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병자일기

병자년(1636) - 12월

New-Mountain(새뫼) 2022. 2. 2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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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丙子年)  - 1636

 

십이월

 

날짜 미상

미숫가루나 풀어 먹으려고 하였는데 판관 댁의 종을 만나 함양댁이 농소에 와 계신다 하거늘, 사람을 보냈더니 판관댁 나와 계시거늘, 함께 그 마을에 들어가 함양댁 종의 집에서 잠을 잤다.

 

12월 16일

판관댁 행차와 세 집이 일행이 되어 고족골종의 집에 가니 신시쯤 되더니, 판관댁은 용인으로, 가시고 우리 두 집 행차는 이틀 묵어 김포에 간 귀중한 짐과 글월이나 가져오려 하며, 근처의 곡식을 모아 양식이나 찧어서 길을 출발하려고 하였더니, 저물 때 일봉이가 남한산성으로부터 나오면서 영감의 편지를 가져와 기별하시되,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짐 나르기는 생각지도 마오. 밤낮 가리지 말고 청풍으로 가라.’

고 하시거늘, 쉬고 있던 대복이에게 말을 거두게 하고, 선탁이와 대복이에게 양식을 찧게 하여, 그날 밤 삼경에 길을 나서게 하니, 덕생이는 그리도 울면서 함께 가겠다고 하는 것을 아이를 낳게 되었으니 길을 가다가 낳으면 죽을까 하여, 거기 있는 종에게 피란하라 하고, 양식이 많이 있으나 …… 다 두고, 다만 쌀 궤짝 하나를 가지고 오다가 ……………………………

 

12월 17일

상자를 다 거기에 묻고, 날이 새도록 길을 여니 서리와 눈이 말 위에 온통 얼어 청호의 큰길에 다다르니, 군사들이 오른다고 하므로 청호의 작은길로 오다가, 걸어오던 두 집의 종 여덟 명과, 난추와 천남이가 길을 잘못 들어 잃고 아침 되도록 찾지 못하니, 길마다 피란하는 사람들은 끝이 없고 길이 여러 곳으로 났으니, 어디로 갔는지 몰라서 온 집안사람들이 동동 구르며 모두 애를 쓰고, 마을에 들어가 아침밥을 먹고 종들을 다 흩어서 찾으나 찾지 못하니 갑갑하고 민망하기를 어찌 다 말하랴.

그렇게 하다 보니 청풍으로 가는 길은 늦었으나, 주인이 엎드려 말하기를,

도적이 벌써 그쪽으로 갔다 하니, 갈 엄두도 내지 말라.”

하거늘 진위의 감찰 댁을 찾아 들어가니 벌서 한낮이 지났고, 잃은 사람들을 지금도 못 찾아서, 우리 행차가 그 집에 들어가고 게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찾아오니, 저희도 밤새도록 길을 가서 아침밥도 못 먹고 행차에서 떨어졌으니, 애가 타서 진위 고을 앞까지 갔다고 하더라 하고, 사람들은 찾았으나 벌써 저녁때라.

그날 저물어 서로 애를 쓰며 지내고 청풍은 이미 그르다고 하여 감찰 댁의 일행과

 

12월 18일

길을 떠나 평택의 업동이의 집에 오니, 난추의 다리가 온통 부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매 묵었다.

감찰이 난추에게 침을 주었다.

또 장흥 고골의 유생원댁이 와서 주무시고, 잠깐 만나 보았다.

 

12월 19일

큰 눈이 왔다.

난추가 아파서 거기서 묵었다. 비록 소경인 종이지만 어리석지 아니하고, 정성으로 일행을 대접하니 종이라 하는 것이 곳곳에 우연하지를 않더라.

 

12월 20일

길을 떠나 유생원 댁은 온양으로 가고, 우리는 신창으로 가니, 길 위에서 서로 떠나니 그런 섭섭하기 그지없더라.

유생원 댁은 청양으로 가겠다고 하시더라.

우리는 신창 일대의 한율 종의 집에 가 잤다.

 

12월 21,22일

큰눈이 왔다

거기서 묵었다.

밤 들게야 판관댁 행차가 도착하였다.

 

12월 23일

길을 떠나서 신평 방죽을 지나 긴마루라고 하는 곳에 들어가 밤을 새웠다.

 

12월 24일

오목리 유생원 댁에 가 아침 먹고 즉시 당진으로 가려고 하였더니, 아침 비도 오고 사촌들이 하도 간곡히 대접하며 묵으라 하거늘, 우리와 판관댁 두 행차의 위아래 사람마다 함께 묵고, 음식과 술과 안주를 형님 댁과 똑같이 하여 주시되, 사십의 사람과 말이 모두 그런 ……… 비용이 더 들게 되고, 두 집의 사람과 말은 두 아우 댁에서 겪느라고 비용이 매우 많이 들게 되니 감격스럽기 그지없더라.

 

12월 25일

길을 떠나 거기서 떠나니 두 집 일행 위아래 사람들이 모두 고맙고, 극진히 하시니 못내 감격하더라.

우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형님댁을 우리와 똑같이 하여 주시니 더욱 기쁘더라.

판관과 감찰댁 행차는 덕산으로 가시면서 판관댁은 당진으로 오시겠다 하더라.

이날 당진 읍내 호장인 박상의 집에 가니 주인의 어미가 팥죽 쑤어 주고, 술을 가져다 먹이더라. 심진사 댁에서 저녁밥과 떡과 술을 장만하여 계집종이 가지고 왔더라.

 

12월 26일

심진사 댁에서 식사를 하였고, 종들은 석희에게서 밥을 먹었다. 심진사의 별실이 약주를 하여 와 다녀갔다. 심진사가 찾아와서 문안을 드리신다.

“거리가 거의 십 리나 되는데도 찾아주시니 고맙사옵니다.”

영감의 벗님네들이 극진히 대접하여 주시니, 이는 영감이 곡진하게 대접하시기 때문일 것이다.

요사이는 거기 머물고 있다. 올해도 저물어가는데 남한산성에서의 기별은 아득하니 이때 애가 끊어지는 적이라.

망극 망극하고, 정신은 간데없으니 어찌 다 기록하리. 생각나는 족족 적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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