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병자일기

정축년(1637) - 1월

New-Mountain(새뫼) 2022. 2. 2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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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 정월 큰달

 

임인 1월 초하루

흐렸다.

 

1월 2일

맑았다.

판관이 덕산에서 오셨다. 새해를 맞으니 망극하고 숨 막히는 심정을 다 말하랴.

 

1월 3,4일

맑았다.

판관댁이 오셨다. 한 마을에 있다.

 

1월 5일

흐렸다.

 

1월 6일

중명이가 임천에서 오니 반갑기가 어떠할까.

신창에서 오던 날에 새술막이라고 하는 곳에서 머물려 하였더니, 청배에 살던 목경주의 부인이 그 집에서 주무시고, 아침에 남원으로 가신다고 막 떠나셨다고 하고, 그 집안사람 둘과 계집종 하나가 발이 아파서 떨어졌다가 그 뒤를 따라간다고 하기에, 붓을 모지라진 것 얻어 가까스로 편지를 써서 여산을 갈 제 전하라 하고, 우리 행차가 당진으로 가노라 하였더니, 임천 생원이 알고 찾아온 것이다.

여산의 종 후명이와 수길이도 왔더라.

 

1월 7,8일 

눈이 많이 왔다.

요사이 의견도 일치하지 않고, 행차를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하고, 난추도 여러 날을 앓으니 그저 묵고 있다.

심신이 아득하니 다 기록하랴.

 

1월 13일

도적이 예산에 들어왔다 소동이 나니, 세 댁의 부녀자들의 행차는 서산으로 가고, 진사는 계성으로 가서 밀산군 댁에서 배를 얻으면 섬으로 들어가고, 배를 못 얻으면 홍주에서 여산으로 나가려고 하나, 도적이 어느 곳에 들어 흩어질지를 몰라 큰 길로 나갈 결단을 하지 못하였다.

 

1월 14일

진사가 계성을 다녀와 서산으로 마중 와서, 배가 있더라 하므로, 우리도 서산 막산이의 집에서 잤다.

 

1월 15일

눈이 많이 왔다.

거기에서 떠나 세 집 행차가 농오리로 오다가, 눈 오는 중에서 날이 저물어, 홍주 경계에 있는 병마절도사의 농막에 들어가 잤다.

 

1월 16일

소허섬에 갈 제 눈보라가 크게 일어나니, 가까스로 세 댁 행차가 넘어 들어가니, 초경쯤 되어, 거기 간 양반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계성과 성안에 이미 도적이 들어왔다고 하여 소동하여 들이치니, 이경쯤 되어서 밀산군 댁 일행과 함께 달밤에 시러담을 건너는 배를 타고, 동녘이 조금 환해질 제 죽도에 가 배를 대었다.

 

1월 17일

아침에 물가에 내려 대나무로 가리고 지어간 찬밥을 일행이 몇 숟갈씩 나누어 먹고, 충이와 어산이가 대나무를 베고, 연장이 없어 가까스로 두 칸 길이에 문 하나를 내어, 명매기의 둥지처럼 움을 묻고, 생대나무잎을 깔고 댓잎으로 지붕 이어, 세 집의 아녀자들 열네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지내고, 종들은 대나무를 베어 움막을 지어 의지하고 지내나 물이 없는 무인도라.

대나무 수풀에 가서 눈을 긁어 녹여 먹고, 당진에서 축이가 몹시 아파 못 와 몸조리하고, 오장의 양식을 찧어 날라다가 바닷물에다 대강 씻어 밥을 하나, 모든 양반이 피난해 와 거룻배로 물을 길어오되, 우리 행차는 거룻배도 없고 그릇도 없으니, 한 그릇의 물도 얻어먹지를 못하고, 밤낮으로 남한산성을 바라보며 통곡하였다.

마음으로 참으며 날을 지내니 인생이 얼마나 할꼬. 그래도 굳은 것이 사람 목숨이니 알지 못할 일이라.

한 번에 자식 하나를 다 없애고 참혹하여 서러워하더니, 지금은 다 잊고 다만 남한산성을 생각하고, 망국 중에 나라가 이리 된 것을 부녀자가 알 일이 아니로되, 어찌 아니 통곡하고, 통곡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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