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V. 시련 (2/5)

New-Mountain(새뫼) 2020. 7. 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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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일편단심 소녀 마음 굴복하지 못하리라

 

어여쁘고 고운 기생 그중에 많건마는 사또께옵서는 근본 춘향의 말을 높이 들었는지라. 아무리 들으시되 춘향 이름 없는지라.

사또 수노 불러 묻는 말이,

“기생 점고 다 되어도 춘향은 안 부르니 물러난 기생이냐?”

수노 여쭈오되,

“춘향 모는 기생이되 춘향은 기생이 아닙니다.”

사또 묻기를,

“춘향이가 기생이 아니면 어찌 규중에 있는 아이 이름이 높이 난다?”

수노 여쭈오되,

“근본 기생의 딸이옵고, 덕색이 장한 고로, 벼슬이 높고 권세가 있는 양반네와 재주가 첫째가는 한량들과 내려오신 벼슬아치마다 구경하고자 간청하되, 춘향 모녀 듣지 않기로, 양반 상하 물론 하고 한 집안사람인 소인 등도 십 년에 한 번 정도 대면하더라도 말을 주고받음이 없었더니, 하늘이 정하신 연분인지 구관 사또 자제 이도령님과 한평생같이 할 아름다운 약속을 맺사옵고, 도련님 가실 때에 장가든 후에 데려가마 당부하고 춘향이도 그리 알고 수절하여 있습니다.”

사또 화를 내어,

“이놈 무식한 상놈인들. 그게 어떠한 양반이라고 엄한 부모를 모시면서 아직 장가들지 않은 도련님이 기생을 첩으로 얻어 살자 할꼬. 이놈 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어서는 죄를 면치 못하리라. 이미 내가 저 하나를 보려다가 못 보고 그저 말랴. 잔말 말고 불러오라.”

춘향을 부르란 사또의 명령이 나는데 이방 호장 여쭈오되,

“춘향이가 기생도 아닐 뿐 아니오라, 이전 사또 자제 도련님과 굳은 약속이 무거운데 나이는 같지 않으나 같은 양반의 처지로 신분에 맞지 않는 도리로 부르라기에 사또 체면이 손상할까 저어하옵니다.”

사또 크게 화를 내어,

“만일 춘향을 불러오는 시각이 늦다가는 공형 이하로 각청의 우두머리들을 한 번에 내쫓을 것이니 빨리 준비하고 기다리게 못 시킬까.”

육방이 법석을 떨고, 각청의 우두머리들이 넋을 잃어,

“김번수야 이번수야. 이런 별일이 또 있느냐? 불쌍하다, 춘향 정절 가련하게 되기 쉽다. 사또 분부 지극히 엄하니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사령 관노 뒤섞여서 춘향 문전 당도하니, 이때 춘향이는 사령이 오는지 관노가 오는지 모르고, 밤낮으로 도련님만 생각하여 우는데, 망칙한 재앙을 당하려거든 소리가 화평할 수 있으며, 한때라도 지아비 없이 빈방에서 살아가는 계집아이라 목소리에 쇳소리처럼 강파른 목소리가 끼어 자연 슬프게 애원하는 소리가 되어 보고 듣는 사람의 심장인들 아니 상할쏘냐.

님 그리워 설운 마음 먹어도 달지 않아 밥 못 먹고, 잠들어도 편안하지 않아 잠 못 자고, 도련님 생각 오랫동안 마음을 썩이게 되어 살갗과 뼈가 서로 잇대어 붙었구나. 양기가 점차로 다해짐에 진양조란 울음이 되어

 

“갈까 보다 갈까 보다,

임을 따라 갈까 보다.

천 리라도 갈까 보다,

만 리라도 갈까 보다.

비바람도 쉬어 넘고

날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도

쉬어 넘는 높은 산

동선령 고개라도

임이 와 날 찾으면

나는 발 벗어 손에 들고

나는 아니 쉬어 가지.

한양 계신 우리 낭군

나와 같이 그리는가.

무정하여 아주 잊고

나의 사랑 옮겨다가

다른 임을 사랑하는가.”

 

한참 이리 섧게 울 제, 사령 등이 춘향의 슬프게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 사람이 나무와 돌이 아니거든 느끼는 마음이 아니 될 수 있냐. 육천 마디 사대 삭신이 떨어지는 물에 봄 얼음 녹듯 탁 풀리어,

“대체 이 아니 참 불쌍하냐. 이 애 외입한 자식들이 저런 계집을 받들지 못하면은 사람이 아니로다.”

이때에 재촉하는 사령 나오면서,

“오너라.”

외치는 소리에 춘향이 깜짝 놀라 문틈으로 내다보니 사령 군노 나왔구나.

“아차차 잊었네. 오늘이 그 새 사또가 부임하여 사흘 만에 점고한다 하더니 무슨 야단이 났나 보다.”

밀창문 여닫으며

“허허 번수님네, 이리 오소, 이리 오소. 오시기 뜻밖이네. 이번 사또 맞는 길에 피곤하여 병이나 아니 나며, 사또 정체 어떠하며, 옛 사또댁에 가 보셨으며, 도련님 편지 한 장도 아니 하던가. 내가 전일은 양반을 모시기로 남들의 귀와 눈이 번거롭고, 도련님 성격이 유달라서 모르는 체 하였건만 마음조차 없을 손가. 들어가세, 들어가세.”

김번수며 이번수며 여러 번수 손을 잡고 제 방에 앉힌 후에 향단이 불러

“주안상 들여라.”

취하도록 먹인 후에 궤짝 문 열고 돈 닷 냥을 내어놓으며

“여러 번수님네. 가시다가 술이나 잡숫고 가옵소. 뒷말 없게 하여 주소.”

사령 등이 약주에 취하여 하는 말이

“돈이라니 당치 않다. 우리가 돈 바라고 네게 왔냐.”

하며

“들여놓아라.”

“김번수야. 네가 돈을 차라.”

“옳지 않다마는 입 숫자에나 다 적당하냐?”

돈 받아 차고 흐늘흐늘 들어갈 제 행수기생이 나온다. 행수기생이 나오며 두 손뼉 땅땅 마주치면서,

“여봐라 춘향아. 말만 듣거라. 너만한 정절은 나도 있고 너만한 수절은 나도 있다. 너라는 정절이 왜 있으며, 너라는 수절이 왜 있느냐? 정절부인 애기씨, 수절부인 애기씨, 조그마한 너 하나로 말미암아 하여 육방이 법석을 떨고, 각청의 우두머리들이 다 죽어난다. 어서 가자 바삐 가자.”

춘향이 할 수 없어 수절하던 그 태도로 대문 밖 썩 나서며

“형님 형님, 행수 형님. 사람의 괄시를 그리 마소. 거기라고 대대 행수며, 나라고 대대 춘향인가. 사람은 한 번 죽으면 그만이지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동헌에 들어가

“춘향이 대령하였소.”

사또 보시고 크게 기뻐하여

“춘향일시 분명하다. 대청 위로 오르거라.”

춘향이 대청마루에 올라가 무릎을 모으고 옷자락을 바로 하여 단정히 앉을 뿐이로다. 사또 몹시 반하여

“책방에 가 회계나리님을 오시래라.”

회계 생원이 들어오던 것이었다. 사또 대희하여

“자네 보게. 저게 춘향일세.”

“하, 그년 매우 예쁜데. 잘 생겼소. 사또께서 서울 계실 때부터 춘향 춘향 하시더니 한 번 구경할 만하오.”

사또 웃으며

“자네 중매하겠나.”

이윽히 앉았더니

“사또가 당초에 춘향을 부르시지 말고 중매쟁이를 보내어 보시는 게 옳은 것을, 일이 좀 경솔히 되었소마는 이미 불렀으니 아마도 혼인할밖에 수가 없소.”

사또 크게 기뻐하여 춘향더러 분부하되

“오늘부터 몸단장 깨끗이 하고 수청으로 명을 따르라.”

“사또 분부 황송하나 한 지아비만을 섬기기를 바라오니 분부 시행 못하겠소.”

사또 웃어 왈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계집이로다. 네가 진정 열녀로다. 네 정절 굳은 마음 어찌 그리 어여쁘냐. 당연한 말이로다. 그러나 이수재는 경성 사대부의 자제로서 이름나고 높은 집안의 사위가 되었으니 일시 사랑으로 잠깐 길가의 버들과 담장 위의 꽃으로 여기던 너를 조금이나마 생각하겠느냐?.

너는 근본 정절 있어 오로지 한가지 정절만을 지키려 하였다가 고운 얼굴이 저물어 가고, 흰 머리가 어지럽게 드리워지면, 무정한 세월이 흐르는 물결같이 됨을 탄식할 제, 불쌍하고 가련한 게 너 아니면 뉘가 그이랴. 네 아무리 수절한들 열녀 상을 주어 드높임을 누가 하랴. 그것은 다 버려두고 네 고을 사또에게 매임이 옳으냐, 어린놈에게 매인 게 옳으냐? 네가 말을 좀 하여라.”

춘향이 여쭈오되,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음이요, 열녀는 두 지아비를 바꾸지 않는 절개를 본받고자 하옵는데, 여러 차례 분부 이러하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옵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바꾸지 않으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이때 회계 나리가 썩 하는 말이

“네 여봐라. 어 그년 요망한 년이로고. 부하루살이 같은 인생으로는 좁은 세상에 뛰어난 미인이라. 네 여러번 사양할 게 무엇이냐. 사또께옵서 너를 높이 받들어 하시는 말씀이지, 너 같은 창녀 무리에게 수절이 무엇이며 정절이 무엇인가. 옛 사또는 전별하여 보내고 신관 사또 맞아 대접함이 법에 당연하고, 사례에도 당연커든 괴이한 말 내지 말라. 너희 같은 천한 무리에게 충렬 두 글자가 왜 있으리.”

이때 춘향이 하 기가 막혀 천연히 앉아 여쭈오되

“충효열녀 위아래가 있소. 자세히 들으시오. 기생으로 말합시다. 충효열녀 없다 하니 낱낱이 아뢰리다.

황해도 기생 농선이는 동선령에 죽어 있고, 선천 기생 아이로되 칠거지악을 들어 알고, 진주 기생 논개는 우리나라 충렬로서 충렬문에 모셔 놓고 오랜 세월 제사를 받고 있고, 청주 기생 화월이는 삼층각에 올라 있고, 평양 기생 월선이도 충렬문에 들어 있고, 안동 기생 일지홍은 살아서 열녀문을 받은 뒤에 정경부인으로 정삼품의 품계가 있사오니 기생 모함을 마옵소서.”

춘향 다시 사또 전에 여쭈오되

“당초에 이수재 만날 때에 높은 산과 넓은 바다와 같은 굳은 마음 소첩의 한결 같은 정절 맹분 같은 용맹인들 빼어내지 못할 터요, 소진과 장의의 말재주인들 첩의 마음 옮겨가지 못할 터요, 공명 선생 높은 재주 동남풍은 빈다 해도, 소녀의 한 조각의 붉은 이 마음 굴복시키지 못하리라.

기산의 허유는 요임금이 물려주려는 왕위를 받지 아니하였고, 서산의 백이 숙제 두 사람은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았으니, 만일 허유 없었으면 멀리 속세를 떠나 은거하는 선비는 누가 하며, 만일 백이 숙제 없었으면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가 많았으리라. 

첩의 몸이 비록 천한 계집인들 허유와 백이 숙제를 모르리까. 사람의 첩이 되어 지아비를 배반하고 가정을 저버리는 것은 벼슬하는 관장님네 나라를 잊고 임금을 등지는 것과 같사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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