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남원고사

(경판)남원고사 - V. 사랑 타령 (1/4)

New-Mountain(새뫼) 2020. 6. 2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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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사랑 타령

 

가.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잔 잡으시오

 

이도령 대답하되,

“술이란 것이 권주가 없으면 맛이 없으시니 아무래도 그저는 못 먹으리라.”

춘향이 하릴없어 권주가 하여 술 권할 제,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면,

오래 살고 부유하며 아들도 많으리라.

이 술이 술이 아니오라,

한무제 승로반에

이슬 받은 것이오니,

쓰나 다나 잡으시오.

 

인간 영욕 헤아리니

저 드넓은 바다에 좁쌀 한 알이로구나

술이나 먹고 노사이다.

진시황 한무제도

오래 살고 죽지 않는 일 못하여서

여산 무릉 소나무 잣나무 사이에

한 줌의 황토 되니 그 아닌가.

술만 먹고 노사이다.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묾이라.

칠순까지 즐겁게 사는 일도 덧없도다.

아니 놀고 무엇하리.

걸주가 고기를 쌓아두고 포를 걸어두었어도

이 술 한 잔 살았을 적뿐이로다.

꽃을 꺾어 수를 놓고

무진무궁 먹사이다.

 

우리 한번 돌아가면

뉘라 한 잔 먹자 하리.

풍악이나 좋은 안주 대단하지 않다네.

오로지 원하느니 내내 취해 안 깨는 것.

 

구십 세월 봄날에 북 지나듯 흘러가니

꽃 앞에서 술 마시며 소리 높여 노래하세.

가지 위의 꽃은 며칠이나 피어 있으려나.

세상의 인생들은 또 얼마나 살려는가.

술이나 먹고 노사이다.

 

어제 아침 꽃이 피어 오늘에도 아름답더니

오늘 아침 꽃 떨어져 시든 풀이 되었다네.

꽃 앞의 사람은 예전의 그 사람인데

올해의 이 사람은 예전보다 늙었구나.

어제 꽃은 오늘에도 그 가지에서 피건마는

내일 와서 이 꽃을 다시 볼 이 누구인가.

아니 취하고 무엇하리.”

 

이도령이 하는 말이,

“손 대접하느라고 혼자 수고하는구나. 쉬엄쉬엄 밤새도록 흥이 다하도록 놀고 노자.”

부어 주는 대로 받아먹고 혓바닥이 촉촉하니, 이어서 십여 잔을 천연히 마구 마시고 춘향에게 이른 말이,

“남아가 위험한 곳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기생집을 이름이니, 우리 둘이 술과 색에 빠져 이렇듯이 노닐 적에, 어떠한 실없는 아들놈이 대넘이하여 들어와서, 여간 튀어나와 난리를 일으켜 의관을 찢어내고 내 몸을 망신을 주면, 아닌 밤에 도망하여 책방으로 가려니와, 아무래도 관심 난다마는 그저 가파른 산비탈을 내리 달리는 형세라 하릴없다. 아까 그 본으로 가사 하나 더 하여라.”

 

춘향이 웃음을 머금고 가사한다.

“갈매기야 펄펄 나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

성상께서 버리시니

너를 좇아 예 왔노라.

다섯 버드나무에 봄빛 어려 경치 좋은 데

백마에 황금 채찍 휘두르며 꽃 찾아 가자.

구름이 깊은 곳에 맑은 시내 흐르고,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르니

깊은 골짜기와 산봉우리에 버들가지 날리누나.

술병 속에 별천지가 있다 하니 여기로다.

봉우리는 만장이나 되고, 계곡의 물은 푸른데

푸른 솔과 푸는 대는 높기를 다투었다.

모래밭 십 리의 해당화는 다 피어서

모진 광풍에 뚝뚝 떨어져

아주 펄펄 흩날리니,

얼싸 좋다, 놀랍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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