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I. 이별 (2/4)

New-Mountain(새뫼) 2020. 7. 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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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대장부인들 일각이나 잊을쏘냐

 

한참 이리 진이 빠지도록 섧게 울 제 춘향 모는 까닭도 모르고,

“애고. 저것들 또 사랑싸움이 났구나. 어 참 아니꼽다. 눈구석 쌍 가래톳 설 일 많이 보네.”

하고 아무리 들어도 울음이 장차 길구나. 하던 일을 밀쳐 놓고 춘향 방 영창 밖으로 가만가만 들어가며 아무리 들어도 이별이로구나.

“허허, 이것 별일 났다.”

두 손뼉 땅땅 마주치며

“허 동네 사람 다 들어 보오. 오늘날로 우리 집에 사람 둘 죽습네.”

어간마루에 섭적 올라 영창문을 뚜드리며 우루룩 달려들어 주먹으로 겨누면서,

“이년 이년, 썩 죽어라. 살아서 쓸데없다. 너 죽은 시체라도 저 양반이 지고 가게. 저 양반 올라가면 뉘 간장을 녹이려냐. 이년 이년, 말 듣거라. 내 날마다 이르기를, ‘후회하기 쉽느니라. 주제넘은 거만한 마음 먹지 말라.’고.

여염집 사람 가리어서 집안 형편, 지체 너와 같고 재주 인물이 모두 너와 같은, 봉황의 짝을 얻어 내 앞에 노는 양을 내 눈으로 보았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지. 마음이 높은 체하여 남과 유별로 다르더니 잘 되고 잘 되었다.”

두 손뼉 꽝꽝 마주치면서 도련님 앞에 달려들어

“나와 말 좀 하여봅시다. 내 딸 춘향을 버리고 간다 하니 무슨 죄로 그러시오. 춘향이 도련님 모신 지 거의 일 년 되었으되, 행실이 그르던가, 예절이 그르던가, 바느질이 그르던가 말이 순하지 않던가, 잡스러운 행실 가져 길옆의 버드나무나 담장 위의 꽃처첨 음란하던가. 무엇이 그르던가. 이 봉변이 웬일인가. 군자 숙녀 버리는 법 칠거지악 아니면은 못 버리는 줄 모르는가. 내 딸 춘향 어린 것을 밤낮으로 사랑할 제, 안고 서고 눕고 지며 백년 삼만 육천 일에 떠나 살지 말자 하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어루더니, 끝내 가실 제는 뚝 떼어 버리시니, 버들가지가 천만 개인들 가는 봄바람을 어이 하며, 꽃이 떨어져 낙엽 되면 어느 나비가 다시 올까.

백옥 같은 내 딸 춘향 꽃 같은 얼굴과 몸도 부득이 세월에 장차 늙어져 붉은 얼굴이 흰 머리 되면 그때의 시절이여 다시 오지 않는구나. 다시 젊어지지 못하나니 무슨 죄가 무거워서 헛된 시간 백년을 보내리까. 도련님 가신 후에 내 딸 춘향, 임 그릴 제 달이 맑고 밝은 한밤중에 야삼경에 첩첩이 쌓인 근심, 어린 것이 가장 생각 절로 나서 초당 앞 꽃 계단 위에서 담배 피워 입에다 물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불꽃 같은 시름과 그리움이 가슴속에서 솟아나, 손 들어 눈물 씻고 후유 한숨 길게 쉬고 북편을 가리키며,

‘한양 계신 도련님도 나와 같이 그리시는가, 무정하여 아주 잊고 한 장 편지 아니 하신가.’

긴 한숨에 떨어지는 눈물 고운 얼굴 붉은 치마 다 적시고, 저의 방으로 들어가서 의복도 아니 벗고 외로운 베개 위에 벽만 안고 돌아누워 밤낮으로 긴 탄식하며 우는 것은 병 아니고 무엇이오. 시름 그리움에 깊이 든 병 내 구하지 못하고서 원통히 죽게 되면 올해 칠십 먹은 늙은 것이 딸 잃고 사위 잃고 태백산 갈까마귀 게발 물어다 던지 듯이,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이내 몸이 뉘를 믿고 살자는 말인고. 남 못할 일 그리 마오. 애고 애고, 설운지고. 못하지요. 몇 사람 신세를 망치려고 아니 데려가오. 도련님 대가리가 둘 돋쳤소. 애고 애고, 무서워라. 이 쇠처럼 단단한 사람아.”

왈칵 뛰어 달려드니 이 말 만일 사또께 들어가면 큰 야단이 나겠거든,

“여보소 장모. 춘향만 데려갔으면 그만 두겠네.”

“그래 아니 데려가고 견뎌낼까.”

“너무 거세게 굴지 말고 여기 앉아 말 좀 듣소. 춘향을 데려간 대도 가마 쌍교 말을 태워 가자 하니, 마침내는 이 말이 날 것인즉 달리는 처리할 수 없고, 내 이 기가 막히는 중에 꾀 하나를 생각하고 있네마는, 이 말이 입 밖에 나서는 양반 망신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선조 양반이 모두 망신할 말이로세.”

“무슨 말이 그리 대단한 말이 있단 말인가?”

“내일 어머님이 나오실 제 내행 뒤에 신주의 사당도 나올 테니 어머님은 내가 모시겠네.”

“그래서요.”

“그만하면 알지.”

“나는 그 말 모르겠소.”

“신주는 모셔내어 내 창옷 소매에다 모시고, 춘향은 요여에다 태워 갈 밖에 수가 없네. 걱정 말고 염려 마소.”

춘향이 그 말 듣고 도련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마소 어머니. 도련님 너무 조르지 마소. 우리 모녀 평생 신세 도련님 손바닥 안에 매었으니 알아 하라 당부나 하오. 이번은 아마도 이별할밖에 수가 없네. 이왕에 이별이 될 바에는 가시는 도련님을 왜 조르리까마는 우선 갑갑하여 그러하지. 내 팔자야. 어머니 건넌방으로 가옵소서. 내일은 이별이 될 텐가 보오.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이별을 어찌할꼬. 여보 도련님.”

“왜야.”

“여보 참으로 이별을 할 테요.”

촛불을 돋워 켜고 둘이 서로 마주 앉아 갈 일을 생각하고 보낼 일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 한숨질 눈물겨워 슬픔에 목이 메에 흐느껴 울면서, 얼굴도 대어보고 팔다리도 만져보며,

“날 볼 날이 몇 밤이오. 애달파 나쁜 수작 오늘 밤이 마지막이니 나의 설운 하소연을 들어보오. 나이 육십에 가까운 나의 모친 일가친척 전혀 다만 외동딸 나 하나라. 도련님께 의탁하여 귀하게 될까 바랐더니 조물주가 시기하고 귀신이 해를 입혀 이 지경이 되었구나. 애고 애고, 내 일이야. 도련님 올라가면 나는 뉘를 믿고 사오리까. 겹겹이 쌓인 근심과 한과 나의 회포 밤낮 생각 어이 하리. 배꽃 복숭아꽃 활짝 피어날 제, 물가의 놀이 어이 하며, 황국화와 단풍 늦어갈 제 높은 절개 숭상함을 어이할꼬. 빈방에서 혼자 지내는 긴긴 밤에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 못 이룸을 어이하리.

쉬느니 한숨이요 뿌리느니 눈물이라. 고요한 강산 달 밝은 밤에 두견새의 울음소리를 어이 하리. 바람서리 몰아쳐도 높은 절개 만 리 길에 짝 찾는 저 기러기 울음소리를 뉘라서 금하오며, 춘하추동 네 계절에 첩첩이 쌓인 경치 보는 것도 근심스런 마음이요, 듣는 것도 근심스러운 마음이라.”

애고 애고, 설이 울 제 이도령 이른 말이

“춘향아 울지 마라. 지아비는 소관의 군대에 가 있고 아내는 오나라에 남아 있음이라. 소관에서 도끼든 지아비들과 오나라에서 지아비를 내보낸 아내들도 동서의 임 그리워서 규중의 깊은 곳에 늙어 있고, 관산에 계신 지아비는 얼마나 머나먼 길에 있는가 하였으니, 관산의 길손이며 푸른 물 위의 연꽃처럼 연밥을 따는 고운 여인도 부부의 새 정이 극히 소중하다가, 가을 달 뜬 강산이 적막한데 연을 키워 그리워하니, 나 올라간 뒤라도 창문 앞에 달 밝거든 천 리 그리움 부디 마라. 너를 두고 가는 내가 하루를 고르게 나누어 열두 시간을 낸들 어이 무심하랴.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춘향이 또 우는 말이

“도련님 올라가면 살구꽃 필 제 봄바람 부니 거리거리 취하는 게 술 권하는 노래요, 기생집에 미인이 많으니 집집마다 보시느니 미색이요, 곳곳에 풍악 소리 간 곳마다 꽃과 달이라.

여색을 좋아하신 도련님이 밤낮으로 호강하고 놀으실 제 나 같은 시골의 천한 계집이야 손톱만큼이나 생각하오리까.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춘향아 울지 마라. 한양성 남북촌에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건마는 규중 깊은 곳의 깊은 정 너밖에 없었으니, 이 아무리 대장부인들 한때나마 잊을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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