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V. 시련 (5/5)

New-Mountain(새뫼) 2020. 7. 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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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어느 날에 낭군님이 이곳에 도착하오리까

 

애고 애고, 섧게 울다 홀연히 잠이 드니, 깊이 잠들지도 깨지도 않은 어렴풋할 때, 나비가 장주 되고 장주가 나비 되어, 가랑비같이 남은 혼백 바람인 듯 구름인 듯 한곳을 당도하니, 하늘은 끝이 없고 땅은 넓어 막힘이 없고, 산은 밝고 물빛을 고운데, 은은한 대숲 사이에 한 층의 단청을 한 누각이 반공중에 잠겼거늘,

대체 귀신 다니는 법은 큰바람이 일어나, 하늘에 오르고 땅에 들어가니, 베개 위의 잠깐 동안의 봄날 꿈에 강남 수천 리를 다 갔구나. 앞쪽을 살펴보니 금칠 큰 글씨로 만고정렬황릉지묘라 뚜렷이 붙였거늘, 심신이 황홀하여 오고 가더니 천연한 낭자 셋이 나오는데, 석숭의 애첩 녹주 등불을 들고, 진주 기생 논개, 평양 기생 월선이라. 춘향을 이끌고 안채로 대청 위에 흰옷을 입은 두 부인이 고운 손을 들어 오르기를 청하거늘, 춘향이 사양하되

“속세의 천한 계집이 어찌 황릉묘에 오르리까.”

부인이 기특히 여겨 두어 번 청하거늘, 사양치 못하여 올라가니 자리를 주어 앉힌 후에,

“네가 춘향인가? 기특하도다. 며칠 전에 조회를 하기 위해 요지 잔치에 올라가니 네 말이 떠들썩하기로 간절히 보고 싶어 너를 청하였으니, 심히 불안하도다.”

춘향이 두 번 절하고 아뢰기를,

“첩이 비록 무식하나 옛 책을 보옵고 죽은 다음에나 귀한 얼굴을 뵈올까 하였더니 이렇듯 황릉묘에 모시니 황공하고 느낌이 슬프오이다.”

상군부인이 말씀하되

“우리 순임금 대순씨가 남쪽 지방을 순찰하시다가 창오산에서 돌아가시니, 속절없는 이 두 몸이 소상의 대나무 숲에 피눈물을 뿌려놓으니 가지마다 아롱아롱 잎잎이 원한이라. 창오산이 무너지고 상수의 물이 끊어지고야 대나무에 어린 피눈물이 비로소 없어짐을 오랜 세월의 깊은 한이 되어 하소연할 곳 없었더니, 네 절행 기특하기로 너더러 말하노라. 친근한 정을 보낸 지 몇천 년에 어느 때나 맑고 밝은 세상이 찾아오는 것은 어느 때며, 오현금 남풍시가 이제까지 전하더냐?”

이렇듯이 말씀할 제 어떠한 부인

“춘향아. 나는 술잔을 들어 밝은 달 아래에서 책을 읽으며 선녀로 변했던 농옥이다. 소사의 아내로서 태화산에서 이별 후에 용을 타고 날아가 버린 것이 한이 되어 옥퉁소로 원한을 풀 제, 곡조가 끝나 날아감에 자취를 모르겠고, 산 밑의 벽도화만 봄에 스스로 피었도다.”

이러할 제 또 한 부인 말씀하되,

“나는 한나라 궁녀 왕소군이라. 오랑캐 땅에 시집을 잘못 갔으니, 언덕 위에 푸른 무덤뿐이로다. 말 위의 비파 한 곡조에 아리따운 그 모습 그림 그리는 이는 알았으련만, 달밤에 넋만 오니 옥패소리 속절없구나. 어찌 아니 원통하랴.”

한참 이러할 제 음산한 바람이 일어나며 촛불이 벌렁벌렁하며 무엇이 촛불 앞에 달려들거늘, 춘향이 놀라 살펴보니 사람도 아니요, 귀신도 아닌데 어렴풋한 가운데 곡소리가 떠들썩하며,

“여봐라 춘향아, 네가 나를 모르리라. 나는 뉜고 하니 한고조 아내 척부인이로다. 우리 황제 용이 되어 날아간 후에 여후의 독한 솜씨 나의 손발을 끊어 내어 두 귀에다 불 지르고 두 눈 빼어 벙어리 되는 약을 먹여 측간 속에 넣었으니, 오랜 세월 깊은 한을 어느 때나 풀어보랴.”

이리 울 제 상군부인 말씀하되

“이곳이라 하는 데가 이승과 저승으로 길이 다르고 가는 길이 스스로 나뉘어 있으니 오래 머물지 못할지라.”

여자아이 불러 하직할 새, 침실의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시르렁, 한 쌍의 나비는 펄펄.

춘향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로다. 옥창문의 앵두꽃은 떨어져 보이고, 거울 복판이 깨어져 뵈고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려 보이거늘,

“나 죽을 꿈이로다.”

근심 걱정 밤을 샐 제, 기러기 울고 가니, 서강에 비치는 한 조각의 달빛에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네 아니야. 밤은 깊어 삼경이요, 궂은비는 퍼붓는데, 도깨비 삑삑, 밤새 소리 붓붓, 문풍지는 펄렁펄렁, 귀신이 우는데 마구 때린 곤장 맞아 죽은 귀신, 형장 맞아 죽은 귀신, 대롱대롱 목 매달려 죽은 귀신 사방에서 우는데, 귀신 울음소리 떠들썩하도다. 방 안이며 추녀 끝이며 마루 아래서도 애고 애고, 귀신 소리에 잠들 길이 전혀 없다.

춘향이가 처음에는 귀신 소리에 정신이 없이 지내더니 여러 번을 들어 나니 익숙해져서 두려움이 없게 되어 청승맞은 소리를 내는 굿거리, 삼잡이 세악 소리로 알고 들으며,

“이 몹쓸 귀신들아. 나를 잡아 가려거든 조르지나 말려무나. 암급급여율령사파쐐”

주문 외우고 앉았을 때 옥 밖으로 봉사 하나 지나가되, 서울 봉사 같을진대

“문수하오.”

외치련마는 시골 봉사라

“문복하오.”

하고 외치고 가니 춘향이 듣고,

“불러주오.”

춘향 어미 봉사를 부르는데

“여보 저기 가는 봉사님.”

불러 놓으니 봉사 대답하되

“게 뉘구, 게 뉘구니?”

“춘향 어미요.”

“어찌 찾나?”

“우리 춘향이가 옥중에서 봉사님을 잠깐 오시라 하오.”

봉사 한번 웃으면서

“날 찾기 의외로세. 가지.”

봉사 옥으로 갈 제 춘향 어미 봉사의 지팡이를 잡고 인도할 제,

“봉사님 이리 오시오. 이것은 돌다리요, 이것은 개천이요. 조심하여 건너시오.”

앞에 개천이 있어 뛰어볼까 무한히 벼르다가 뛰는데, 봉사의 뜀이란 게 멀리 뛰진 못하고 올라가기만 한 길이나 올라가는 것이었다. 멀리 뛴단 것이 한가운데 가 풍덩 빠져 놓았는데 기어 나오려고 짚는 게 개똥을 짚었지.

“어뿔싸. 이게 정녕 똥이지.”

손을 들어 맡아 보니 묵은 쌀밥 먹고 썩은 놈이로고. 손을 내뿌린 게 모진 돌에다가 부딪치니 어찌 아프던지 입에다가 훌 쓸어 넣고 우는데 먼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애고 애고, 내 팔자야. 조그마한 개천을 못 건너고 이 봉변을 당하였으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내 신세를 생각하니 천지 만물을 보지 못함이라. 밤낮을 내가 알랴. 네 계절을 짐작하며, 봄날을 맞게 된들 복숭아꽃 오얏꽃이 피는 것을 내가 알며, 가을날을 맞게 된들 노란 국화와 단풍 어찌 알며, 부모를 내 아느냐, 처자를 내 아느냐, 친구 벗님을 내 아느냐? 세상천지 해와 달과 별과 두터움과 엷음, 길고 짧음을 모르고 밤중같이 지내다가 이 지경이 되었구나. 참으로 소경이 그르냐 개천이 그르냐. 소경이 그르지 아주 생긴 개천이 그르랴.”

애고 애고, 설워 우니 춘향 어미 위로하되,

“그만 우시오.”

봉사를 목욕시켜 옥으로 들어가니 춘향이 반기면서

“애고 봉사님. 어서 오오.”

봉사 그중에 춘향이가 뛰어난 미인이란 말은 듣고 반가워하며

“음성을 들으니 춘향 각시인가 보다.”

“예. 기옵니다.”

“내가 벌써 와서 자네를 한번이나 볼 터이로되 가난하면 일이 많음이라. 못 오고 청하여 왔으니 내 사람의 도리가 아니로세.”

“그럴 리가 있소. 눈이 멀고 늙음이 오니 기력이 어떠하시오.”

“내 염려는 말게. 대체 나를 어찌 청하였나?”

“예. 다름 아니라 간밤에 불길한 꿈을 꾸었삽기로, 꿈풀이도 하고 우리 서방님이 어느 때나 나를 찾을까 길하고 흉한지 여부를 점을 치려고 청하였소.”

“그러게.”

봉사 점을 하는데

“저 태서의 믿음직한 말을 빌려서 존경의 뜻을 표하면서 비나이다. 하늘이 어찌 말을 하시고, 땅이 어찌 말을 하시리오마는, 두드리오니 응답을 바라오니, 신령님은 이미 영험하시니, 느낌을 받으시어 마침내 통하게 하소서. 제 잘못을 알지 못하겠으며, 그 의문을 풀지 못하오니, 오직 신께서만 신령하시오니 바라는 바를 밝히 알려주시어, 어찌해야 옳고 어찌해야 그른지를 높이 밝히시어 두드리오니 곧바로 응답하소서.

팔괘 만든 복희씨, 주나라 문왕, 주나라 무왕, 무공, 주공, 공자, 다섯 성현, 공자의 칠십 이인의 제자, 공자의 네 제자, 공자의 뛰어난 열 제자, 제갈공명 선생, 이순풍, 소강절, 정명도, 정이천, 주염계, 주회암, 엄군평, 사마군, 귀곡, 손빈, 진, 유, 왕보사, 주원장 등 모든 위대한 스승님들은 밝혀 살피고 적어 주옵소서.

마의도자, 구천현녀, 육정, 육갑, 신장이여. 연월 일시를 맡은 도교의 네 신이 함께 만나고, 괘를 던지면 길흉의 점괘가 나타나게 한다는 동자가 허공중에서도 느낌이 있으니, 천명을 받아 나라를 세운 임금이 본가에서 제사를 받들어, 제단 위의 향로에 향불을 피우노니, 밝은 신령님께선 이러한 진실된 향기를 맡으시고 원컨대 강림하소서.

전라좌도 남원부 냇가에 살고 있는 임자년에 태어난 열녀 성춘향이 아무 달 아무 날에 감옥에서 석방되오며, 서울 삼청동 살고 있는 이몽룡은 아무 달 아무 날에 이곳에 도착하오리까. 엎드려 비옵나니, 여러 신령님은 밝게 비추어 보여 주옵소서.”

산통을 철겅철겅 흔들더니

“어디 보자, 일이삼사오륙칠. 허허 좋다. 가장 좋은 점괘로고. 칠간산이로구나.

고기가 물에서 놀되, 그물을 피하니 작은 것이 쌓이어 큰 것이 이루어지는구나. 옛날 주무왕이 벼슬할 제 이 괘를 얻어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오듯 출세하였으니 어찌 아니 좋을 손가. 천 리나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서로 마음을 아니 친한 사람을 만날 것이라 하였으니, 자네 서방님이 머지 않은 때에 내려와서 평생 한을 풀겠네. 걱정 마소. 참 좋거든.”

춘향이 대답하되

“말대로 그러면 오죽 좋사오리까. 간밤 꿈이나 풀어 주옵소서.”

“어디 자세히 말을 하소.”

“단장하던 큰 거울이 깨져 보이고, 창 앞에 앵두꽃이 떨어져 보이고,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려 보이고, 태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말라 보이니, 나 죽을 꿈 아니오.”

봉사 이윽히 생각하다가 얼마 있다가 말하기를,

“그 꿈 매우 좋다. 화락이 능성실이요, 경파하니 기무성이라. 능히 열매가 열려야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어질 때 소리가 없을쏜가. 문상에 현우인하니 만인이 개앙시라.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렸으면 사람마다 우러러볼 것이라. 해갈하니 용안견이요, 산붕하니 지택평이라. 바다가 마르면 용의 얼굴을 능히 볼 것이요, 산이 무너지면 평지가 될 것이라. 좋다. 쌍가마 탈 꿈이로세. 걱정 마소. 멀지 않네.”

한참 이리 수작할 제 뜻밖에 까마귀가 옥 담에 와 앉더니 까옥까옥 울거늘, 춘향이 손을 들어 후여 날리며

“방정맞은 까마귀야. 나를 잡아가려거든 조르지나 말려무나.”

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가만있소. 그 까마귀가 가옥가옥 그렇게 울지.”

“예. 그래요.”

“좋다. 좋다. 가 자는 아름다울 가 자요, 옥 자는 집 옥 자라. 아름답고 즐겁고 좋은 일이 머지 않아돌아와서 평생에 맺힌 한을 풀 것이니 조금도 걱정 마소.

지금은 복채 천 냥을 준대도 아니 받아 갈 것이니 두고 보고 지체가 높고 귀하게 되는 때에 괄시나 부디 마소. 나 돌아가네.”

“예 평안히 가옵시고 뒷날 서로 만납시다.”

춘향이 긴 탄식과 걱정으로 세월을 보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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