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열녀춘향수절가

(완판)열녀춘향수절가 - V. 재회 (4/5)

New-Mountain(새뫼) 2020. 7. 3. 22:07
728x90

어사또 춘향 집에 나와서 그날 밤을 새려 하고 문안 문밖 사정을 알아볼 새, 길청에 가 들으니 이방 승발 불러 하는 말이

“여보소. 들으니 수의사또가 새문 밖 이씨라더니, 아까 삼경에 등롱불 켜 들고 춘향 모 앞세우고 찢어진 옷과 갓을 쓴 손님이 아마도 수상하니, 내일 본관 잔치 끝에 하나부터 열까지를 구별하여 일부러 탈을 만드는 일 없도록 십분 조심하소.”

어사 그 말 듣고

“그놈들 알기는 아는데.”

하고 또 장청에 가 들으니 행수, 군관 거동 보소.

“여러 군관님네, 아까 옥 근처를 오락가락하는 걸인 실로 괴이하데. 아마도 분명 어사인 듯하니 얼굴 그린 그림을 내어놓고 자세히 보소.”

어사또 듣고

“그놈들 모두가 귀신 같도다.”

하고 현사에 가 들으니 호장 역시 그러하다. 육방 사정을 다 실핀 후에 춘향 집 돌아와서 그 밤을 샌 연후에, 이튿날 조사 끝에 근처 고을 수령이 모여든다.

운봉영장, 구례, 곡성, 순창, 옥과, 진안, 장수 원님이 차례로 모여든다. 좌편에 행수군관, 우편에 청령사령 한가운데 본관은 주인이 되어 하인 불러 분부하되,

“관청색 불러 다담을 올리라. 육고자 불러 큰 소를 잡고,

예방 불러 악사들은 부르고, 승발 불러 햇빛 피할 천막을 준비하라. 사령 불러 잡인을 금하라.”

이렇듯 요란할 제 깃발이며, 온갖 무기며 육각 풍류 소리 반공중에 떠 있고 붉은 저고리와 치마 입은 기생들은 흰 손으로 비단을 높이 들어 춤을 추고 지화자 둥덩실 하는 소리 어사또 마음이 심란하구나.

“여봐라 사령들아. 너의 원님 전에 여쭈어라. 먼 데 있는 걸인이 좋은 잔치에 당하였으니 술과 안주 좀 얻어먹자고 여쭈어라.”

저 사령 거동 보소.

“어느 양반이건데, 우리 사또님 앞에 걸인 출입을 금하니 그런 말은 내도 마오.”

등 밀쳐내니 어찌 아니 이름난 관리인가. 운봉이 그 거동을 보고 본관에게 청하는 말이

“저 걸인의 의관은 누더기이나 양반의 후예인 듯하니 끝자리에 앉히고 술잔이나 먹여 보냄이 어떠하뇨.”

본관 하는 말이

“운봉 생각대로 하오마는.”

하니, 마는 소리 후 입맛이 사납겠다.

어사 속으로

“오냐. 도적질은 내가 하마. 오라는 네가 져라.”

운봉이 분부하여,

“저 양반 듭시래라.”

어사또 들어가 혼자 앉아 좌우를 살펴보니, 대청 위의 모든 수령 다담을 앞에 놓고, 진양조의 흥취가 넘칠 제, 어사또 상을 보니 어찌 아니 원통하고 분하랴. 모퉁이 떨어진 개다리소반에 닥나무 젓가락, 콩나물, 깍두기, 막걸리 한 사발 놓았구나. 상을 발길로 탁 차 던지며 운봉의 갈비를 직신

“갈비 한대 먹고지고.”

“다라도 잡수시오.”

하고 운봉이 하는 말이

“이러한 잔치에 풍류로만 놀아서는 맛이 적사오니 차운 한 수씩 하여 보면 어떠하오?”

“그 말이 옿다.”

하니 운봉이 운을 낼 제 높을 고 자, 기름 고 자 두 자를 내어놓고 차례로 운을 달 제 어사또 하는 말이

“걸인이 어려서 추구권이나 읽었더니 좋은 잔치 당하여서 술과 안주를 배불리 먹고 그저 가기 염치가 없으니 차운 한 수 하사이다.”

운봉이 반겨 듣고 붓과 벼루를 내어주니, 다른 사람들이 다 못하여 글 두 귀를 지었으되 백성의 형편을 생각하고 본관 정체를 생각하여 지었것다.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

촉루낙시 민루낙이요

가성고처 원성고라.

이 글 뜻은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쟁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이렇듯이 지었으되 본관은 몰라보고 운봉이 글을 보며 속마음에

“아뿔싸. 일이 났다.”

이때 어사또 하직하고 간 연후에 삼공형 불러 분부하되

“야야. 일이 났다.”

공방 불러 앉은 자리 단속, 병방 불러 역말 단속, 관청색 불러 다과상 단속, 옥 형방 불러 죄인 단속, 집사 불러 형벌 도구 단속, 형방 불러 장부 단속, 사령 불러 숙직하는 이 단속, 한참 이리 요란할 제, 눈치 없는 저 본관이

“여보 운봉은 어디를 다니시오.”

“오줌 누고 들어오오.”

본관이 분부하되

“춘향을 급히 올리라.”

술주정이 난다.

이때에 어사또 군호할 제, 서리 보고 눈을 주니 서리, 중방 거동 보소. 역졸 불러 단속할 제 이리 가며 수군 저리 가며 수군수군.

서리, 역졸 거동 보소. 외올망건, 공단쓰개, 패랭이 눌러 쓰고, 석 자 발감개, 새 짚신에 한삼, 고의 산뜻 입고, 육모방망이 사슴가죽끈을 손목에 걸어 쥐고. 예서 번뜻 제서 번뜻 남원읍이 우꾼우꾼.

푸른 패찰을 한 역졸 거동 보소. 달 같은 마패를 햇빛같이 번뜻 들어

“암행어사 출또야.”

외치는 소리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눕는 듯, 나무와 풀과 길짐승 날짐승인들 아니 떨랴. 남문에서,

“출또야.”

북문에서

“출또야.”

동‧서문 출또 소리 푸른 하늘에 진동하고,

“공형 들라.”

외치는 소리 육방이 넋을 잃어

“공형이오.”

등나무 채찍으로 휘닥딱

“애고 죽는다.”

“공방 공방.”

공방이 돗자리 들고 들어오며

“안 하려던 공방을 하라더니 저 불 속에 어찌 들랴.”

등채로 휘닥딱

“애고 박 터졌네.”

좌수, 별감 넋을 잃고, 이방 호장 정신 잃고 삼색나졸 분주하네. 모든 수령 도망할 제 거동 보소.

인궤 잃고 강정 들고, 병부 잃고 송편 들고, 탕건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소반 쓰고, 칼집 쥐고 오줌 누기. 부서지느니 거문고요, 깨지느니 북 장고라. 본관이 똥을 싸고 멍석 구멍 새앙쥐 눈 뜨듯하고 관아 안으로 들어가서,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르다, 목 들여라.”

관청색은 상을 잃고 문짝 이고 내달으니, 서리 역졸 달려들어 후닥딱

“애고 나 죽네.”

이때 수의사또 분부하되

“이 골은 대감이 앉아 계시던 고을이라. 떠들기를 금하고 객사로 옮기어라”

자리에 앉은 후에

“본관은 봉고파직하라.”

분부하니

“본관은 봉고파직이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