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II. 이별 (3/4)

New-Mountain(새뫼) 2020. 7. 2. 13:23
728x90

다. 도련님, 인제 가면 언제나 오시려오

 

서로 피차 기가 막혀 애틋한 그리움에 이별 못 떠날지라. 도련님 모시고 갈 뒤따르는 사령이 나올 적에 헐떡헐떡 들어오며

“도련님 어서 행차하옵소서. 안에서 야단났소. 사또께옵서 도련님 어디 가셨느냐 하옵기에 소인이 여쭙기를 놀던 친구 작별차로 문밖에 잠깐 나가셨노라 하였사오니 어서 행차하옵소서.”

“말 대령하였느냐?”

“말 마침 대령하였소.”

흰 말은 떠나자고 길게 우는데

여인은 안타까워 옷깃을 잡는구나.

말은 가자고 네 굽을 치는데 춘향은 마루 아래 툭 떨어져 도련님 다리를 부여잡고

“날 죽이고 가면 가지 살리고는 못 가고 못 가느니.”

말 못하고 기절하니 춘향 모 달려들어

“향단아 찬물 어서 떠오너라. 차를 달여 약 갈아라. 네 이 몹쓸 년아 늙은 어미 어쩌려고 몸을 이리 상하느냐?”

춘향이 정신 차려

“애고 갑갑하여라.”

춘향의 모 기가 막혀

“여보 도련님 남의 병 없이 튼튼한 자식을 이 지경이 웬일이오. 슬프게 곡하는 우리 춘향 애통하여 죽게 되면 의지할 데 없는 홀몸이 이내 신세 뉘를 믿고 살잔 말인고.”

도련님 어이없어,

“이봐 춘향아 네가 이게 웬일이냐. 나를 영영 안 보려느냐. ‘하량 다리에 해 저무니 근심 낀 구름이 일어나는구나.’ 한 것은 소통국의 모자 이별, ‘먼 길 떠나는 길손에게 관산의 길은 얼마나 험할까.’ 한 것은 오나라 월나라 부인들의 부부이별, ‘모두 수 유열매를 머리에 꽂았으나 다만 나 한 사람이 없을 뿐이로다.’ 한 것은 용산에서 형제 이별,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옛 친구가 없을 것이다.’ 한 것은 위성에서의 벗들과 이별. 그런 이별 많아도 소식 들을 때가 있고, 살아서 만날 날이 있었으니, 내가 이제 올라가서 장원급제한 뒤 처음 관리가 되어 너를 데려갈 것이니 울지 말고 잘 있거라. 울음을 너무 울면 눈도 붓고 목도 쉬고 골머리도 아프니라.

돌이라도 무덤 앞에 세운 망두석은 천만 년이 지나가도 광석 될 줄 모르고, 나무라도 상사목은 창 밖에 우뚝 서서 일 년 봄철이 다 지나되 잎이 필 줄 모르고 병이라도 너무 슬퍼하여 생겨난 훼심병은 자나 깨나 잊지 못하다 죽느니라. 네가 나를 보려거든 설워 말고 잘 있거라.”

춘향이 할 길 없어

“여보 도련님. 내 손에 술이나 마지막으로 잡수시오. 여행길에 반찬 없이 가실진대 나의 찬합에 갈무리하였다가 숙소 잠자리 잘 자리에 날 본 듯이 잡수시오. 향단아 찬합 술병 내오너라.”

춘향이 한잔 술 가득 부어 눈물 섞어 드리면서 하는 말이

“한양성 가시는 길에 강변의 나무가 푸르고 푸르거든 먼 곳에서 정을 품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고 날 좋은 아름다운 시절 때가 되어 가랑비가 날리거든 길 가는 사람이 애가 끊기는 것이라. 말 위에서 몹시 고단하여 병이 날까 염려되오니, 풀이 향기롭고 무성하여 저문 날에 일찍 들어 주무시고, 아침 날 비바람에 늦게야 떠나시며 한 채찍 천리마에 모실 사람 없사오니, 부디부디 천금같이 귀중한 몸이 여러 세상일에 편안히 조심하옵소서. 푸른 나무 우거진 서울 가는 길에 평안히 행차하옵시고 한 글자 소식이나 듣사이다. 종종 편지나 하옵소서.”

도련님 하는 말이

“소식 듣기 걱정 마라. 요지의 서왕모도 주목왕을 만나려고 한 쌍의 청조를 스스로 불러 수천 리 먼먼 길에 소식 전송하였고, 한무제 중랑장으로 흉노에 사신 갔다가 갇혔던 소무는 상림원 황제께 한 자의 비단 편지 보냈으니 흰 기러기 파랑새 없을망정 남원 인편 없을쏘냐. 슬퍼 말고 잘 있거라.”

말을 타고 하직하니 춘향 기가 막혀 하는 말이

“우리 도련님이 가네 가네 하여도 거짓말로 알았더니 말 타고 돌아서니 참으로 가는구나.”

춘향이가 마부더러

“마부야. 내가 문 밖에 나설 수가 없는 터니 말을 붙들어 잠깐 지체하여 서라. 도련님께 한 말씀 여쭐란다.”

춘향이 내달아

“여보 도련님. 인제 가시면 언제나 오시려오. 네 계절, 소식 끊어질 절, 보내나니 아주 영원히 끊어질 절, 푸른 대와 푸른 솔 백이숙제 비길 데 없는 충절, 온 산에 나는 새가 끊어지고, 병들어 누웠으니 사람이 끊어졌네. 대 마디, 솔 마디, 춘하추동 네 계절, 끊어져 단절, 분절, 지조를 깨드리는 훼절, 도련님은 날 버리고 인정 없이 야박하게 가시니 속절없는 나의 정절,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절개를 지킬 제 어느 때에 절개를 깨뜨릴꼬. 첩의 한 맺힌 정 슬픈 끝까지 지키려는 절개, 밤낮으로 생각 끊기지 않을 제, 부디 소식 끊지 마오.”

대문 밖에 거꾸러져 가냘픈 두 손길로 땅을 꽝꽝 치며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애고 한마디 하는 소리, 누른 티끌이 흩어지니 바람은 쓸쓸하고, 깃발에는 빛이 없으니 햇빛조차 엷음이라. 엎더지며 자빠질 제 서운찮게 갈 양이면 몇 날 며칠 될 줄 모를레라. 도련님 타신 말은 잘 달리는데 채찍질한 것이 아니냐. 도련님 눈물 흘리고 뒤 기약을 당부하고 말을 채쳐 가는 양은 미친 바람에 조각구름일러라.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