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남원고사 52

(경판)남원고사 - VI. 이별 설움 (3/4)

다. 한 산 넘어 오 리되고 한 물 건너 십 리로다 방자 불러, “책방에 돌아가서 대나무 화분 하나 가져다가 나의 춘향 주어다고. 오동나무에 밤비 내려 잠 깬 후와 나비가 봄바람에 날아가는 긴긴밤에 날 생각 나거들랑 날 본 듯이 두고 보라.” 춘향이 이른 말이, “온갖 풀을 다 심어도 대는 아니 심는다 하오. 화살대는 가고, 피리대는 울고, 그리나니 붓대로다. 울고 가고 그리는 대를 구태여 어이 심으라 하오.” “네가 어이 알까 보니?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는 영원히 변치 않는 절개라. 겨울 하늘에도 푸르렀고 눈 속에도 순 나니, 계집의 절개를 지키는 행실이 이 대의 본을 받아 정성으로 심어두라.” 남대단 두루주머니, 주황당사 끈을 끌러 화류집 사파경을 집어내어 춘향 주며 이른 말이, “대장부의 굳은 마음..

(경판)남원고사 - VI. 이별 설움 (2/4)

나. 일시 이별 서러워도 설마 너를 잊을쏘냐 이도령 이른 말이, “어따, 춘향아. 말 듣거라. 애고 춘향아, 말 듣거라. 모든 간장이 다 녹는다. 일시 이별 섧거마는 얼마 되리. 두고 가는 나의 모양 어이하여 끝이 있으리. 함께 갈 마음이 불현듯이 있건마는, 경성으로 올라가면 중요하지 않은 친척들이 공연스레 의논하되, ‘아이놈이 첩을 얻어 학업 전폐한다.’ 하고, 호적에서 도려낼 것이니, 여차 고로 뜻과 같지 못하구나. 잘끈 참아 수삼 년만 견디어라. 밤낮으로 공부하여 입신양명한 연후에 너를 찾아올 것이니, 부디부디 잘 있거라. 구구 팔십 일 하여 일각선인은 여동빈을 따라가고 팔구 칠십이 하여 이적선은 채석강에서 달을 구경하고, 칠구 육십삼 하여 삼로동공은 한태조에게 충언하고, 육구 오십사 하여 사호 선..

(경판)남원고사 - VI. 이별 설움 (1/4)

VI. 이별 설움 가. 이 말이 웬 말이요 이별말이 웬 말이오 남원부사 백성을 바르고 어질게 잘 다스려 묘당이 의논하여 공조참의 윗자리의 벼슬로 올리니, 임금께서 내린 말을 타고 올라갈 제, 이도령의 거동 보소. 뜻밖에 당한 일이 마른하늘 급한 비에 된 벼락이 나리는 듯, 모진 광풍에 돌과 화살이 날리는 듯, 정신이 어질하고 마음이 끓는 듯하여 죽을밖에 하릴없다. 두 주먹을 불끈 쥐어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이를 어이 하잔 말인고?. 옥 같은 나의 춘향 생이별을 한다는 말인가. 사람 못 살 운수이라. 내직으로 올라감은 무슨 일인가. 공조참의 하지 말고, 이 고을 좌수로나 주저앉았다면 내게는 퇴판 좋을 것을. 애고 이를 어찌할꼬. 가슴 답답, 나 죽겠다.” 허둥지둥 춘향의 집 찾아가니, 저는 아직 몰랐구..

(경판)남원고사 - V. 사랑 타령 (4/4)

라. 우리 둘이 만났으니 타령하며 놀아보자 서너 잔을 기울이고 취흥이 도도하여 춘향의 가는 허리 허험벅 틀어 안고 입 한 번 쪽, 등 한 번 둥덩, “어허 어허, 내 사랑이야. 아마도 네로구나. 달빛 침침한 깊은 밤에 어서 벗고 잠을 자자. 정이 많아 두 가슴이 맞닿았음이요, 뜻이 있어 두 다리를 벌렸구나. 허리를 움직이는 것은 내가 네게 시키겠지만, 깊게 하든지 말든지는 네가 맡기리라. 달 뜬 한밤중에 춤을 추니, 이불 속에서 한 줄기 바람이 이는구나. 달은 져서 빈 산으로 넘어가고, 차가운 시내에 늙은 나무는 조용하구나. 서로 만남이 어찌 이리 늦었는가. 이백이 너희들과 함께 죽고 산다 하였으니. 봄날 꾸는 꿈이 다정하거든 양왕의 즐거움이 부러울쏘냐? 그는 그러하거니와 밤이 깊어 인적이 그치고 아주 ..

(경판)남원고사 - V. 사랑 타령 (3/4)

다. 네 노래 듣기 좋아 내 노래도 들어보라 타기를 마치매 이도령이 흥을 내어 하는 말이, “너 혼자 노래하니 나는 듣기 좋거니와, 울며 부르는 너도 더러 들어보라. 하마. 자시에 하늘이 생기어 넓고 넓어 사사로이 덮음이 없었으니 매우 넓고 끝이 없는 하늘 천. 축시에 땅이 생기어 오행을 맡아 있어 만물을 길러내는 따 지. 봄바람 가랑비 좋은 시절에 제비가 재잘거리는 검을 현. 금목수화토 오행 중에 가운데를 맡았으니 토지의 색깔이니 누루 황. 가을바람이 저녁 때 소슬하게 불자, 가을 하늘이 말쑥하게 넓고 높으니 집 우. 광한궁을 얻어내어 신선들과 어울리나 살기 좋은 집 주. 구 년 홍수 어이 하리, 하우씨 세상의 넓을 홍. 세상만사 믿지 마라, 황당하다 거칠 황. 저 멀리 삼백 척 높이로 해 뜨는 곳에 ..

(경판)남원고사 - V. 사랑 타령 (2/4)

나. 쌀앵동 거문고에 소리 섞어 노래하니 가사를 마치매 이도령 이른 말이, “푸르고 푸른 연못에서 술 보고 못 먹으면 머리털이 희게 센다 하니 저 병 술도 먹어 보자.” 연하여 부을 적에 이도령의 주량이 넓은지라. 무한 먹어 준다. “쫄쫄 부어라. 풍풍 부어라. 쉬지 말고 부어라. 놀지 말고 부어라. 바스락바스락 부어라. 온 병에 채운 술이 유영이가 먹고 간 뒤에 남긴 반 병임이 분명하다. 마저 부어라. 먹자꾸나.” 양의 넘도록 흠썩 먹어 놓으니 술에 잔뜩 마셔 세상일을 몰라보니 호리병 속에 천지가 있는 듯 술에 크게 취한지라. 오장육부 온 뱃속이 크나큰 바다 위에 오리 뜨듯, 사람이 밀지 않았어도 옥산이 절로 무너진 듯하더라. 무한히 주정하는 말이, “네 인물도 묘하거니와 갖은 재조 뛰어나게 훌륭하니,..

(경판)남원고사 - V. 사랑 타령 (1/4)

V. 사랑 타령 가.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잔 잡으시오 이도령 대답하되, “술이란 것이 권주가 없으면 맛이 없으시니 아무래도 그저는 못 먹으리라.” 춘향이 하릴없어 권주가 하여 술 권할 제,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면, 오래 살고 부유하며 아들도 많으리라. 이 술이 술이 아니오라, 한무제 승로반에 이슬 받은 것이오니, 쓰나 다나 잡으시오. 인간 영욕 헤아리니 저 드넓은 바다에 좁쌀 한 알이로구나 술이나 먹고 노사이다. 진시황 한무제도 오래 살고 죽지 않는 일 못하여서 여산 무릉 소나무 잣나무 사이에 한 줌의 황토 되니 그 아닌가. 술만 먹고 노사이다.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묾이라. 칠순까지 즐겁게 사는 일도 덧없도다. 아니 놀고 무엇하리. 걸주가 고기를..

(경판)남원고사 - IV. 고운 치레 (3/3)

다. 갖은 술에 온갖 안주 교태 섞어 권하노라 얼싸, 좋을시고. 춘향의 거동 보소. 용두머리 장목비를 곱디고운 손으로 내려서 이리저리 쓸어 치우고 홍전 한 떼 떨쳐 깔고, “도련님, 이리 앉으시오.” 치마 앞을 부여안고, 은침 같은 열쇠 내어 금거북 자물쇠를 떨걱 열고 온갖 종류의 담배 다 내어올 제, 평안도 성천초, 강원도 금강초, 전라도 진안초, 양덕 삼등초 다 내어놓고, 경기도 삼십칠 관아 중 남한산성초 한 대 똑 떼여 내어 꿀물의 훌훌 뿜어 왜간죽 부산대에 넘쳐나게 담아 들고, 붉은 입술과 흰 이로 담빡 물어, 청동화로 참숯불에 잠깐 대어 붙여 내어, 치마꼬리 휘어다가 물부리 씻어 둘러 잡아 들고 나직이 나아와, “도련님, 잡수시오.” 이도령 헝겁지겁 감지덕지 두 손으로 받아 들고 타락송아지 젖부..

(경판)남원고사 - IV. 고운 치레 (2/3)

나. 방안에는 세간 치레 황홀히도 벌렸는데 춘향의 어깨 짚고 대청에 올라 방안으로 들어가니 침향내도 황홀하다. 방치레를 볼작시면, 넓고 두꺼운 장판에 당유지 굽도리 백릉화 도배하고, 소란, 반자, 혼천도에, 세간과 그릇을 볼작시면, 용장, 봉장궤, 두리책상, 가께수리, 들미장, 자개함롱, 반닫이, 면경, 체경, 왜경대며, 쇄금들미 삼층장, 계자다리 옷걸이며, 용두머리 장목비, 쌍룡 그린 빗접고비 벽 위에 걸어 놓고, 왜상, 벼루집, 화류서안, 교자상, 대청에는 귀목뒤주, 용충항과 칠박, 귀박, 두리박, 학슬반, 자개반을 층층이 얹어 놓고, 산유자 자리상에 선단요, 대단 이불, 원앙금침, 잣벼개를 반자같이 쌓아 놓고, 은침 같은 가는 열쇠, 주황사 끈을 달아 본돈 섞어 꿰어 달고, 청동 화로 전대야며, 백..

(경판)남원고사 - IV. 고운 치레 (1/3)

IV. 고운 치레 가. 좌우를 살펴보니 집치레도 황홀하고 화설, 이때 이도령이 춘향 어미 거동 보고 이른 말이, “일이 있든지 없든지 아는 체할 바가 아니니 염려 말고 그만 있소.” 춘향 어미 잔도리 치는 말이, “이미 와 계시니 말없이 다녀가오. 헛걸음으로 돌아가면 제 마음도 섭섭할 듯하고 도련님도 무료할 듯하니 두어 마디 말이나 하다가 가시오. 제가 실로 매몰하여 친구 왕래 없었더니 도련님이 나와 계시니 잠깐 놀다가 들어가오.” 이도령의 거동 보소. 춘향의 손목 들입다 덥석 마주 잡고 가슴이 두근두근 제두리뼈가 시큰시큰 한 손으로 어깨 희희낙락 들어갈 제 좌우편 살펴보니 집치레도 황홀하다. 대문짝 좌우편에 울지경덕, 진숙보요, 중문에는 위징 선생, 사면 활짝 높은 집을 입구 자로 지었는데, 윗방 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