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높은 절개 빛이 나니 어찌 아니 좋을쏜가
사대문에 방 붙이고 옥 형리 불러 분부하되
“네 고을 옥에 있는 죄인들을 다 올리라.”
호령하니 죄인을 올리거늘, 다 각각 죄를 물은 후에 죄 없는 자들을 풀어줄 새
“저 계집은 무엇인고?”
형리 여쭈오되
“기생 월매 딸이온데 관아의 뜰에서 사납게 군 죄로 옥중에 있삽내다.”
“무슨 죄인고?”
형리 아뢰되
“본관 사또 수청으로 불렀더니, 수절이 정절이라 수청 아니 들려 하고 사또 앞에 사납고 못되게 군 춘향이로소이다.”
어사또 분부하되
“너만 년이 수절한다고 관아의 뜰에서 못되게 굴었으니 살기를 바랄쏘냐. 죽어 마땅하되 내 수청도 거역할까?”
춘향이 기가 막혀
“내려오는 원님마다 개개이 이름이 났구나. 수의사또 들으시오. 험한 바위가 겹겹이 높은 바위 바람 분들 무너지며 푸른 솔과 푸른 대나무가 눈이 온들 변하리까. 그런 분부 마옵시고 어서 바삐 죽여주오.”
하며,
“향단아 서방님 어디 계신가 보아라. 어젯밤에 옥 문간에 와 계실 제 천만 당부하였더니 어디를 가셨는지 나 죽는 줄 모르는가.”
어사또 분부하되
“얼굴 들어 나를 보라.”
하시니 춘향이 고개 들어 대청 위를 살펴보니 걸인으로 왔던 낭군 어사또로 뚜렷이 앉았구나. 반웃음 반 울음에
“얼씨구나 좋을씨고 어사 낭군 좋을씨고. 남원 읍내 가을날 들어 떨어지게 되었더니, 객사에 봄이 들어 오얏꽃 사이로 봄바람 부니 날 살린다. 꿈이냐 생시냐, 꿈을 깰까 염려로다.”
한참 이리 즐길 적에 춘향 모 들어와서 가없이 즐겨하는 말을 어찌 다 이야기하랴. 춘향의 높은 절개 빛이 나게 되었으니 어찌 아니 좋을쏜가. 어사또 남원 관아의 일 닦은 후에 춘향 모녀와 향단이를 서울로 데려갈 제, 위엄과 몸가짐이 찬란하니 세상 사람들이 누가 아니 칭찬하랴. 이때 춘향이 남원을 하직할 새 높고 귀하게 되었건만 고향을 이별하니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슬프지 아니 하랴.
놀고 자던 부용당아. 너 부디 잘 있거라. 광한루 오작교며 영주각도 잘 있거라. 봄풀은 해마다 푸르른데 왕손은 돌아가서는 돌아오지 않네 한 것은 나를 두고 이름이라. 다 각기 이별할 제 길이길이 무한하옵소서. 다시 보기 아득함이라.
이때 어사또는 전라좌우도 여러 고을을 살펴보고 백성들의 사정을 살핀 후에, 서울로 올라가 임금 앞에 절을 하니 삼당상 대궐에 들어와 문서를 조사하거나 살핀 후에 임금이 크게 칭찬하시고, 즉시 이조참의 대사성을 봉하시고, 춘향에게 정렬부인을 봉하시니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고 절하고 물러 나와, 부모 전에 뵈오니 임금의 은혜를 못 잊어 하시더라.
이때 이조판서, 호조판서 좌우의정, 영의정 다 지내고, 벼슬에서 물러 나온 후에 정렬부인으로 더불어 한평생을 같이 즐길 새, 정렬부인에게 삼남삼녀를 두었으니 하나하나 총명하여 그 부친보다 더 뛰어나고,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며 벼슬에서 첫째 품계를 차지함으로 대대로 길이 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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