, 의봉이는 함양으로 갔다. 목경주댁이 남원에서 서울로 가셨다. 6월 6일 맑았다. 윤좌랑의 별실이 다녀갔다. 6월 7일 꿈에 영감을 뵈었다. 가져가신 거울을 서로 보며 반기니 쉽게 나오시는 일이로다 하고 혼자 해몽을 하여 본다. 6월 8,9일 맑았다. 서학골 댁이 청주로 가시니 난추가 하룻길까지 모시고 갔다. 저녁에 의주 댁에 내려갔다. 6월 10일 맑았다. 목지평의 편지가 서울에서 남원으로 가는 사람에게 오니, 사신 앞의 선래에 5월 20일에 보낸 이참의의 편지를 보고 대강의 문안은 ..

정축년(1637) - 5월

오월 큰달 5월 초하루 비가 많이 왔다. 5월 2,3일 맑았다. 조별좌가 상주에 갔다 다녀서 이리로 왔다. 5월 4일 맑았다. 별좌가 갔다. 5월 단오일 맑았다. 하도 섭섭하여 술과 과일과 떡을 하여 차례를 지냈다. 형님, 아우님, 젊으신 이들이 다 와서 모두 다녀갔다. 5월 6,7일 맑았다. 의주 댁 형님이 오라고 하셔서 가 뵈었다. 5월 9일 흐렸다. 이날 거처로 왔다. 꿈에 영감을 뵈오니 하도 야위어 보이시니, 염려하며 멀리 생각하시는 정이 그지없어 한다. 5월 10일 가끔 맑고 가끔 흐렸다. 맏생원과 진사가 서울 갔다가 다녀오시니, 심양 교체한다는 말이 거짓말이더라 하니, 어느 달 어느 날을 정하여 기다릴까. 광주의 제사는 무사히 지내고 오셨다. 5월 11,12일 종일 비가 왔다. 이날 밤에는 큰..

정축년(1637) - 윤4월

윤사월 기해 초하루 맑았다. 윤4월 2일 맑았다. 윤4월 3일 비가 왔다. 윤4월 4일 맑았다. 의주 댁에 갔다가 다녀왔다. 이산의 눈솔이가 공목 두 필과 떡을 하여 왔다. 그래도 부리던 종이니 다르다. 윤4월 5일 맑았다. 장생원께서 조기 한 뭇과 마늘을 보내었다. 전라병사 오는 데 이좌랑이 문안을 잊지 말고 전해달라고 하였다. 윤4월 6일 일봉이가 천남이를 데리러 남원으로 갔다. 신평 유생원과 오라버님이 오시니 반갑다. 윤4월 7일 새문 밖의 사촌님이 한산에 피란하여 와 계시나가 금산에서 모셔가는데, 길이 멀건마는 날 보러 들어오시니 반갑고, 한서방 일 때문에 하도 슬퍼하시니 그지없고, 의주댁 형님의 집안사람으로 친척이시고 한서방의 삼촌이시니, 우리 형제와 이좌랑댁이 다 어울려 의주 댁에 다녀왔다. ..

정축년(1637) - 4월

사월 작은달 을사 경자 초하루 맑았다. 남진사댁이 계성에서 오시니, 그 사이에 떠났다가 만나니 반갑다. 저녁 먹은 후에 닭잣골로 넘어가셨다. 4월 2일 맑았다. 이진규가 넘어와 보고 갔다. 남감찰이 진위로 간다고 다녀가시다. 박진사와 일봉이가 서울로 가니, 심양으로 보낼 모시 철릭, 모시 겹옷, 홑옷, 겹바지와 적삼, 속옷, 누비 베오라기, 버선을 보자기에 싸고, 후복이의 겹옷과 적삼을 하여 가지고 갔다. 4월 3일 맑았다. 이열 씨가 임천으로 가는 길에 다녀가셨다. 진사와 두륙이와 중소와 두림이가 앞 내에서 천렵한다고 모였다. 4월 4일 맑았다. 이보덕 행차에 갔던 종 회배가 돌아왔기에 평안히 가셨다는 기별을 듣고, 남생원에게 하신 편지와 종들에게 보낸 패자를 하셔서, ‘일가 행차 가는 곳에 곡식들을 ..

정축년(1637) - 3월

삼월 큰달 갑진 경자 초하루 이날 여산의 종 후명이, 수길이, 귀생이가 말 두 마리를 가져왔다. 3월 6일 보령의 영문이가 왔는데 주서댁이 입던 저고리하고 속옷 지어 청어와 감장을 하여 보내었다. 3월 8일 진사댁이 계성에서 해산하셨다 한다. 3월 9일 조별좌가 부안에 피란 가 있다가 우리가 게 간 기별 듣고 찾아오니 반가움을 정하지 못하리라. 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지 못하다가 만나보니 그지없는 정회를 다 이르랴. 충주로 가려 하니, 여러 날 길을 가기도 민망하고, 아기네만 데리고 어찌할까 걱정이고, 가도 게서 초대도 없으면 그것도 민망하고, 혼자 가서 견디어 낼 일도 아득하고, 의주 댁 형님이 여산에 계신다고 하니 보덕의 기별 올 적에 함께 가 지내려 했다. 3월 11일 형님은 행차하고 그곳을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