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열녀춘향수절가 24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I. 이별 (4/4)

라. 앉았은들 임이 오며 누웠은들 잠이 오랴 이때 춘향이 하릴없어 자던 침실로 들어가서 “향단아. 구슬발 걷고 자리 밑에 베개 놓고 문 닫아라. 도련님을 살아서 만나보기 아득하니 잠이나 들면 꿈에 만나 보자. 예로부터 이르기를 꿈에 와 보이는 임은 믿음이 없다고 일렀건만 답답히 그릴진대 꿈 아니면 어이 보리.” 꿈아 꿈아. 네 오너라. 첩첩이 쌓인 근심 한이 되어 꿈에 들지 못하면은 어이하랴.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인간 이별 모든 일 중에서 홀로 있는 빈방이 더욱 섧다. 그리워도 못 보는 이내 마음 그 뉘라서 알아주리. 미친 마음 이런저런 흐트러진 근심 후려쳐 다 버려두고 자나 누우나 먹고 깨나 임 못 보아 가슴 답답 어리는 고운 모습 고운 소리 귀에 쟁쟁 보고 지고 보고 지고 임의 얼굴 보고 지고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I. 이별 (3/4)

다. 도련님, 인제 가면 언제나 오시려오 서로 피차 기가 막혀 애틋한 그리움에 이별 못 떠날지라. 도련님 모시고 갈 뒤따르는 사령이 나올 적에 헐떡헐떡 들어오며 “도련님 어서 행차하옵소서. 안에서 야단났소. 사또께옵서 도련님 어디 가셨느냐 하옵기에 소인이 여쭙기를 놀던 친구 작별차로 문밖에 잠깐 나가셨노라 하였사오니 어서 행차하옵소서.” “말 대령하였느냐?” “말 마침 대령하였소.” 흰 말은 떠나자고 길게 우는데 여인은 안타까워 옷깃을 잡는구나. 말은 가자고 네 굽을 치는데 춘향은 마루 아래 툭 떨어져 도련님 다리를 부여잡고 “날 죽이고 가면 가지 살리고는 못 가고 못 가느니.” 말 못하고 기절하니 춘향 모 달려들어 “향단아 찬물 어서 떠오너라. 차를 달여 약 갈아라. 네 이 몹쓸 년아 늙은 어미 어쩌려..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I. 이별 (2/4)

아무리 대장부인들 일각이나 잊을쏘냐 한참 이리 진이 빠지도록 섧게 울 제 춘향 모는 까닭도 모르고, “애고. 저것들 또 사랑싸움이 났구나. 어 참 아니꼽다. 눈구석 쌍 가래톳 설 일 많이 보네.” 하고 아무리 들어도 울음이 장차 길구나. 하던 일을 밀쳐 놓고 춘향 방 영창 밖으로 가만가만 들어가며 아무리 들어도 이별이로구나. “허허, 이것 별일 났다.” 두 손뼉 땅땅 마주치며 “허 동네 사람 다 들어 보오. 오늘날로 우리 집에 사람 둘 죽습네.” 어간마루에 섭적 올라 영창문을 뚜드리며 우루룩 달려들어 주먹으로 겨누면서, “이년 이년, 썩 죽어라. 살아서 쓸데없다. 너 죽은 시체라도 저 양반이 지고 가게. 저 양반 올라가면 뉘 간장을 녹이려냐. 이년 이년, 말 듣거라. 내 날마다 이르기를, ‘후회하기 쉽느..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I. 이별 (1/4)

III. 이별 가. 만번이나 맹세키로 내 정녕 믿었더니, 이때 뜻밖에 방자 나와 “도련님. 사또께옵서 부르시오.” 도련님 들어가니 사또 말씀하시되 “여봐라 서울서 동부승지 교지가 내려왔다. 나는 문서와 장부를 조사하고 처리하고 갈 것이니, 너는 어머님을 모시어서 내일로 떠나거라.” 도련님 아버지 명을 듣고 한편으로 반갑고 한편으로 춘향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여 사지에 맥이 풀리고 간장이 녹는 듯, 두 눈으로 더운 눈물이 펄펄 솟아 옥 같은 얼굴을 적시거늘. 사또 보시고, “너 왜 우느냐? 내가 남원을 일생 살 줄로 알았더냐. 조정 안으로 승진되니 섭섭히 생각 말고 금일부터 행장을 꾸리고 절차를 급히 차려 내일 오전으로 떠나거라.” 겨우 대답하고 물러 나와 관아 내로 들어가 사람이 위 아랫사람을 막론하..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5/5)

마. 내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나를 업어야지 춘향이 반만 웃고 “그런 잡담은 마시오.” “그게 잡담 아니로다. 춘향아 우리 둘이 업음질이나 하여보자.” “애고 참 잡스럽고 상스러워라. 업음질을 어떻게 하여요.” 업음질 여러 번 해 본 것처럼 말하던 것이었다. “업음질 천하 쉬우니라. 너와 나와 훨씬 벗고 업고 놀고 안고도 놀면 그게 업음질이지야.” “애고 나는 부끄러워 못 벗겠소.” “에라 요 계집아이야 안 될 말이로다. 내 먼저 벗으마.” 버선, 대님, 허리띠, 바지, 저고리 훨씬 벗어 한 편 구석에 밀쳐 놓고 우뚝 서니 춘향이 그 거동을 보고 삥긋 웃고 돌아서며 하는 말이 “영락없는 낮도깨비 같소.” “오냐 네 말 좋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짝 없는 게 없느니라. 두 도깨비 놀아보자.” “그러면 불..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4/5)

라. 사랑사랑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춘향과 도련님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 지는 햇볕을 받으면서 삼각산 제일봉의 봉황과 학이 앉아 춤추는 듯, 두 팔을 휘어질 듯 굽게 들고 춘향의 가냘프고 고운 손이 겨우 겹쳐 잡고 의복을 공교하게 벗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 가는 허리를 담쏙 안고, “적삼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 제, 이리 곰실 저리 곰실 푸른 물의 붉은 연꽃에 잔잔한 바람 만나 꼼지작거리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제쳐놓고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실랑이질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 청룡이 굽이를 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 될 말이로다.” 실랑이 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끼어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3/5)

다. 우리 둘이 이 술을 혼인 술로 알고 먹자 춘향 어미 이 말 듣고 이윽히 앉았더니 꿈꾼 일이 있는지라 연분인 줄 짐작하고 기쁘게 허락하며, “봉이 나매 황이 나고, 장군 나매 용마 나고, 남원에 춘향 나매 봄바람에 오얏꽃이 꽃다웁다. 향단아, 술상 준비하였느냐?” “예.” 대답하고 술과 안주를 차릴 적에 안주 등등을 볼 것 같으면 괴임새도 정결하고, 대양푼 가리찜, 소양푼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나는 매추리탕에 동래 울산대전복을 거북 등껍질 장식한 잘 드는 칼로 맹상군의 눈썹처럼 비슷비슷하게 오려 놓고, 염통 산적, 양볶이와 봄에 절로 우는 꿩의 생다리, 적벽 대접 분원기에 냉면조차 비벼놓고, 생밤, 찐밤 잣송이며 호도, 대추, 석류, 유자, 말린 감, 앵두, 탕그릇 같은 청술레를 칫수에..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2/5)

나. 대장부 먹은 마음 박대할 일 있을쏘냐 이때 이도령은 퇴령 놓기를 기다릴 제, “방자야.” “예.” “퇴령 놓았나 보아라.” “아직 아니 놓았소.” 조금 있더니 하인 물리라 퇴령 소리 길게 나니, “좋다 좋다. 옳다 옳다. 방자야. 등롱에 불 밝혀라.”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춘향의 집 건너갈 제 자취 없이 가만가만 걸으면서 “방자야 사또 계시는 방에 불 비친다. 등롱을 옆에 껴라.” 삼문 밖 썩 나서 좁은 길 사이에 달빛이 찬란하고, 꽃 핀 사이에 푸른 버들 몇 번이나 꺾었으며, 닭싸움하는 아이들도 밤에 기생집에 들었으니 지체 말고 어서 가자. 그렁저렁 당도하니 애닯도다, 오늘 밤이 적막한데 여인을 만나는 좋은 때가 이 아니냐. 가소롭다 고기 잡는 사람들은 별천지를 모르던가. 춘향의 집 문 앞에 당도..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 사랑 (1/5)

II. 사랑 가. 방자야, 아직 해가 어느 때나 되었느냐 이때 도련님이 춘향을 급히 보낸 후에 도저히 잊을 수 없어 책방으로 돌아와, 모든 일에 뜻이 없고 다만 생각이 춘향이라. 말소리 귀에 쟁쟁 고운 태도 눈에 삼삼. 해지기를 기다릴 새, 방자 불러, “해가 어느 때나 되었느냐?.” “동에서 아귀 트나이다.” 도련님 크게 화를 내어 “이놈 괘씸한 놈. 서쪽으로 지는 해가 동쪽으로 도로 가랴. 다시금 살펴보라.” 이윽고 방자 여쭈오되 “해가 서쪽 바다로 떨어지고, 황혼 되고 달이 동쪽 고개에서 나옵내다.” 저녁밥이 맛이 없어 잠이 오지 않아 엎치락뒤치락 어이 하리. 퇴령을 기다리려 하고 서책을 보려 할 제, 책상을 앞에 놓고 서책을 자세히 읽는데, ≪중용≫, ≪대학≫, ≪논어≫, ≪맹자≫, ≪시전≫,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 만남 (4/4)

라. 잘 가거라 오늘 밤에 우리 서로 만나보자 춘향이가 그제야 못 이기는 체로 겨우 일어나 광한루 건너갈 제 대명전 대들보의 칼새 걸음으로, 양지 마당의 씨암탉걸음으로 백모래 바다 금자라 걸음으로 달 같은 모습 꽃 같은 얼굴로 고운 태도로 느릿느릿 건너갈 새 흐늘흐늘 월나라 서시가 토성애서 배우던 걸음으로 흐늘거려 건너올 제 도련님 난간에 절반만 비껴 서서 부드럽게 바라보니 춘향이가 건너오는데 광한루에 가까운지라. 도련님 좋아라고 자세히 살펴보니 요염하고 정숙하여 달 같은 모습 꽃 같은 얼굴이 세상에 둘이 없음이라. 얼굴이 아름답고 깨끗하니 맑은 강에 노는 학이 눈 속에 비치는 달 같고 붉은 입술과 흰 이를 반쯤 여니 별도 같고 옥도 같다. 연지를 품은 듯, 자줏빛 치마 고운 태도 어린 안개 석양에 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