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IV. 시련 (3/5)

New-Mountain(새뫼) 2020. 7. 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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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소녀를 이리 말고 아주 때려 죽여주오

 

사또 크게 화를 내어,

“이년 들어라. 군사를 일으켜 큰 반역을 일으키는 죄는 능지처참하여 있고, 관장을 조롱하는 죄는 제서율에 써 있고, 관장을 거역하는 죄는 엄한 형벌을 내리고 귀양을 보내느라. 죽노라 설워 마라.”

춘향이 사납게 악을 쓰며,

“유부녀 겁탈하는 것은 죄 아니고 무엇이오?”

사또 기가 막혀 어찌 분하시던지 붓과 벼루가 담긴 책상을 두드릴 제, 탕건이 벗어지고 상투 고리가 탁 풀리고 첫마디에 목이 쉬어

“이년 잡아 내리라.”

호령하니 골방에서 수청들던 통인,

“예.”

하고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주루루 끌어내며

“급창.”

“예.”

“이년 잡아 내리라.”

춘향이 떨치며

“놓아라.”

중계에 내려가니 급창이 달려들어

“요년 요년. 어떠하신 높은 분 앞이라고 대답이 그러하고 살기를 바랄쏘냐.”

대뜰 아래 내리치니 사나운 호랑이 같은 군노 사령 벌떼같이 달려들어 김 같은 춘향의 머리채를 젊은 장정이 단단히 연줄을 감 듯, 뱃사공이 닻줄 감 듯, 사월팔일 등을 대에 묶어 감 듯 휘휘친친 감아쥐고 동당이쳐 엎지르니 불쌍하다 춘향 신세 백옥 같은 고운 몸이 육 자 모양으로 엎더졌구나. 좌우 나졸 늘어서서 능장, 곤장, 형장이며, 주장 짚고

“아뢰라. 형리 대령하라.”

“예. 고개 숙여라. 형리요.”

사또 분이 어찌 났던지 벌벌 떨며 기가 막혀 허푸허푸 하며

“여보아라. 그년에게 다짐이 왜 있으리. 묻도 말고 형틀에 올려 매고 정강이를 부수고 죄인이 죽었단 글을 올려라.”

춘향을 형틀에 올려 매고 옥사쟁이 거동 봐라. 형장이며 태장이며 곤장이며 한 아름 담쏙 안아다가 형틀 아래 좌르륵 부딪치는 소리 춘향의 정신이 헛갈리고 어질하다.

집장사령 거동 봐라. 이놈도 잡고 능청능청 저놈도 잡고서 능청능청, 등심 좋고 빳빳하고 잘 부러지는 놈 골라잡고 오른 어깨 벗어 메고 형장 집고 대청 위의 명령을 기다릴 제,

“분부 모셔라. 네 그년을 사정 두고 거짓으로 때려서는 당장에 네 목숨을 바칠 것이니 각별히 매우 치라.”

집장사령 여쭈오되,

“사또 분부 지엄한데 저만한 년을 무슨 사정 두오리까. 이년 다리를 까딱 말라. 만일 움직이다가는 뼈 부러지리라.”

호통하고 들어서서 곤장을 점검하는 소리 발맞추어 서면서 가만히 하는 말이

“한두 개만 견디소. 어쩔 수가 없네. 요 다리는 요리 틀고 저 다리는 저리 트소.”

“매우 치라.”

“예잇. 때리오.”

딱 붙이니 부러진 형장 막대기는 푸르르 날아 공중에 빙빙 솟아 사또 앉은 방 아래 대뜰 아래 떨어지고 춘향이는 아무쪼록 아픈 데를 참으려고 이를 복복 갈며 고개만 빙빙 두르면서

“애고 이게 웬일이여.”

곤장 태장 치는 데는 사령이 서서 하나둘 세건마는, 형장부터는 법으로 정해 놓은 곤장이라. 형리와 통인이 닭싸움하는 모양으로 마주 엎뎌서, 하나 치면 하나 긋고 둘 치면 둘 긋고 무식하고 돈 없는 놈 술집 바람벽에 술값 긋듯 그어 놓으니 한 일 자가 되었구나.

춘향이는 저절로 설움 겨워 맞으면서 우는데

“한 조각 붉고 굳은 마음 안 지아비만을 섬기려는 뜻이오니, 한낱 형벌 치옵신들 한 해가 다 못가서 잠시인들 변하리까.”

이때 남원부 한량이며 남녀노소 없이 모여 구경할 제 좌우의 한량들이,

“모질구나, 모질구나. 우리 고을 원님이 모질구나. 저런 형벌이 왜 있으며 저런 매질이 왜 있을까? 집장사령놈 눈 익혀 두어라. 삼문 밖 나오면 급살을 주리라.”

보고 듣는 사람이야, 누가 아니 눈물을 흘리랴. 둘째 매 딱 붙이니

“아황 여영 두 왕비의 정정을 아옵는데, 두 지아비 바꾸지 않을 이내 마음 이 매 맞고 영영 죽어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

셋째 매를 딱 붙이니

“삼종지도 지극히 중한 법, 삼강오륜 알았으니 세 번이나 형벌을 당하고 귀양을 갈지라도 삼청동 우리 낭군 이도령은 못 잊겠소.”

넷째 매를 딱 붙이니

“사대부 사또님은 백성들의 송사 살피지 않고 힘으로만 고을 일에 힘을 쓰니, 사십팔 방 남원 백성 원망함을 모르시오. 사지를 가른대도 죽으나 사나 함께 살려 하는 우리 낭군 죽든 살든 못 잊겠소.”

다섯 낱 채 딱 붙이니

“오륜의 도리 그치지 않고 부부 사이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오행으로 맺은 연분 올올이 찢어낸들, 자나 깨나 잊지 못할 우리 낭군 온전히 생각나네. 오동나무에 가을밤 밝은 달은 임 계신 데 보련마는 오늘이나 편지 올까, 내일이나 기별 올까. 죄 없는 이내 몸이 뜻밖에 죽을 일 없사오니, 잘못 결정하여 죄인을 만들지 마옵소서.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여섯 낱 채 딱 붙이니

“육육은 삽십육으로 낱낱이 고찰하여 육만 번 죽인대도 육천 마디 어린 사랑 맺힌 마음 변할 수 전혀 없소.”

일곱 낱을 딱 붙이니

“칠거지악 범하였소. 칠거지악 아니거든 일곱 가지 형문 웬일이오. 일곱 자 드는 칼로 몸뚱이를 토막 내고 끝으로 찔러서 이제 바삐 죽여주오. 치라 하는 저 형방아, 칠 때마다 깊이 생각 마소. 보석같이 곱고 젊은 얼굴 나 죽겠네.”

여덟 째 낱 딱 붙이니

“팔자 좋은 춘향 몸이 팔도 관찰사 수령 중에 제일 이름난 사또 만났구나. 팔도 관찰사 수령님네 백성을 다스리러 내려왔지 혹독한 형벌 내리러 내려왔소?”

아홉 낱 채 딱 붙이니

“아홉 굽이 창자 굽이 썩어 이내 눈물 구 년 홍수 되겠구나. 깊은 못과 푸른 산의 큰 소나무 베어내어 맑은 강물 위에 배를 만들어 타고 한양성 내 급히 가서 문 겹겹한 궁궐의 임금님 앞에 길고 긴 하소연을 아뢰옵고, 구정 뜰에 물러 나와 삼청동을 찾아가서 우리 사랑 반가이 만나 굽이굽이 맺힌 마음 조금이나마 풀련마는.”

열째 낱 딱 붙이니

“열 번 살고 아홉 번 죽을지라도 팔십 년 정한 뜻을 십만 번 죽인대도 가망 없고 어찌할 수 없지. 십육 세 어린 춘향 매를 맞아 원통한 귀신이 되었으니 가련하오.”

열 치고는 헤아려서 그만할 줄 알았더니 열다섯 채 딱 붙이니,

“보름날 밝은 달은 띠구름에 묻혀 있고, 서울 계신 우리 낭군 삼청동에 묻혔으니, 달아 달아, 보느냐. 임 계신 곳 나는 어이 못 보는고.”

스물 치고 헤아려서 그만할 줄 여겼더니 스물다섯 딱 붙이니

“스물다섯 줄 거문고를 달밤에 타니 맑은 원망 이기지 못하여 날아왔다 하니, 저 기러기 너 가는 데 어디메냐. 가는 길에 한양성 찾아들어 삼청동 우리 임께 내 말 부디 전해 다오. 나의 모습 자세히 보고 부디부디 잊지 마라. 하느님이여, 어린 마음 옥황상제께 아뢰고저.”

옥 같은 춘향 몸에 솟느니 피요, 흐르느니 눈물이라. 피 눈물 한데 흘러 무릉도원에 흐르는 붉은 물이라.

춘향이 점점 사납게 악을 쓰며 하는 말이

“소녀를 이리 말고 능지처참하여 아주 때려 죽여 주면 죽은 후에 두견새가 되어 초혼조와 함께 울어 고요한 강산 달 밝은 밤에 우리 이도련님 잠든 후 꿈에서 깨어나게 하리로다.”

말 못 하고 기절하니 엎뎠던 통인 고개 들어 눈물 씻고 매질하던 저 사령도 눈물 씻고 돌아서며

“사람의 자식은 못 하겠네.”

좌우에 구경하는 사람과 거행하는 관속들이 눈물 씻고 돌아서며

“춘향이 매 맞는 거동 사람 자식은 못 보겠다. 모질도다 모질도다, 춘향 정절이 모질도다. 하늘로부터 타고난 열녀로다.”

남녀노소 없이 서로 눈물 흘리며 돌아설 때 사또인들 좋을 리가 있으랴.

“네 이년 관아의 앞뜰에 발악하고 맞으니 좋은 게 무엇이냐. 뒷날에 또 그런 사또의 명을 거역할까?”

거의 죽게 되어 죽을지 살지 알 수 없게 되어 춘향이 점점 사압게 악을 쓰며 하는 말이

“여보 사또 들으시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원한을 품어 죽고 사는 것에 개의치 않는 것을 어이 그리 모르시오. 계집의 간절한 마음 오유월 서리 치네. 넋이 되어 하늘을 떠돌아다니다가 우리 임금 앉아 계신 곳에 이 원통한 마음을 아뢰오면 사또인들 무사할까. 덕분에 죽여주오.”

사또 기가 막혀,

“허허 그년 말 못할 년이로고. 큰 칼 씌워 옥에 가두어라.”

하니 큰 칼 씌워 그 위에 도장 찍은 종이를 떡 붙이고 옥사쟁이 등에 업고 삼문 밖 나올 제 기생들이 나오며,

“애고 서울집아 정신 차리게. 애고 불쌍하여라.”

사지를 만지며 약을 갈아 들이며 서로 보고 눈물을 흘릴 제, 이때 키 크고 속없는 낙춘이가 들어오며

“얼씨구 절씨구 좋을씨고. 우리 남원도 열녀문에 현판감이 생겼구나.”

왈칵 달려들어

“애고 서울집아. 불쌍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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