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저 달아 네가 일러 나의 수심 풀어 다오
이리 야단할 제 춘향 어미가 이 말을 듣고 정신없이 들어오더니 춘향의 목을 안고,
“애고 이게 웬일이냐. 죄는 무슨 죄며 매는 무슨 매냐. 장청의 집사님네, 길청의 이방님 내 딸이 무슨 죄요? 장군방 두목들아, 매를 들던 옥사쟁이들도 무슨 원수 맺혔더냐.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칠십 나이 늙은 것이 의지 없이 되었구나. 아들 없는 외딸 내 딸 춘향 규중에 은근히 길러내어 밤낮으로 서책만 놓고 ≪내칙편≫ 공부 일삼으며 나 보고하는 말이,
‘마오 마오, 설워 마오. 아들 없다 설워 마오. 외손자가 제사 못 모시리까?’
어미에게 지극정성 곽거와 맹종인들 내 딸보다 더할쏜가. 자식 사랑하는 법이 위아래가 다를쏜가. 이내 마음 둘 데 없네. 가슴에 불이 붙어 한숨이 연기로다. 김번수야 이번수야, 윗전의 명령이 지극히 엄하다고 이다지 몹시 쳤느냐? 애고 내 딸 곤장 맞은 상처 보소. 눈과 얼음 같은 두 다리에 연지 같은 피 비쳤네. 명문가 규방의 아녀자야, 눈먼 딸도 원하더라. 그런 데 가 못 생기고 기생 월매 딸이 되어 이 모습이 웬일이냐. 춘향아 정신 차려라. 애고 애고, 내 신세야.”
하며
“향단아. 삼문 밖에 가서 삯군 둘만 사 오너라. 서울로 급주 두 사람을 보내련다.”
춘향이 급주 두 명을 보낸단 말을 듣고
“어머니 마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만일 급주가 서울 올라가서 도련님이 보시면 부모와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처지에 어찌할 줄 몰라, 마음이 울적하여 병이 되면, 그것인들 아니 정절이 꺾이는 것이오. 그런 말씀 마시고 옥으로 가사이다.”
옥사쟁이의 등에 업혀 옥으로 들어갈 제, 향단이는 칼머리 들고 춘향 어미는 뒤를 따라 옥문 앞에 다다라,
“옥 형방 문을 여소. 옥 형방도 잠들었나.”
옥 안에 들어가서 옥방 형상 볼작시면 부서진 대나무창 틈에 화살 쏘느니 바람이요, 무너진 헌 벽이며 헌 자리 벼룩 빈대 온몸을 성가시게 달려든다. 이때 춘향이 옥방에서 <장탄가>로 울던 것이었다.
“이내 죄가 무슨 죄냐.
나라의 곡식을 도둑질하지 않았는데 엄한 형벌 심한 매질 무슨 일인고.
살인죄가 아니거든 목에 씌운 칼과 발에 채운 차꼬 웬일이며
역적죄 삼강오륜 어긴 죄가 아니거든 사지 결박 웬일이며
음탕한 일 도적질이 아니거든 이 형벌이 웬일인고.
삼강의 물을 벼룻물에 담아 푸른 하늘을 한 장의 종이로 삼아
나의 설움 하소연하여 옥황상제께 올리고저.
낭군 그리워 가슴 답답 불이 붙네.
한숨이 바람 되어 붙는 불을 더 붙이니
속절없이 나 죽겠네.
홀로 섰는 저 국화는 높은 절개 거룩하다.
눈 속의 푸른 솔은 영원한 절개를 지켰구나.
푸른 솔은 나와 같고
노란 국화 낭군같이
슬픈 생각 뿌리나니 눈물이요, 적시느니 한숨이라.
한숨은 맑은 바람 삼고 눈물은 가랑비 삼아
맑은 바람이 가랑비를 몰아다가 불거니 뿌리거니
임의 잠을 깨우고저.
견우별 직녀별은 칠석날 서로 만날 적에
은하수 막혔으되 때 놓친 일 없었건만
우리 낭군 계신 곳에 무슨 물이 막혔는지
소식조차 못 듣는고.
살아 이리 그리느니 아주 죽어 잊고지고.
차라리 이 몸 죽어 사람 없는 산속에 두견이 되어
배꽃이 달 아래 흰 깊은 밤중에 슬피 울어 낭군 귀에 들리고저.
맑은 강에 원앙 되어 짝을 불러 다니면서
다정하고 인정이 있음을 임의 눈에 보이고저.
삼월 봄날 나비 되어 향기 묻은 두 나래로
봄빛을 자랑하여 낭군 옷에 붙고지고.
푸른 하늘에 밝은 달이 되어 밤이 되면 돋아 올라
밝디밝디 밝은 빛을 임의 얼굴에 비추고저.
이내 간장 썩는 피로 임의 얼굴 그려 내어
방문 앞에 족자 삼아 걸어 두고 들며 나며 보고지고.
수절하고 정절을 지키던 아름다운 미인이
참혹하게 되었구나.
광채 좋은 형산의 백옥 티끌 속에 묻혔는 듯,
향기로운 상산의 풀이 잡풀 속에 섞였는 듯,
오동나무 속에 놀던 봉황 가시나무 속에 깃들인 듯.
예로부터 성현님들도 죄가 없고 일이 잘 안되시니
요순과 우탕의 어진 임금들도 걸왕과 주왕의 포악함으로
하나라의 감옥에 갇혔더니 도로 풀려나 성군 되시고
밝은 덕으로 백성을 다스린 주 문왕도
상나라 주왕의 해를 입어
유리옥에 갇혔더니 도로 놓여 성군 되고
만고 성현인 공자님도 양호에게 해를 입어
광 땅에 갇혔더니 도로 놓여 큰 성인 되시니
이런 일로 볼작시면 죄 없는 이내 몸도 살아나서
세상 구경 다시 할까.
답답하고 원통하다. 날 살릴 이 뉘 있을까.
서울 계신 우리 낭군 벼슬길로 내려와
이렇듯이 죽어갈 제 내 목숨을 못 살리는가.
여름 구름엔 기이한 봉우리가 많으니 산이 높아 못 오던가.
금강산 가장 높은 봉우리가 평지 되거든 오시려는가.
병풍에 그린 누런 닭이 두 나래를 툭툭 치며
깊은 새벽녘에 날 새라고 울거든 오시려는가.
애고 애고, 내 일이야.”
대나무로 된 창문을 열치니 밝고 맑은 달빛은 방안에 든다마는 어린 것이 홀로 앉아 달더러 묻는 말이,
“저 달아. 보느냐. 임 계신 데 밝은 기운을 빌려라. 나도 보게야. 우리 임이 누웠더냐 앉았더냐. 보는 대로만 네가 일러 나의 근심하는 마음을 풀어다오.”
'고전총람(산문) > 열녀춘향수절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V. 재회 (1/5) (0) | 2020.07.03 |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V. 시련 (5/5) (0) | 2020.07.03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V. 시련 (3/5) (0) | 2020.07.03 |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V. 시련 (2/5) (0) | 2020.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